[예능계 전원일기④] 김대희 "'밥묵자'로 17년…꼰대희 형님과 착각해 곤란" (창간 17th 인터뷰)
17주년을 맞은 엑스포츠뉴스처럼 다양한 예능, 콘텐츠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없어지는 흐름에서도 10년 이상 꾸준히 시청자를 찾는 프로그램, 현재까지 생명을 이어가는 밈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재미로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는데요. 엑스포츠뉴스가 창간 17주년을 기념해 대표적인 장수 에능 프로그램 제작진, 장수 밈 보유자 김대희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이창규 기자) "밥 묵자"
이 대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TV의 시대부터 현재 유튜브의 시대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는 대사 중 하나이기 때문.
이 대사를 탄생시킨 건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대화가 필요해'. 김대희 장동민 신봉선이 주인공으로 나섰으며, 2006년 11월 19일부터 2008년 11월 30일까지 2년 간 방영됐다. '밥 묵자' 외에도 '뭐라 쳐 씨부리쌌노?', '와 직이네' 등의 유행어를 남겼다. 높은 인기에 힘입어 프리퀄격인 '대화가 필요해 1987'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코너가 종영된지 16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대화가 필요해'의 영향력은 건재하다. 개그맨 김대희를 똑 닮은 '꼰대희'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밥묵자'라는 이름의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
이에 엑스포츠뉴스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JDB엔터테인먼트 사옥을 찾아 '대화가 필요해'의 주역이었던 김대희를 만나 창간 17주년 축하 인사를 받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김대희는 밝은 얼굴로 당시의 이야기와 함께 친한 형님인 꼰대희 씨의 이야기를 전했다.
'대화가 필요해'를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제가 개그맨이 되었던 1999년에 부산을 갔다가 만난 꼰대희 형님을 보고 만든 코너다. 저보다 10살이 많으신 형님인데, 그 형님을 알고 지내다보니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과 말투가 너무 재밌어서 그 형님을 보고 패러디해서 만든 게 '대화가 필요해'다. 사실 그 형한테 얘기를 안 하고 만들었다고 욕을 많이 먹었다. (웃음)"
멤버 구성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 알고 싶다
"(신)봉선이는 오리지널 부산 출신이어서 선택했다. 그리고 아들 역할이 필요했는데, 충청도 출신임에도 (장)동민이를 꼽은 이유는 단순히 친해서였다. 그렇게 셋이 모여서 '이런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새 코너를 짜볼까 했다'고 했더니 다들 빵 터지더라. 그렇게 시작해서 2년을 했고, 저희가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 코너상, 아이디어상, 저랑 봉선이가 각각 코미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개콘' 코너들은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아도 오래 끌고 가기가 힘든데, 어떻게 2년이라는 시간을 끌고 갈 수 있었나.
"지금도 친하지만, 우리 세 명의 팀워크가 너무 좋았고 아이디어도 좋았다. 또 별 거 아닌 아이디어도 잘 살리는 그런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당시 김석윤 PD님이 처음 코너를 짠 걸 보여드렸을 때 너무 재밌다고 하면서 코너에 힘을 실어주셨다. 그 당시 '개콘' 카메라는 무대를 바라보는 중앙선에 위치해 있었는데, 밥상에 앉아있다보니 저희의 표정을 정면에서 담아야 재밌다고 해서 카메라가 바로 대각선 앞까지 들어왔다. 당시로서는 첫 시도였는데, 주변 분들이 다 도와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동민이가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헤어지라고 하는 에피소드인데, 지금도 짤로 많이 돌아다니지 않나. 제가 '대학가면 여자가 줄을 선다'고 해서 동민이가 여자친구랑 헤어지는데, 엄마를 언제 만났냐고 해서 대학 때 만났다고 하니까 괴성을 지른다. 지금은 동민이가 그 소리를 못 내더라. 나이를 먹고 목이 갔는지, 그 때가 절정이었던 거 같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TV가 안 나와서 안테나 만져보라고 해서 나가서 안테나를 만지는 장면이었다. 그러다 천둥번개가 치고, 동민이가 번개에 맞은 걸로 묘사되어야해서 가발에 탄을 뿌려 연기가 나야했다. 그런데 당시에 FD 하던 친구가 탄을 너무 급하게 많이 뿌렸나보더라. 가발에만 뿌려야 할 게 살까지 닿아가지고 동민이가 괴성을 지르면서 들어왔다. 그런데도 녹화를 해야하니까 참아야 했는데,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콜록거리면서 대사가 안 될 정도였다. 현장에선 너무 웃겨서 빵빵 터졌는데 알고 보니 두피에 화상을 입어서 응급실 갔던 기억도 있다."
