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일easy] AI, 여기에 있습니다 환멸의 골짜기에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포지티브적 해석 : AI 안정기가 올 때까지 거쳐야 할 과도기.
#네거티브적 해석 : 'AI판' 버블 닷컴.
8월과 9월 엔비디아 주가가 폭락과 상승을 거듭하자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는 'AI(인공지능) 거품'이었습니다. AI 시대 빅테크들이 쏟은 투자금 보다 성과가 미진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었던거죠.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매그니피센트7(M7)'로 불리는 기업들의 주가가 모두 휘청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기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기업 절반이 AI 기술을 도입할 경우 연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7% 증가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지난해 발표했습니다. AI로 인한 엄청난 생산성 향상이라니. 첨단 기술을 쥐고 싶은 기업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겠죠?
산업 패러다임이 AI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때에 뒤처져서는 안된다는 절박감도 작용했습니다. 내로라 하는 미국 테크기업의 AI 투자는 급증합니다.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의 올 상반기 투자액은 1056억 달러(140조원)를 기록했습니다. 투자 대부분은 컴퓨팅 서버 등이 포함된 데이터센터에 집중돼있습니다.
AI 설비를 갖추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AI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서버 컴퓨터가 수백~수천 대를 필요로 합니다. 이 AI 컴퓨터에는 GPU(그래픽처리장치)에 HBM(고대역폭메모리)을 탑재한 AI 가속기와 함께 돌아가는 CPU(중앙처리장치), 네트워크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GPU는 누가 만드나요? 여러 기업들이 만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글로벌 톱은 엔비디아입니다. 엔비디아는 게임 산업, 코인 열풍, 생성형 AI 이슈를 두루 거치며 명실상부 AI칩 1위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최고 사양 GPU인 H200은 대당 4000~5000만원인데다 제품 도착까지 반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받고 싶어할 만큼 가치가 치솟았습니다.
지난 6월 미국 벤처캐피털(VC) 세콰이어캐피탈이 내놓은 보고서는 이같은 AI 랠리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AI에 관한 6000억 달러(약 830조원) 질문'이라는 보고서는 'AI 버블이 한계점(tipping point)에 도달했다'고 주장합니다. 한 마디로 AI 설비투자에 쏟아부은 돈을 회수하려면 830조원을 벌어 들여야 하는 데 소비자들의 그만큼 지갑을 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같은 달 골드만삭스의 '생성형 AI : 지출은 너무 많고 혜택은 너무 적은가'라는 보고서에서도 "엄청난 투자에도 AI는 필요한 곳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속도 조절 필요성이 언급돼있습니다. 1년 전 보고서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죠. 투자 대비 실익이 적다는 것은 그 사이 거품이 끼여있다는 것이고, 이 거품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시장이 요동칠만도 합니다.
현재 빅테크 경영진들은 AI 투자가 언제부터 성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질문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구글 2분기 컨퍼러스콜에서 순다르 피차이 CEO가 "기술 분야에서 이런 전환기를 겪을 때는 과소 투자가 과잉 투자 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밝혔지만 주주들의 의구심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AI 투자는 '골드러시' 시대의 재현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요. 금을 캐려고 모인 사람들이 청바지를 앞다퉈 구매했던 것처럼, AI 기반 서비스 대중화가 오기 전 AI 가속기만 불티나게 팔리다 마는 시간이 될까요. AI를 너무 장밋빛으로만 보고 있는 것인가요. 여기서 우리는 현재 어디에 와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 기술은 처음 기술 촉발(Innovation Trigger) 단계에서 시작해 과도한 기대의 정점(Peak of Inflated Expectations), 환멸의 골짜기(Through of Disillusionment), 계몽의 경사(Slope of Enlightenment) 단계를 거쳐 생산의 안정기(Plateau of Productivity) 단계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AI는 기술이 기대만큼의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시들해지는 상태, 즉 '환멸의 골짜기'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빅테크들의 AI 투자 행렬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좋은 수익 사례가 발생하고 추가 AI 제품이 나올 것이라는 계몽의 경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죠. 장기 방향성을 놓고 보면 AI가 디지털 인프라, 에너지, 생명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이 큽니다.
전례없는 시대이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잠재력은 그만큼 폭발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아직은 뛰어넘습니다. 기대한 만큼의 실익이 나오기까지는 길을 더 가야만 하지만 그 과실은 달콤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상에서의 AI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간극을 좁혀야 합니다. 즉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출시 두 달만에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억명을 돌파한 챗GPT와 같은 킬러 서비스가 등장하고 소비자들이 다양한 편익을 얻게 하도록 적극적으로 컨텐츠를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환멸의 골짜기는 지나갈 때에는 다소 아찔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이 맞나? 끝은 과연 있는 것인가? 너무 많은 비용이 지출되는 것이 아닌가? AI가 촉발한 인류 혁명이라는 낙관과 'AI판' 닷컴 버블 붕괴라는 비관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안정기를 찾든 혼란기를 유발하든 그 시간을 당기거나 늦추는 것은 AI가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있습니다. 제대로 된 로드맵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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