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행복 향한 염원 담긴 민화를 매일 쓰는 텀블러·에코백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소장 중인 작품을 모티프로 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만날 수 있죠. 이러한 기념품을 흔히 박물관 굿즈(Goods·상품)라고도 부르는데요. 박물관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museum과 상품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goods를 결합해 일명 '뮷즈(뮤지엄+굿즈)'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어요.
뮷즈의 유행은 전통문화를 젊은 층의 감성에 맞게 재해석하는 열풍이 불면서 2019년부터 본격화했죠. 대표적인 예가 백제시대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을 기념해 3D 프린팅으로 실제 유물의 절반 정도의 크기로 제작됐는데, 향로라는 원래 기능에 맞게 뚜껑을 열고 안에 인센스 스틱을 넣어 향을 피울 수 있죠. 기능적인 측면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색깔도 골드·코랄·라임·민트·블루·핑크·퍼플 등 다양해서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어요. 덕분에 9만9000원이라는 비교적 고가의 가격에도 출시 일주일 만에 초도 물량이 매진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죠. 이어 2020년 12월 출시된 국보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2024년 2월 기준 3만 개 넘게 판매됐어요. 인기 아이돌 그룹 BTS의 멤버 RM도 작업실에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뒀다고 공개한 바 있죠.
박물관·미술관에서 판매하는 기념품 외에 박물관·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민화를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어요. 윤근혜 학생모델과 최은서 학생기자가 서울 종로구에 있는 가회민화박물관을 찾아 민화를 활용한 굿즈를 만들어 보기로 했죠. 김수영 학예사와 윤순남 선생님이 여러 종류의 민화 앞에서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했어요. "가회민화박물관은 민화와 부적 등을 보존하고, 전시를 통해 일반인에게 알리기 위해 2002년 개관했어요. 상설전시 및 특별전시 외에도 민화에 대한 이해를 확산하고, 민화의 매력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민화 굿즈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죠."(김)
먼저 민화의 정의를 잠깐 살펴볼까요. 민화는 행복한 삶을 향한 민중의 염원과 각종 신앙, 일상생활의 모습,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교화적인 내용 등을 그린 그림입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그림은 도화서(圖畫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중심으로 주로 왕실과 사대부가 즐기는 사치품이었어요. 하지만 조선 후기 상공업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증가로 중인들도 부를 축적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실용적인 용도로 제작된 민화를 중인층도 본격적으로 소비하게 됐죠.
이러한 풍조는 19세기 초중반 한양의 모습을 담은 한산거사(漢山居士)의 고전시가 '한양가'에서도 드러납니다.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에 있던 다리인 광통교 아래서 민화가 병풍이나 낱장으로 제작·유통되는 모습이 묘사됐죠. 광통교 일대는 18세기부터 서화 시장이 형성돼 20세기 초까지도 다양한 종류의 문과 벽을 장식할 그림이 유통됐어요.
민화가 굿즈 제작에 잘 어울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특성 때문이에요. 첫째, 민화는 병풍·족자·벽화 등 실내 장식용으로 제작한 경우가 많아요. 둘째, 민화에는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공을 세워 그 이름을 널리 드러내길 바라는 부귀공명(富貴功名), 병이 없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는 무병장수(無病長壽), 행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오래 사는 삶을 원하는 수복강녕(壽福康寧) 등 구체적 소망이 담겼죠. 셋째, 민화는 강렬한 색채를 대비해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분위기가 밝고 경쾌해요. 이러한 실용성·상징성과 눈에 잘 띄는 화려함은 방·거실에 두거나 휴대용품으로 쓰는 굿즈와도 잘 어울리는 특징이죠.
가회민화박물관에서는 민화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상설전시관에서 충효와 삼강오륜의 도리에 대한 중국 고사 내용을 글자의 획 속에 그려 넣어 서체를 구성한 '효제문자도',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담겨 새해에 잘 어울리는 '청룡도', 여러 종류의 새와 꽃을 함께 그려 부귀와 장수·출세·다산 등의 소망을 담은 '화조도' 등을 살펴봤어요. 모두 행복한 삶과 관련있는 특정한 소망이 담겼으며, 화려한 색채를 썼다는 공통점이 있었죠. 또 병풍의 형태로 된 작품이 많았어요.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장면을 그린 '어락도'도 있었는데, 이 그림도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과 관련 있어요. 김 학예사가 "늘 학문에 정진했던 선비들이 물고기의 유영을 보며 잠시 현실을 벗어나 시원함을 느꼈다고 해요. 또 책과 문방구 등 남성의 생활공간이었던 사랑방의 기물을 그린 '책가도'에는 책을 가까이하고 학문에 정진하려 한 선비들의 취향이 그대로 담겼어요"라고 설명했죠.
민화는 병풍·족자·벽화 등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되다 보니 생활 공간마다 장식하는 그림 종류도 달랐어요. 병풍을 예로 들자면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방에는 '책가도'나 삼강오륜을 비롯한 유교적 윤리관이 담긴 '문자도', 안주인이 거처하는 안방에는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나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도'를 장식했죠.