"삭발을 했던 때도 기억난다. 원래는 가발을 쓰고 밀던지 (조금만) 자를까 했는데, 리얼리티를 추구하려고 삭발하자고 했다. 대신에 중간 정도까지만 해서 정리될 수 있게 하자고 했는데, (동민이가) 머리를 밀기 시작하면서 흥분했는지 정수리까지 다 올리더라. 그 모습에 너무 터져서 (봉선이가) 대사를 못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날 녹화가 끝나고 장례식장을 가야했다. 친한 형님의 부친상이라 안 갈 수가 없었는데, 뒤통수에 '등신'이라고까지 쓰여있었어서 그 상태로는 못 가니까 검은색 비니를 쓰고 갔다. 그리고 나서 영정 사진 앞에서 절을 해야 하는데, 비니 쓰고 절을 하는게 좀 예의에 어긋나보여서 비니를 벗고 절을 했는데, 뒤가 밀려있으니까 상주가 웃음을 참더다가 결국엔 빵 터졌다. 그래서 괜히 미안하더라."
그러한 인기에 힘입어 스핀오프 코너까지 진행할 수 있지 않았나.
"'대화가 필요해 1987'을 할 때 즈음엔 우리 셋 다 '개콘'을 쉬고 있었다. 그 때 제작진의 섭외가 들어와서 새 코너를 짜야 했다. 그런데 '대화가 필요해'가 매년 특집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은 코너 1위를 하기도 했고, 다시 보고 싶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이 참에 못다했던 이야기 만들어보자 해서 세 가족의 과거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해서 만들었다. 저와 봉선이가 대학에서 처음 만난 걸로 시작해서 동민이는 출연할 수가 없으니 제 아버지로 출연시켰다. 그런데 뭐 구관이 명관이라고, 원작만큼 사랑을 받진 못했던 거 같다. (웃음)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게 대박나지 않았나?
"사실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꼰대희 형님이 하시는 거다. 그 형님이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하다가 그만두시고, 택시도 몰다가 집에서 노시더라. 그래서 집에서 아무 소일거리도 없이 노는 거 불쌍해서 유튜브라도 해보시라고 제가 건의를 해서 시작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다."
그건 몰랐다. (뻔뻔) 그런데 처음부터 대박이 난 건 아니다보니 꼰대희 씨께서 그만두고 싶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제가 시작하라고 했으니까 책임 의식이 있어서 업로드 된 것들을 봤는데, 그 땐 구독자 수가 300, 500이었다. 때려치자고 하는 영상도 올라왔었는데, 개그맨들한테 돈을 빌려봤다고 한 전화 몰카가 터진거다. 본인은 '개콘'도 안했으면서, 김대희인 척을 해가지고 돈 빌리는 영상이 터진거다. 그러고 나서 후속타가 없었으면 잘 안 됐을 거다. 그 형님한테 딸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밥묵자'라는 코너에 뽕숙이가 나온 영상이 바로 이어서 터지면서 자리를 잡은 거 같다. 결정적으로 보면 장동민, 신봉선이 유튜브를 살린 거다."
그런데 왜 김대희 씨는 안 부르시는 거냐.
"그러니까 말이다. 제가 아니었다면 그 형님은 지금도 폐인처럼 살았을텐데, 저를 안 부르더라. 그래서 저를 왜 안부르냐고 따졌더니 저같이 재미없는 개그맨은 안 부른다고 하더라. 결국 찍긴 찍었는데 조회수가 잘 안 나오더라."
'밥묵자'라는 콘텐츠를 지금 시점에 다시 가져오는 게 부담이 됐을 것 같다.
"일단 원작자인 그 형이 하면 더 재밌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형도 그렇게까지 잘 될줄 몰랐던 거 같은데, 천운을 타고나신 거 같다. 그래서 배가 아프더라. 그래서 저도 예전에 김준호, 권재관, 박영진하고 넷이서 '포메디언'이라고 네 명의 코미디언이라는 의미로 했는데 망했다. 안 되더라."
"요즘은 스트레스 받는게, 어딜 가면 저한테 다 '꼰대희' 잘 보고 있다고 하는 거다. 길을 지나가다 모르시는 분들도 '독박투어' 얘기는 안 하고 '꼰대희' 얘기만 하신다. 일일이 변명하는 게 힘들어서 개인 유튜브를 만들까 생각 중이다. '저 꼰대희 아닙니다'로 해서 구상 중에 있다. (웃음)"
개그맨들은 보통 유행어가 많은 편인데, 김대희 씨는 '밥 묵자' 한 마디로 2007년부터 지금까지 버텨오셨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밥 묵자'만 있는 줄 아시지만, 사실 '소고기 사묵겠지'도 있긴 하다. 그 외엔 저도 잘 생각이 안 난다. (웃음) (김)준호는 아직까지도 공식석상에서 '쟈나쟈나'를 하는데, 그게 언제적 유행어냐. (농담) 없어보인다. 저는 절대 어디 가서 '밥 묵자'고 안 한다."
