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가로챘다"…일만 터지면 검·경·공수처 '초유의 중복수사'

양수민 2024. 9.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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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 5월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22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6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42쪽 분량의 고발장이 들어왔다. 순직 해병의 상관이었던 이모 중령(대대장) 측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직권남용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공수처에서 ‘다시’ 수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전날 경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임 전 사단장을 검찰에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자 반발해 다른 수사기관을 찾은 것이다.

이틀 뒤인 7월 8일 경찰이 임 전 사단장을 불송치하자 순직 해병의 유족도 반발했다. 유족들은 같은 달 23일 경북경찰청에 이의신청서를 냈고 임 전 사단장 사건은 대구지검으로 넘겨졌다. 같은 인물을 두고 같은 혐의의 한 사건을 검찰‧경찰‧공수처가 모두 들여다보는 초유의 ‘중복수사’ 상황이 된 것이다.


임성근 전 사단장 놓고 3개 기관 다퉈…중복수사 난맥상


검‧경‧공 수사기관이 같은 사건, 같은 인물, 같은 혐의를 들여다보는 중복 수사가 잦아지고 있다. 사진 검찰, 경찰, 공수처
2021년 1월 공수처 설립과 함께 검‧경‧공 삼각 수사 체제가 출범한 이래 동일인‧사건‧혐의를 두고 중복으로 수사가 이뤄지는 난맥상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티메프(티몬‧위메프) 경영진의 사기‧횡령‧배임 의혹은 서울중앙지검과 서울 강남경찰서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은 서울중앙지검과 공수처가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2021년엔 손준성 검사가 연루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 검‧경‧공이 모두 관여했다.

법조계에선 세 수사기관의 중복수사는 장점보단 단점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당장 지적되는 건 수사력 낭비, 효율성 저하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같은 사건을 여러 기관이 들여다보면 인력이 비효율적으로 쓰인다. 경우에 따라 사건 처리가 지연되거나 불필요한 경쟁이 생긴다”고 했다. 실제로 기관 사이 충돌도 발생했다. 2021년 10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하던 검‧경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휴대전화를 보관하던 지인을 먼저 압수수색하려고 경쟁을 벌였다. 당시 검찰이 먼저 나섰는데, 경찰은 이를 두고 “검찰이 첩보를 가로챘다”고 반발했다.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이 7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구 회장,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뉴스1

사건 관계인들이 여러 수사기관에서 중복 조사받는 것도 비효율로 꼽힌다. 티메프 사태의 경우 주요 수사 대상자인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을 비롯해 수백 명이 넘는 피해자가 검‧경 두 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우려가 있다. 중복수사로 인한 인권침해 논란도 있었다. 지난 2021년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은 수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 처장의 유족은 당시 “검찰과 경찰 등에서 개인 하나를 두고 몇 번씩 조사를 해 형이 중압감을 크게 받았다”고 토로했다.


수사 범위 겹쳐…수사권 조정 협의체도 없다


졸속으로 진행한 수사기관 개혁에 중복수사 부작용은 예견됐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며 검경 사이 수사 범위가 모호해졌고, 공수처라는 새 기관이 탄생하며 혼란은 가중됐다”며 “이를 조정하기 위한 협의체를 둬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고 짚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수완박(검찰의 직접 수사권 축소)’인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과 윤석열 정부의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으로 검찰과 경찰의 수사 범위는 일부 겹치고 있다.

현행 공수처법 24조에 따르면 공수처는 공수처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사건을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언제나 이첩요구권이 발동되는 건 아니다. 검찰과 동일한 사건을 수사하는 경우 오히려 검찰 처분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기도 한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을 둘러싼 공수처 수사가 대표적이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는 인력 부족이라는 한계가 명확하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는 걸 보고, 그 중 부족한 것을 들여다보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총선기획특별위원회가 지난 2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불신 해소는 장점…“조정 기구 필요하다”


검‧경‧공 중복수사가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다른 기관이 수사를 했음에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 중복수사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 한 교수는 “특히 고위공직자, 권력자에 대한 사건을 공수처가 한 번 더 살피는 건 공수처의 설립 목적과도 연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 중복 난맥상을 해소하기 위한 협의체의 필요성은 대부분의 전문가가 공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 공권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수사 관할을 논의하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장응혁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연방‧주‧지방경찰이 담당하는 범죄 관할을 법률로 나눠둔 미국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 탄생과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중복수사가 벌어지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며 “갈등 조정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덧붙였다.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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