가회민화박물관에서는 이러한 민화의 특성을 활용해 엽서·에코백·잔받침 등 15종류의 민화 굿즈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호작도'를 도안 삼아 은서 학생기자가 텀블러, 근혜 학생모델이 에코백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호작도'는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그린 그림으로,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우리나라 민화에 등장하는 한국 호랑이는 사납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고양이처럼 귀여운 모습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지죠."(김) 이러한 자유로운 표현 또한 민화의 특징입니다.
먼저 텀블러부터 만들어볼까요. 은서 학생기자는 텀블러의 겉면과 내벽 사이에 끼우는 내지에 '호작도'가 그려진 도안을 색칠해 넣기로 했어요. 먼저 붓과 한국화용 물감, 물통과 물을 준비하고 붓에 물감을 묻혀 원본과 대조하면서 도안을 칠합니다. "'호작도' 속 호랑이의 이빨·눈썹·발톱 등은 좁은 면으로 이뤄져 선 밖으로 물감이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해요. 좁은 면적은 붓을 90도로 세워서 칠하면 좀 더 수월하게 채색할 수 있죠."(윤)
또 하나 중요한 게 그러데이션이에요. 호랑이의 몸을 자세히 보면 등은 진한 주황색과 검은색으로 이뤄진 줄무늬가 있지만 배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털의 색이 옅어지고, 배의 털은 흰색이죠. 처음에는 색이 진한 등부터 칠하되, 배 쪽으로 갈수록 물로 물감의 농도를 조절해 주의해서 칠합니다.
열심히 원본과 대조하면서 도안을 채색한 은서 학생기자. 어느덧 도안 위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호랑이가 소나무 가지에 올라앉은 까치를 올려다 보는 모습이 선명한 색채와 함께 나타났어요. 채색을 마친 도안은 드라이기로 말린 뒤에 텀블러의 겉면과 내벽 사이에 넣으면 됩니다. 그러면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과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호작도'가 그려진 나만의 텀블러를 가질 수 있어요.
근혜 학생모델은 에코백 위에 '호작도'를 그리기로 했어요. 이렇게 물건에 바로 그림을 그릴 때는 해당 물건의 소재 특성을 고려해야 해요. 텀블러 내지는 소재가 종이라 한국화 물감을 사용했죠. 그런데 에코백의 소재는 천이기 때문에 패브릭용 물감을 사용해야 합니다. 패브릭 물감은 마르면 질감이 고무처럼 변해 잘 지워지거나 천에서 떨어지지 않죠. 근혜 학생모델이 "에코백에 있는 도안을 칠할 때 원본과 다르게 자유롭게 색칠해도 되나요?"라고 질문했어요. "그럼요. 민화는 원래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그림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색칠해도 돼요."(김)
종이에 비해 표면이 울퉁불퉁한 천은 붓으로 채색하기 다소 까다롭고 그러데이션도 상대적으로 어려워요. "패브릭 물감으로 채색할 때는 붓에 머금은 물감의 농도를 조절해 명암을 표현해야 해요. 등에서부터 배 쪽으로 칠하기 시작하면 붓이 머금었던 물감의 양이 점점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을 표현할 수 있죠."(윤) 근혜 학생모델은 도안에서는 흰색이던 호랑이의 발과 까치의 배·등을 푸른색으로 칠하며 자신의 개성을 반영했죠.
가회민화박물관 벽면에는 에코백과 텀블러 외에도 부채·판넬·화첩·키링 등 민화로 만든 다양한 굿즈가 걸려 있었어요. 최근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민화 굿즈를 만들기 위해 이곳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의 숫자도 늘었다고 해요.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과 행복한 삶을 향한 염원이 담긴 민화 굿즈는 실사용하기에도 선물로도 손색이 없답니다.
동행취재=윤근혜(서울 이문초 4) 학생모델·최은서(경기도 행정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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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우리나라 민중의 정서가 담긴 민화로 에코백을 장식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고, 까치는 행운을 상징한다고 해요. 가회민화박물관에서 전시 감상과 민화 굿즈 만들기 체험으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돼 기뻤어요. 사람들에게 잊힐 수 있는 민화를 알리는 이런 전문 박물관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윤근혜(서울 이문초 4) 학생모델
가회민화박물관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에 있어요. 북촌 거리에는 예쁜 음식점도 많고, 여러 건물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박물관에 도착해요. 저는 민화 하면 제일 먼저 호랑이가 그려진 그림이 떠오르는데요. 민화 속에 있는 호랑이의 모습과 동물원에서 본 실제 호랑이의 모습은 꽤 다르답니다. 민화 속 호랑이가 훨씬 귀엽고 고양이와 비슷했죠. 가회민화박물관에서는 민화를 활용해 여러 종류의 굿즈를 만들 수 있어요. 저는 '호작도'를 텀블러에 장식했어요. 김수영 학예사님에게 민화에 대해 배운 뒤에 '호작도'를 채색하니 느낌이 새로웠죠. 소중 친구들도 가회민화박물관에서 민화를 감상하고 재미있는 굿즈 만들기 체험을 하면서 알찬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최은서(경기도 행정초 4) 학생기자
」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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