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행운과 감동” … 반 고흐의 역작들을 우연히 만나다
전 세계서 모은 60여점 전시 … “1세기만의 헌정” 가슴 뭉클
◇1m 앞에서 명작 감상 … 어메이징한 시간 ‘심쿵’
지난 11일 영국 런던에서 엄청난 행운과 감동의 기회를 맛봤습니다.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대표 작품 60여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 출장길에 잠시 들렀던 영국 국립미술관(내셔널갤러리). 26년 전 넉 달간 연수를 하며 자주 찾았던 이곳에서 대단한 전시회를 관람했습니다.
미술관에선 마침 ‘반 고흐-시인과 연인(Van Gogh-Poets & Lovers)’이란 이름의 특별전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14일(현지시간) 개막에 앞서 이날 언론인들의 사전 취재를 위한 ‘프레스 뷰(press view) 행사를 열고 있더군요.
“나도 보고 싶다. 근데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입장이 가능할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PRESS’라고 적힌 국민일보 기자증을 입구 안내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웰컴.”
“땡큐.”
짧은 인사 한마디로 패스. 그리고 1시간여 동안 세계 명작들을 불과 1m 앞에서 보는 어메이징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감흥과 본 작품들을 알리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이에 귀국한 뒤 미술관 인터넷 홈페이지와 온라인 기사를 검색하며 벼락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몇 자 적어 봅니다.
앞서 저는 지난 7일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뮤지엄)을 탐방했습니다. 1년 반전엔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고흐의 작품을 일부 만났습니다. 더불어 2007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 나들이 온 그의 작품을 직접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그림에 압도당하라” … 미술관 자신감 뿜뿜
“1세기에 한 번 열리는 전시회에서 반 고흐의 가장 화려한 그림에 압도당하세요.”
미술관측은 이번 전시회에 이런 홍보문을 내놨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아래에서 연인 한 쌍과 함께 산책하세요.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올려다보세요. 반 고흐가 가장 좋아하는 공원인 ‘시인의 정원’이나 생 레미의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잠시 머물러보세요.”
미술관은 이어 “그의 ‘론 강 위의 별이 빛나는 밤’과 ‘노란 집’을 가까이서 보세요. 그리고 우리의 ‘해바라기’와 ‘반 고흐의 의자’ 등 여러 작품을 감상하세요”라고 적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미술관의 개관 200주년을 기념해 열리고 있습니다. 미술관은 1924년 ‘해바라기’와 ‘반 고흐의 의자’를 수집한 이후 1세기 만에 영국 최대 규모로 그에게 바치는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반 고흐의 그림을 모아보았습니다. 일부는 대중 앞에서 보기 힘든 작품입니다. 그림들은 그의 특별한 드로잉과 함께 전시됩니다.”
전시품들은 반 고흐의 고향 네덜란드와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서 임대한 것입니다. 또 개인이 소장한 작품도 8개나 있다고 하네요.
◇6개의 방에서 살아 숨쉬는 60여 작품
전시실 6개의 방에는 1888∼1890년 작품을 중심으로 반 고흐의 역작들이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큰 나무 문을 열고 첫 번째 방에 들어서니 한 군인과 비쩍 마른 아저씨를 그린 그림이 참가자들을 맞이했습니다. 각 그림에는 ‘연인’ ‘시인’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를 나타내는 작품들인 것 같았습니다.
‘미래의 화가는 지금까지 없었던 색채주의자입니다!’(The painter of the future is a colourist such as there hasn't been before!)
반대쪽 벽면에는 반 고흐가 언젠가 했다는 말이 크게 적혀 있었습니다.
옆 방으로 향하자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앗 저기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이다.”
지난 해 2월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먼저 인사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아 저기는 ‘해바라기’다.”
15송이(1888. 영국 국립미술관)와 12송이(1889,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로 구분되는 해바라기 두 작품이 같은 방향을 보며 걸려 있었습니다. 두 작품이 한 장소에 있는 것은 19세기 말 고흐의 작업실에 있던 때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두 꽃병에 적힌 ‘빈센트’라는 글씨가 보이시나요?
◇ ‘천의 얼굴?’ … 거장의 자화상이 많은 비밀은?
그 옆에 ‘자화상(1889.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과 ‘노란 집’(1888,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이 기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자화상’은 4일전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본 작품과는 달랐습니다. 또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작품(1887)과도 차이가 났습니다.
그가 그린 ‘자화상’은 43개 작품이나 있다고 합니다. 반 고흐가 자기 얼굴을 많이 그린 이유는 모델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렘브란트에게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인물 화가라고 부른 그는 종종 ‘내 영혼에까지 감동을 주는 것은 오직 인물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하네요.
‘침실’은 ‘아를의 방’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그림은 1888년 모두 세 점이 그려졌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작은 그의 첫 번째 그림입니다. 두 번째는 미국 시카고 미술관, 세 번째는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건너편에 ‘반 고흐의 의자’(1889. 영국 국립미술관)가 보이네요.
다른 방에는 그가 생의 마지막 ‘아를’과 ‘생레미’에서 창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나무도 있고 그가 입원했던 병원의 정원도 있습니다.
네 번째 방에는 고흐가 연필 등으로 그린 드로잉 14점이 모여져 있습니다. 고흐는 밝은 색상을 대담하게 사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드로잉 역시 마찬가지로 매혹적입니다.
