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주는 치유의 시간을 드로잉하다

이윤옥 2024. 9. 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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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김명식미술관', <김명식- 용인을 그리다> 전

[이윤옥 기자]

"이번에 발표되는 그림은 풍경 드로잉으로 국내 편이다. 전국 8도(도서 포함)를 여행하면서 대부분 즉석에서 그린 것들이다. 사실 내가 드로잉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손의 감각을 지속해서 유지하기 위함이다. 자동차도 오래 세워두면 녹이 나듯이 손도 머리도 안 쓰면 퇴보되는 것이다." '손도 머리도 안 쓰면 퇴보되는 것이다'라는 말에 정수리 한 대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이어 김명식 작가의 말은 이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드로잉 자체만으로 한 예술의 장르다. 따라서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 강조된다. 내 경우 대상을 한번 보고 꼭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되 빠른 필치로 그려나간다. 이때 현장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면서 뭔가 망설여지면 이미 그것은 작품으로서 가치는 실종된 것이다." '그리면서 원가 망설여지면 이미 그것은 작품으로서 가치는 실종된 것이다.' 다시 한번, 얻어맞은 기분이다.
▲ 태화강과 세연정 울산 태화강 2024(왼쪽), 보길도 세연정(2021)
ⓒ 김명식
'시인'이라는 허울 속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자기반성'의 마음으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전시장 안에는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시골 논밭은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선 듯 군데군데 노란빛도 어우러져 화사하면서도 은은하고, 은은하면서도 편안하다. 얼마 전 고산 윤선도를 만나러 해남으로, 보길도로 떠나면서 보았던 논밭의 풍경이 눈앞에 가득하다.
▲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 1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 1
ⓒ 김명식
▲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 2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 2
ⓒ 김명식
지난 8월 17일부터 시작된 '김명식 –용인을 그리다' 전을 지난 14일 다녀왔다. 한가위를 앞두고 민족의 대이동이 극심할 듯하여 망설여졌지만, 다음날 미국 LA로 출국을 앞둔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을 지낸 배국희(81) 선생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 이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는데 생각보다 길은 뻥 뚫려 있었다. 서울에서 어지간히 일찍 서두른 덕에 오전 11시 개관 10분 전에 도착한 우리들은, 미술관 앞 명물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유마저 누렸다.

이번 전시는 두 가지 마당으로 나눠서 하고 있는데 1층에는 김명식 작가가 동아대 교수 퇴임 뒤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곳 용인의 논밭 등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고 2층에는 풍경 드로잉(국내편) 40여 점으로 꾸며져 있다.

"지난번 전시가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East Side Story)> 위주의 작품이라면 이번 전시는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Country Side Story)> 작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희종 관장은 친절하게 이번 전시 주제에 관해 설명해 주면서 전시 중인 작품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용인의 자연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영어로 중심을 '센터(center)'라고 한다면 '사이드(Side)' 는 분명 그 외곽, 언저리를 뜻하는 것이리라. 김명식 작가가 2004년 봄, 어느 날 작업실로 가는 뉴욕 7트레인 전철 안에서 우연히 창밖을 보다가 순간 스쳐 지나가는 집들의 모습 속에서 하얀색 집은 백인, 까만색 집은 흑인, 노란색 집은 동양인으로 느꼈던 영감에서 태어난 것이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면, 이번 전시의 주제인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는 용인의 시골 풍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 김희종 관장 '김명식- 용인을 그리다' 전시 가운데 가장 큰 작품 앞에서 김희종 관장이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 이윤옥
▲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 3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 3
ⓒ 김명식
그러나 작품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김명식 작가의 집 시리즈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이번에 선보인 논밭 풍경 또한 예사로운 암시가 아닌 듯 느껴진다. 인종차별의 극심한 현장에서 작가가 느꼈을 그 암담함과 부조리가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리즈였다면, 용인의 풍경을 그린 <컨트리 사이드 스토리>는 도시화로 소멸해 가는 농촌 풍경에 대한 작가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안타까움' 또는 상실되어 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감각을 일깨워 주기 위한 무언의 '메시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인시는 경기도에서 수원시, 고양시와 더불어 인구 100만을 넘는 거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자고 나면 논밭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집단 주거지와 초대형 쇼핑몰들이 들어서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제 작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평온한 시골 들판 모습은 점점 보기 어려울듯싶다. 그런 시대를 살아갈수록 우리는 푸른 산하가 그립고 황금 들판이 그립다. 특히 유년시절을 작가의 그림 속에 나오는 풍경 속에서 살아온 기자로서는 전시된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게 정겹다.
▲ 전시장 전시장 모습
ⓒ 이윤옥
▲ 채색한 악기 김명식 작가가 중국 여행시 중고시장에서 산 악기에 채색한 작품
ⓒ 김명식
2층에 전시된 드로잉전을 감상하다가 '보길도 세연정', '보길도 곡수정'이란 그림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바로 2주 전에 다녀온 고산 윤선도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2021년에 그렸으니 3년 전의 발자취였지만 반가웠다. 울산 태화강, 해남 미황사, 경주 황룡사터, 거제 바람의 언덕, 해남 땅끝마을, 부산 자갈치 시장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발걸음을 옮겼을 정겨운 이름들... 작품 하나 하나가 낯설지 않고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들이 오래전에 느끼던 그 정서를 작가도 함께 공감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배국희와 기자 김명식 미술관 앞 명물 작품 앞에서 배국희 선생과 기자
ⓒ 이윤옥
▲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전 김명식 작가는 지금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고 있는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 전에 참가 중이라고 사진을 보내왔다.
ⓒ 김명식
이제 가을이다. 지구 온난화 탓인지 올여름 유독 무더위가 극성스러웠던 기억이다. 화폭에 가득하던 푸르른 들판은 곧 황금들판으로 바뀔 것이다. 이 좋은 계절 '어디 좋은 미술관'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이들에게 마음의 여유와 치유를 한꺼번에 선사할 전시 '김명식- 용인을 그리다' 전을 추천하고 싶다.

【'김명식- 용인을 그리다' 전시 안내】
*전시기간 : 2024년 8월 17일(토)~2025년 1월 25일(토)
*개관시간 : 낮 11시~저녁 6시(일, 월, 화, 공휴일 휴관)
*최종입장마감 : 저녁 5시 30분
*전시장소 : 김명식 미술관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원천로 41번길 42-8
*문의 : 031-333-6055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문화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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