"사실 2007년이 제게 의미있는 해인데, 개그맨이 되고 큰 상을 받아보지 못했는데 그 때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코너상과 최우수상을 받았다. 저에게는 아주 의미가 깊다. '자식은 자기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첫째가 2006년 10월에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다음 달에 '대화가 필요해'가 시작됐다. 첫째가 안겨다 준 선물이 아닌가 싶다. 둘째가 태어난 날은 제가 '개콘'을 쉬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연출이었던 김석현 PD로부터 '씁쓸한 인생'에 들어가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도 돌아다니는 '풍선 짤'을 만들게 됐다."
4년 정도 '밥묵자'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는데, 꼰대희 씨께서 힘든 점도 있을 것 같다.
"그 형님이 코미디를 좋아하신다. 관심도 많고 코미디를 사랑하셔서 형님과 친해진 것도 있다. 원래는 코미디를 좋아해서 코미디 채널을 만든 건데, '밥묵자'가 터지면서 알고리즘이 코미디 채널이 아니라 먹방 채널로 인식을 한다고 하시더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다.
"본인은 자존심이 있었는지 코미디 채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밥묵자'를 안 하고 갑자기 본인 코미디를 짜서 올렸나보더라. 그 당시에 구독자가 60만이 넘었는데, '밥묵자'를 안 하니까 알고리즘이 망가졌고, 구독자도 3만명 정도가 빠졌었던 거 같다. 그래서 자기 팀들이랑 분석을 해봤다고 하더라. '요인은 알고리즘이 먹방 채널로 인식하고 있어서 먹어야 한다. 기계를 이길 수 없다. 순응하자. 먹읍시다' 해서 다시 '밥묵자'를 함과 동시에 코너 제목도 '밥묵자', '혼밥묵자', '콩밥묵자' 식으로 하니까 다시 활성화가 되면서 다시 새로운 구독자들이 유입됐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정말 많은 분들과 동물(펭수)이 '밥묵자'에 출연했는데, 아직까지 모시지 못한 분들이 있으실 것 같다.
"꼰대희 형님께서 모시고 싶은 분으로 두 분을 언급하셨다. 한 분은 (김)구라 형이고, 다른 한 분은 (신)동엽이 형이다. 아무래도 두 분과 제가 친분이 있다보니까 요청을 하신 것 같다. 그래서 두 분께 여쭤봤더니 꼰대희 채널에는 못 나가겠다고 하시더라. '대희 너랑 똑같이 생겼는데 꼰대희 형님 하면서 연기를 해야하는 게 닭살돋아서 못하겠다'고 하셨다. 제가 개인 채널을 운영하려고 하는 이유다."
"또 부르고 싶은 분은 유재석 형님이다. 아직 말을 한 번도 안 꺼내봤는데, 언젠가는 이 인터뷰도 보시긴 할 거 같다. 그런데 차마 재석이 형님에겐 말씀을 못 드리겠다. 개인적으로는 마동석 씨도 모시고 싶은데, 버거형(박효준)을 통해서 물어봤더니 뭔가 말 못할 계약상의 문제가 있는 것 같더라."
유튜브의 등장으로 인해 TV의 영향력이 줄었지만, 유튜브를 통해 여전히 사랑받는 분들도 많지 않나.
"'근황올림픽'같이 '옛날엔 이런 분이 계셨는데' 하는 것도 접할 수 있어서 유튜브에 순기능이 많은 거 같다. 가장 좋은 건,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있지 않나. 후배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상황에서 유튜브를 통해 펼치고 싶었던 걸 그려내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코미디를 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하다."
꼰대희 씨가 아닌, 김대희 씨의 활동 계획도 알고 싶다.
"방송을 '독박투어' 하나만 하는 중인데,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다. 최근에 시즌3가 시작됐는데, 저희끼리 평생 죽을 때까지 찍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누구 하나 죽으면 등신대라도 대신 들고 다니면서라도 하자고 하고, 농담으로 누가 죽으면 조의금도 나머지 사람들이 독박게임 해서 내자는 우스개소리 할 정도로 친하다. 넷플릭스에도 올라가 있는데, 아쉽게도 한국에서만 시청이 가능하다. 해외여행이니까 해외에도 홍보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얼마 전에 넷플릭스 내에서 인기 프로그램 6위까지 올라갔었어서 고무적이다. 요즘 방송도 그렇고 예능도 드라마도 다 힘든 분위기여서 하나 하는 것도 만족하고, 최대한 많은 분들께 제가 꼰대희가 아니라는 걸 알리는 게 목표다. 그런데 괜히 그것도 그 형님만 좋은 일 해주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엑스포츠뉴스 창간 17주년 축하 인사 부탁드린다.
"엑스포츠뉴스 창간 1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3년 뒤에도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 상투적이긴 하지만 170주년까지 승승장구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많은 분들이 엑스포츠뉴스를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좋은 기사를 통해 많이 접하셨으면 좋겠고, 애독자 여러분들도 하시는 일들이 잘 되셨으면 좋겠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사진= 박지영 기자
이창규 기자 skywalkerle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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