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해리스도 中 싫어…韓 반도체는요?
누가 되던 韓 반도체 영향권…촘촘한 한-미·한-중 외교 전략 필요
"HBM(고대역폭메모리) 역량을 우리 동맹을 위해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앨런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
수출 통제를 담당하는 미 당국자가 10일(현지시간) HBM을 중국이 아닌 미국 동맹을 위해 개발해야 한다고 직접 언급했다. AI(인공지능) 가속기에 탑재되는 핵심 부품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첨단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차기 정부에서도 보호주의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본다.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활하든 해리스 부통령이 이기든 미국 중심의 공급망 기조는 가속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간 미국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기술과 더불어 군사력, 경제력에서도 중국 보다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 아래 여러 견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바마 정부부터 시작된 대중국 견제는 트럼프 정부에서 '관세 카드'로 노골화됐고, 바이든 정부 들어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등 제도화로 이어졌다.
바이든 정부는 첨단 AI 반도체 설계역량·첨단 컴퓨팅 반도체 통제를 강화하고 반도체 제조장비 통제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중국 때리기'에 힘썼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 일본 등 동맹국을 끌어들이는 등 공조 전략을 택했다. 동맹국들의 첨단 소재·부품·장비가 중국에 반입되지 않도록 막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대중 압박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에 따른 중국의 공급망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수입 감소 정책 효과를 관찰할 수 있는 반도체 장비는 부품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이후 80.9%의 수입 감소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는 중국 반도체 수입에 확연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렇듯 중국을 사면초가로 몰아넣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미국의 압박정책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에 최소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해리스 부통령도 "미국이 21세기 경쟁에서 승리하고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해 바이든 정부의 정책 계승을 예고했다. 따라서 방법의 차이일 뿐 중국을 압박하는 규제는 이어진다.
미국이 중국 규제 수위를 높이는 것은 철저한 자국 이익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수준의 역량을 확보하기 전까지 한국·대만·일본 등 동북아와 긴밀하게 협력한 뒤 서서히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전략이 내포돼있다.
이는 과거 유력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추정이 가능하다. 패트릭 겔싱어 인텔 CEO는 "30년 전에는 미국과 유럽이 반도체 생산의 80%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아시아가 그렇다. 이런 구도는 수정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에릭 슈미트 전 알파벳 회장은 "만일 대만 반도체 생산능력이 중국의 손에 들어갈 경우 미국 기술 산업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의 바람대로만 따라주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미국의 수출통제로 반도체 장비 국산화가 불가피해자, 중국은 반도체 제조장비, 팹리스(반도체 설계), 후공정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 전반 국산화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 중국 반도체 기업 SMIC는 28나노미터(nm·10억분의 1m) 이상 레거시(범용) 공정 증설에 집중해 2022년 3개의 12인치 공장을 증설했다. 2022년 8월에는 톈진 시칭에 75억 달러를 투자해 월 10만장의 12인치 공장을 추가로 건설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현재 44개 반도체 웨이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운영중이고 추가로 22개를 건설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중국은 32개 파운드리에서 레거시 반도체 생산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구원은 "레거시 반도체 생산에서 (중국) 기술자립은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된다"며 "식각, PR스트립, 세정, CMP(화학기계적연마) 장비 등은 이미 30~85%까지 국산화를 실현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때리고, 이에 질세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는 모습은 국내 기업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이 원하는대로 수출 통제에 동참하면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기술 개발 가속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발을 빼자니 한-미 협력이 걸린다. 메모리 반도체 투톱인 삼성과 SK로서는 고민이 커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해리스 당선 시 삼성, SK 등 국내 기업들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중국 제재 참여'와 '미 생산시설 투자' 요구 가능성을 염두하고 대비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트럼프 재집권이 성공할 경우 중국 제조업 대상 고율 관세에 따른 대비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율 관세 공약이 실현될 경우, 중국에도 타격이지만 대중 무역이 적잖은 한국으로서도 여파가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미 주도의 제조기반 내재화 및 대중 수출통제로 오히려 반도체 기술격차 벌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 관측도 있는 만큼 실익을 촘촘히 계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자력으로 반도체 기술 개발을 하고는 있지만 미국의 강력한 봉쇄로 장비 확보 및 기술 개발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산업연구원은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수입금지 등의 조달 제한이 있을 경우, 우리 메모리 기업에 대한 반사이익이 기대된다"고 했다.
기회와 위기가 모두 상존하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한-미, 한-중 전략에 각각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막대한 대미 투자가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미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수혜를 이끌어내고, 중국과의 갈등은 최소화해 안정적인 팹(생산 시설) 운영을 꾀하는 것이 최선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40%를, SK하이닉스가 우시와 다롄에서 D램과 낸드를 40%, 20% 생산할만큼 중국 내 생산 규모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장기적인 지정학적 리스크, 시장 수요, 팹 운영 효율성 등 종합적인 부분을 고려한 전략이 요구된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와 해리스의 정책 기조에 대응해 시나리오별 맞춤 전략을 촘촘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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