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절 어려워요” 고려인 어린이들의 첫 추석맞이
곽경근 2024. 9. 17. 06:02
- 영구 귀국한 고려인 자녀들, 한국에서 추석 체험
- 제천 향교서 명절 예절교육 및 송편 빚기, 전통놀이 체험
- 제천시, 고려인 적극 유입 추진, 현 335명 둥지 틀어
- 고려인, 축소되어가는 도시에 활력 되기를 희망
- 고려인들 대부분 한국생활에 적응
- 인구급감, 정부가 앞장서 시스템 갖춰나가야
“남자 어린이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여자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놓고 배꼽위에 살며시 올려놓습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 11일 충북 제천시 제천향교 풍화루 누각이 떠들썩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이 14명이 전통예절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서투른 손놀림과 어색한 모습을 연출한다. 추석 명절이 코 앞인데 이날 제천 지방 낮 최고 기온은 32도를 가리켰다. 연신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내는 이연복 예절강사는 더위를 쫒아낼 듯 힘찬 소리로 어린이들의 동작을 고쳐준다.
마루 바닥에 엎드려 어설프게 큰절을 하는 어린이들... 그런데 어린이들의 대화와 얼굴 표정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다름아닌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살던 고려인 동포의 자녀들이다.
이마에 송골송골 구슬땀이 맺혀도 어린이들의 표정과 눈빛은 사뭇 진지하다. 한국으로 와서 배운 배꼽인사도 적응이 덜 되었는데 한복을 입고 큰절을 배운다. 몸 속에 한국인 DNA가 있는지 바로바로 따라한다. 동작도 제법 세련되게 큰절을 한다.
굴조다(10‧용두초 3학년) 어린이는 “큰절을 하다 엉덩방아를 찌었다”면서 “추석이 뭔지 잘 몰랐는데 예쁜 한복을 입고 ‘절하는 방법’을 배우니 신난다”라고 말했다.
큰절과 반절(작은절)을 익힌 후 14명의 어린이들은 송편 빚기에 도전했다.
“송편은 우리 고유 명절인 추석에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한 뒤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만드는 음식이에요”
풍화루 누각 2층 마루에 둘러앉은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설명에 귀를 쫑곳 에우고 반죽된 흰쌀가루를 작은 손으로 동그랗게 만든 후 조물조물 반죽을 넓혀 소를 넣고 조심스럽게 오므려 송편을 빚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4살, 5살 동생들은 송편 만들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기 바쁘다.
3~4학년 어린이들은 동생들이 넘어지지는 않을까 살피면서도 송편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기본적인 형태의 송편을 몇 개씩 만들어 본 후에는 동물 모양 등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송편도 만들어보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어느 정도 송편 만들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마당으로 내려와 우리 전통놀이인 투호놀이와 제기차기를 즐겼다. 무더운 날씨에 너도나도 한복을 벗어놓고 전통놀이를 즐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제기차기도 배워보고 투호를 하나라도 더 넣으려고 정신을 집중한다. 향교마당에서의 아이들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풍화루 넘어 제천시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날 고려인 동포 자녀 추석 명절 예절 교육 행사에 참여한 리 레기나 부모는 “제천시에 이주해 온 후 많은 지원을 시에서 받고 있다”면서 “자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음에 들고 특히 오늘 우리 자녀들이 한국의 예절 교육을 익히고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시간을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통체험을 마친 어린이들은 선생님들의 손을 잡고 향교의 시설들을 돌아보며 향교의 역할과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공양왕 1년(1389)에 지어진 제천향교는 원래 마산 서쪽에 있던 것을 선조 23년(159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쇠퇴하였다. 그 뒤 순종 융희 1년(1907)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불에 타 없어졌고 1922년에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있고 그 밖에 부속건물이 있다.
제천향교 김명선 강사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분들을 만나서 반가왔다. 아이들을 위한 예절 교육과 송편 만들기, 전통 놀이 체험을 통해 고려인 아이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제천시는 지역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국내외 고려인 동포를 대상으로 '제천시 이주정착 지원사업'을 펼쳐 올해 7월말 기준 재외동포 129세대 335명이 제천시에 둥지를 틀었다. 제천시는 단기 체류시설 제공을 비롯해 국어·한국문화 교육, 취업·보육·의료 지원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제천시는 한국어 교육센터 건립해 제천시를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 재외동포 이주의 국가 허브 지역으로 만들 계획도 추진 중이다.
