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낙도에서 전해온 전도 이야기(14) 6년을 누워지내던 할머니가 일어나시다

2024. 9. 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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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저는 외국에서 21년을 살다가 섬에 왔습니다. 서구 사회 속에 살면서 다정한 노년의 삶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혹 한국인 중에는 서양 젊은이들이 효를 모른다거나 예의범절이 없다고 오해를 하는데, 20여년을 살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접했습니다. 그들의 노년의 삶은 풍성하고 다정했고 서양의 젊은이들이 더 건강한 사회를 이루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섬사람들, 특히 어른들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은 매우 깊이 뿌리박힌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어른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충격을 받을 만큼 지나쳐서 함께 고생하며 살아온 늙은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본 적 없고 배운 적 없는 섬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갖지 않도록 기도하며 권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발소 어르신이 보여주신 전혀 다른 모습은 동네 주민들에게 큰 귀감이 되십니다. 본인도 늙으신 몸으로 할머니를 24시간 신경 쓰며 챙기고 행여나 먹는 양이 적으면 안타까워 고기반찬을 언제든 만들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목회자가 교인을 저렇게 돌본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다닐 것으로 생각될 정도랍니다. 이 어르신을 볼 때마다 반성을 많이 하고 배우기도 합니다. 혹 저에게 진심으로 섬기는 모습이 보인다면 이발소에서 배웠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동네 노인들 모여 앉는 평상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려면 물질도 시간도 귀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한 달가량 이발소를 방문하며 평상을 새로 만들고 간판도 든든하게 만들어드리며 집에 필요한 문제들을 해결해 드린 어느 날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씀을 합니다.

“목사님은 거리가 먼 곳에 가서 아픈 노인도 데려와 전도하는데 걷지 못하고 소대변도 못 가리는 우리 집사람 전도는 안 되겠지요?”

순간 저는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님이 첫 복음을 듣던 날이 불같이 떠올랐습니다. “기생의 아들도, 첩의 자식도 구원받을 수 있나요?” 그래서 저는 “예, 전도 대상이 충분히 됩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먼저 할머니를 교회에 모셔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어르신은 워낙 무속신앙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지금은 손톱도 안 들어가는 입장인데 웬일인지 제가 자주 와서 도움을 주는 일에 마음이 움직여 무당집에 세를 준 주인집 할머니를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요금표도 비싸게 보이고 마음에 안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인도하는 역사를 보면서 겉모습에 실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달려가는 전도자가 되려고 합니다.

약속한 주일 어르신은 할머니를 일찍부터 목욕시키고 새 옷을 갈아입히고 기다리고 계셨고 동행한 여전도사님과 양팔을 붙들고 움직이는데 긴장하셔서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셨습니다. 당황한 어르신은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다며 만류하시기에 다시 옷을 갈아입히고 차에 태워서 예배를 시작으로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그날부터 할머니는 천천히 혼자 걸어갔습니다.

그때부터 그 동네에서는 이발소집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기적도 아니고 또 저에게 무슨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어르신이 워낙 연세가 드셔서 할머니를 사랑하고 돌보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여전도사님과 사모가 그 문제를 잘 파악해 미리 화장실에 앉혀드리고 음식을 적당히 잘 조절했고 또 찬송의 즐거움을 깨달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란 같은 동네 친구 할머니 4분이 미리 교인으로 계시니 기뻤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6년이나 사회와 동떨어져 있다가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자존감을 찾으면서 몸과 마음이 급속하게 좋아지셨던 것입니다.

저는 하루에 한 시간씩 할머니를 찾아가 조금씩 가까운 거리로 운동을 시작해 그 폭을 점차 넓혀 갔으며 운동과 약을 드시는 과정도 점검해 관리하고 음식도 과다 섭취하지 않도록 챙겼습니다. 전적으로 신뢰하는 어르신의 도움으로 교회 나온 지 3개월 만에 손을 잡지 않고 혼자 걸어 화장실도 가시고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줄줄 외우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이발소 어르신의 친구 노인들은 모두 놀라면서 좋아했고 진심으로 축하해줬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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