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색 갈색, 모발색 흑색, 신장 5척5촌

정만진 2024. 9. 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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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 콜렉션'이 지난 12일부터 구미 성리학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다.

장택상 본인이 목공예품을 특별히 애호하였던 관계로 전시회에는 양각박쥐문 초롱, 주흑칠수자문함 등 민속품도 많다.

도록 해설에 따르면 장택상은 모자를 좋아했는데, 전시되어 있는 중절모는 스테트슨사의 모자로 따님(장병혜)이 미국에서 구입하여 보낸 것이라 한다.

창랑이 장택상의 호이므로 창랑별업은 장택상의 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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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 컬렉션 인문학적 관람기

[정만진 기자]

'장택상 콜렉션'이 지난 12일부터 구미 성리학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다. 10월 20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초청 특별전'이다.

1971년 장택상의 부인 김연식 여사가 영남대에 380점의 문화유산과 유물을 기증했다. 기증품들은 분청사기 상감모란문매병(보물) 등 도자기류, 금동여래불입상 등 불상류, 추사 김정희의 친필액자 등 다양하다.

장택상 본인이 목공예품을 특별히 애호하였던 관계로 전시회에는 양각박쥐문 초롱, 주흑칠수자문함 등 민속품도 많다. 야전 목제베개 외 안경 등 본인의 유품도 상당수 있다.
 도자기와 모자(전시물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실물과는 색상 등 차이가 있습니다.)
ⓒ 정만진
도록 해설에 따르면 장택상은 모자를 좋아했는데, 전시되어 있는 중절모는 스테트슨사의 모자로 따님(장병혜)이 미국에서 구입하여 보낸 것이라 한다. 중절모를 보니 1920, 1930년대 지식인들의 풍모가 떠오른다.

이상화, 현진건 등이 20대 때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 한결같이 중절모를 쓰고 있다. 당대의 유행이었다. 요즘 청년들은 중절모를 쓰지 않는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중절모 신사는 '백이면 백' 노인이다.

그 탓에, 중절모를 쓰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가 꺼려진다. 노인으로 여겨질까 염려스러워 망설이는 것이다. 대중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본인 취향대로 의복과 장신구를 선택해도 무방한데, 공연히 주저하니 '시대의 풍토'는 자못 무서운 구석이 있다.
 장택상의 여권 일부
ⓒ 정만진
장택상의 여권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성명과 생년월일이 기재되어 있고 사진이 붙어있는 것은 요즘 여권과 같은데, 이해가 안 되는 항목이 한둘이 아닌 까닭이다.

첫째, 본적이다. 주소는 없고 본적이 적혀 있다. '본적: 慶尙北道'가 여권에 왜 필요할까? 굳이 한자로 적어야 할 까닭은 또 무엇일까?

둘째, '신장: 5척5촌(여권에는 한자로 적혀 있다)'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해준다. 요즘 자신의 키를 5척5촌 식으로 소개하면 듣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볼 것이다. 뜻이 같은 말을 해도 서구어는 통용되고 한자어는 그렇지 못한 사회로 변했다.

신장 '5척5촌'이면 몇m몇cm인가?

셋째, '모발색: 흑색'은 그렇다 하더라도 '안색: 갈색'은 정말 놀랍다. 갈색이라니! 백인, 흑인, 황인종, 회색인종 등은 들어봤어도 갈색인종은 금시초문이다. 아하, 이 여권이 미군정 시대의 것이로구나!

아니나 다를까, 도록은 이 여권이 '광복 이후'의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미군들 눈에 한국인 피부가 갈색으로 보였다는 이야기이다. 세상에! 여권에 피부색을 무엇 때문에 명시하는지도 의아하지만, 우리 백의민족을 갈색인종이라니!
 김구 글씨로 된 현판(전시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실물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 정만진
서화와 편액도 눈길을 끈다. 예술성으로는 추사 김정희의 친필 글씨로 된 액자와 미수 허목의 행서 족자가 압권이다. 그런데도 유난히 이목을 잡아당기는 현판이 있으니 백범 김구의 '滄浪別業(창랑별업)'이다. 창랑이 장택상의 호이므로 창랑별업은 장택상의 별서이다.

다른 현판 '楓溪書屋(풍계서옥)'도 창랑별업과 거의 동의어이다. 풍계서옥은 단풍과 계곡 속 책 읽는 집이니 일반 주택은 아니다. 그런데 풍계서옥 글씨를 쓴 사람이 이승만이다.

김구와 이승만의 글씨가 함께 있는 풍경

김구와 이승만? 우리나라 현대사 초기의 정치적 맞수였던 두 정객의 글씨가 나란히 장택상의 집에 편액으로 걸려 있었구나! 해방정국의 시대사를 돌이켜 보느라 잠시 눈을 감는다.

볼 것이 많다. 도자기, 부채, 목공예품, 벼루 등은 우리 민족의 길고도 빛나는 전통미를 새록새록 체감하게 해준다. 불상은 우리 민족의 신앙심, 인장은 사회성을 우러러보게 된다. 이런 전시회를 많이 다니면 저절로 문화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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