김창규 제천시장은 “고려인 동포 자녀들이 우리 문화를 익히고 함께 추석을 준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동포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제천시가 선도적으로 고려인들을 이주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재외동포나 외국인들이 잠시 일손만 채우고 돌아가기보다는 인구위기 현실에서 이들이 우리나라에 정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 시스템을 정비하고 갖춰나가야 할 시점이다.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 제천 향교서 명절 예절교육 및 송편 빚기, 전통놀이 체험
- 제천시, 고려인 적극 유입 추진, 현 335명 둥지 틀어
- 고려인, 축소되어가는 도시에 활력 되기를 희망
- 고려인들 대부분 한국생활에 적응
- 인구급감, 정부가 앞장서 시스템 갖춰나가야
“남자 어린이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여자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놓고 배꼽위에 살며시 올려놓습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 11일 충북 제천시 제천향교 풍화루 누각이 떠들썩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이 14명이 전통예절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서투른 손놀림과 어색한 모습을 연출한다. 추석 명절이 코 앞인데 이날 제천 지방 낮 최고 기온은 32도를 가리켰다. 연신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내는 이연복 예절강사는 더위를 쫒아낼 듯 힘찬 소리로 어린이들의 동작을 고쳐준다.
마루 바닥에 엎드려 어설프게 큰절을 하는 어린이들... 그런데 어린이들의 대화와 얼굴 표정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다름아닌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살던 고려인 동포의 자녀들이다.
이마에 송골송골 구슬땀이 맺혀도 어린이들의 표정과 눈빛은 사뭇 진지하다. 한국으로 와서 배운 배꼽인사도 적응이 덜 되었는데 한복을 입고 큰절을 배운다. 몸 속에 한국인 DNA가 있는지 바로바로 따라한다. 동작도 제법 세련되게 큰절을 한다.
굴조다(10‧용두초 3학년) 어린이는 “큰절을 하다 엉덩방아를 찌었다”면서 “추석이 뭔지 잘 몰랐는데 예쁜 한복을 입고 ‘절하는 방법’을 배우니 신난다”라고 말했다.
큰절과 반절(작은절)을 익힌 후 14명의 어린이들은 송편 빚기에 도전했다.
“송편은 우리 고유 명절인 추석에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한 뒤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만드는 음식이에요”
풍화루 누각 2층 마루에 둘러앉은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설명에 귀를 쫑곳 에우고 반죽된 흰쌀가루를 작은 손으로 동그랗게 만든 후 조물조물 반죽을 넓혀 소를 넣고 조심스럽게 오므려 송편을 빚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4살, 5살 동생들은 송편 만들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기 바쁘다.
3~4학년 어린이들은 동생들이 넘어지지는 않을까 살피면서도 송편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기본적인 형태의 송편을 몇 개씩 만들어 본 후에는 동물 모양 등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송편도 만들어보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어느 정도 송편 만들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마당으로 내려와 우리 전통놀이인 투호놀이와 제기차기를 즐겼다. 무더운 날씨에 너도나도 한복을 벗어놓고 전통놀이를 즐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제기차기도 배워보고 투호를 하나라도 더 넣으려고 정신을 집중한다. 향교마당에서의 아이들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풍화루 넘어 제천시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날 고려인 동포 자녀 추석 명절 예절 교육 행사에 참여한 리 레기나 부모는 “제천시에 이주해 온 후 많은 지원을 시에서 받고 있다”면서 “자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음에 들고 특히 오늘 우리 자녀들이 한국의 예절 교육을 익히고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시간을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통체험을 마친 어린이들은 선생님들의 손을 잡고 향교의 시설들을 돌아보며 향교의 역할과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공양왕 1년(1389)에 지어진 제천향교는 원래 마산 서쪽에 있던 것을 선조 23년(159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쇠퇴하였다. 그 뒤 순종 융희 1년(1907)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불에 타 없어졌고 1922년에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있고 그 밖에 부속건물이 있다.
제천향교 김명선 강사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분들을 만나서 반가왔다. 아이들을 위한 예절 교육과 송편 만들기, 전통 놀이 체험을 통해 고려인 아이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제천시는 지역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국내외 고려인 동포를 대상으로 '제천시 이주정착 지원사업'을 펼쳐 올해 7월말 기준 재외동포 129세대 335명이 제천시에 둥지를 틀었다. 제천시는 단기 체류시설 제공을 비롯해 국어·한국문화 교육, 취업·보육·의료 지원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제천시는 한국어 교육센터 건립해 제천시를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 재외동포 이주의 국가 허브 지역으로 만들 계획도 추진 중이다.
김창규 제천시장은 “고려인 동포 자녀들이 우리 문화를 익히고 함께 추석을 준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동포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제천시가 선도적으로 고려인들을 이주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재외동포나 외국인들이 잠시 일손만 채우고 돌아가기보다는 인구위기 현실에서 이들이 우리나라에 정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 시스템을 정비하고 갖춰나가야 할 시점이다.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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