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그때 그 시절 '솔이네 추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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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을 열면 명절 두 밤 전의 설렘과 비장함이 느껴지는 우리네 동네 풍경이 펼쳐진다.
1995년 초판 출판 당시의 분위기상 그림당 한두 줄의 글이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 이 책은 그림만으로도 차고 넘치도록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묘한 책이다.
또 초판이 출판된 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보면, 이 책이 그 시절 서민들의 추석 풍경을 재미있는 그림으로 기록한 문서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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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영 기자]
▲ 솔이의 추석이야기 |
ⓒ 길벗어린이 |
전봇대 옆에서 중절모를 쓰고 쪼그려 앉아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는 노인, 약국에서 꿀꺽 약을 삼키는 사람, 수증기가 펄펄 나는 쇠 다리미로 옷을 다리는 머리 벗겨진 세탁소 아저씨, 동네 슈퍼 앞 추석 선물 세트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가게 주인, 추석 선물인 듯한 종이가방과 상자를 두 손 가득 들고 걸어가는 양복 입은 남자, 목욕하는 남자들과 머리하는 여자들.
이 그림책에는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다. 동시에 그 시절 추석을 앞두고 고향에 갈 준비로 바쁜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감있게 묘사된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소환되는 마법이 펼쳐지는 이유다. 아, 이건 어른들에 한정해 유효한 효과일 테다.
차를 타고 고향으로 이동하는 장면도 한 번 살펴보자. 그 시절 명절엔 차가 어찌나 밀리는지, 운전석에 앉은 사람들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거나, 거울로 치아에 뭔가가 끼진 않았는지 살펴보기도 하는 등 모두가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딴청을 피우고 있다. 차 안의 한 남자는 창밖으로 몸을 불쑥 내밀고 차가 왜 움직이지 않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차 뒤에 있던 아이는 지겨워 아예 발라당 누워버렸는지 뒷좌석 창문 너머로 아이의 발만 빼꼼히 보인다. 급기야는 차에 있던 사람들이 못 참겠는지 차를 도로에 세워둔 채 길 밖에 나와 라면을 끓여먹거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까지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골 마을의 풍경은 여유롭다. 남자들이 차례상에 절을 하는 가운데, 여자 중에는 아이인 솔이 혼자 남자들 틈에 끼어 절을 하는 모습도 1960년생인 남성 작가가 포착해 낸 지점이라 생각하면 예사롭지 않다.
추석은 끝났고, 솔이네 가족은 한밤중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명절날 나설 때와 달리 엄마 아빠의 등은 굽었고, 표정은 지쳐 있다. 솔이도 아빠 등에서 곤히 잠들었다. 집에 돌아온 뒤 옷을 정리하고, 할머니께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거는 솔이 아빠의 모습은 그 시절 딱 우리네 모습이다. 솔이와 솔이 동생은 이미 엄마·아빠가 펴 주신 이불에 누워 꿈나라로 갔다.
이 책은 당초 글 없는 그림책으로 기획됐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이 한 장의 그림만으로도 힘이 있는 그림책이길 바랐다고 한다. 1995년 초판 출판 당시의 분위기상 그림당 한두 줄의 글이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 이 책은 그림만으로도 차고 넘치도록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묘한 책이다. 또 초판이 출판된 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보면, 이 책이 그 시절 서민들의 추석 풍경을 재미있는 그림으로 기록한 문서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면 더욱 풍성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책을 보면서 어른들의 말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 본다. "우리 땐 저랬지"라고 하면서 말이다. 어린이들은 "그땐 정말 저랬어요?"라며 못 미더운 표정을 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이 책은 추석 즈음, 어린이와 어른들 사이에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엔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1인 언론 '소리의숲' (forv.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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