한 방에는 반 고흐가 마지막 몇 달을 보낸 생레미의 정신병원 뒤에 보이는 ‘올리브나무’ 6점이 모여 있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시기’ 1888∼90년 중심
이번 전시는 반 고흐의 37년이란 짧은 생애 중 1888~90년을 주제로 합니다. 장소는 프랑스 남부의 아를과 생레미입니다.
19세기 인상파 거장의 가장 위대한 시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요. 빈센트는 이 두 곳에서 색채와 붓놀림이 역동적인 최고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미술관측은 “아를과 생레미에서 보낸 이 시기를 그의 경력에서 결정적인 시기로 본다”며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야심찬 규모의 시적 상상력과 낭만적인 사랑의 풍경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합니다.
반 고흐는 첫 번째 정신적 붕괴 이후 머물렀던 아를의 공원과 정신병원 정원을 놀라운 색상과 두껍고 활기찬 획으로 그렸습니다. 각 작품에서 햇살이 비치는 길은 밝은 파란색이나 노란색이고, 겨자색 나무는 녹청색 하늘을 둘러싸고, 플라타너스 나무껍질은 보라색 줄무늬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밤의 카페테라스’(1888.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미술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별이 빛나는 밤’(1889. 미국 뉴욕 근대미술관), 가셰 박사의 초상(1890. 개인 소장과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 반 고흐 미술관) 등도 볼 수 없었습니다.
저 그림 중 ‘해바라기’(1888)와 ‘반 고흐의 의자’ 등 2개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랍니다. 미술관은 100년 전 두 작품을 사 들였습니다.
◇ “흥미진진한 롤러코스터” … 언론들 극찬
그날 전시장 안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기자가 꽤 많았습니다. 각자 눈으로 감상하고 카메라로 찍고, 열심히 메모를 했습니다. 어느 기자는 작품을 돌며 휴대폰 영상을 통해 생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해설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다음 날 귀국길에 지인들에게 전시회 깜짝 방문 소식을 전하니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특히 고흐를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아내가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좋다구요.
그날 저와 같은 장소에 있었던 유명 언론사 기자들은 이번 ‘쇼’에 극찬을 했더군요.
가디언의 조나단 존스 기자는 전시회 리뷰에 “아를에서 별까지의 흥미진진한 롤러코스터”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이 대담하고 눈부신 전시는 예술가의 변형된 천재성에 대한 스릴 넘치는 감각을 선사하며, 그가 어떻게 아름다움과 희망, 뜨거운 색으로 주변 세계를 재창조했는지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더 타임스의 로라 프리먼 기자는 “이것은 엄청나게 독창적인 비전에 대한 아름답게 구성된 전시”라며 “보통 ‘100년에 한 번’이라는 전시에 회의적이라고 말했지만, 이 경우 과장된 광고를 믿으라”라고 썼습니다.
BBC의 보니 맥라렌 기자는 “국립미술관 관장인 가브리엘레 피날디 박사가 ‘이 전시는 반 고흐에게 전적으로 바쳐진 미술관의 첫 번째 전시다. 박물관과 수집가들이 이 전시에 훌륭한 그림을 빌려주는 데 놀라울 정도로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불운했지만 불멸의 천재 ‘빈센트’
반 고흐는 후기 인상파의 거장입니다.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2000여점(그림 900여 점, 습작 1100여 점)의 작품을 세상에 남겼다고 합니다.
그 작품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하기 전의 단지 10년 동안에 만들었다는 점은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반 고흐의 작품속 두드러진 색채, 힘찬 붓놀림, 그리고 왜곡된 형태는 현대 미술에서의 표현주의의 흐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예술은 죽음 이후 놀라울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특히 20세기 후반에는 그의 작품이 전 세계 경매에서 기록적인 금액으로 팔렸으며 블록버스터급 순회 전시회에 잇따라 출품되었다.”
미국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그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더군요.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한 밀밭에서 스스로 총을 쏘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고흐가 정말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는 생전에 생활고에 시달릴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당시 단 한 점의 작품밖에 판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후 불멸했습니다. 빈센트는 눈을 감은 지 10년 뒤인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를 계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동생 테오의 부인 요한나의 노력으로 전시회와 출판(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600여통의 편지 모음 등)이 이어지며 그는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로 이름을 남기게 됐습니다.
◇영국 가면 놓치지 말아야 … 한국서도 11월부터 고흐전
이틀전 시작된 전시회는 내년 1월19일까지 계속됩니다. 이 기간 영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회원이 아닌 일반인은 10월 13일까지 예약이 가능하답니다. 입장료는 24파운드.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대규모 반 고흐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주제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THE GREAT PASSION.’ 11월29일부터 내년 3월16일까지. 장소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원화 작품 가운데 70여 점이 선보여진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반 고흐의 진품을 소개하는 전시는 2007년 서울시립미술관, 2012년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바 있습니다. 저는 17년 전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빈센트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반 고흐 미술관이 인쇄해 온 ‘해바라기’를 구입, 지금도 거실 한쪽에 걸어두고 있답니다.)
이제 긴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미술 전문기자가 아닌 탓에 기사가 많이 허술함을 양해해 주십시오.
뉴욕 타임즈의 에밀리 라바지 기자가 영국 전시회를 보고 쓴 기사의 마지막 글귀를 인용합니다. 바로 제 마음을 대신 해준 얘기였습니다.
“반 고흐는 지나치게 친숙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인과 연인’에서처럼 항상 새롭게 볼만한 것이 있고, 어쩌면 더 느낄 만한 것도 있다.”
런던=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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