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평화‧민주‧인권 이야기 따라 서울 한 바퀴
지도 앱이나 포털 사이트에서 ‘박물관’을 검색하면 흔히 이름을 아는 국립박물관 외에도 수십여 곳이 나옵니다. 이런 작은 박물관들은 각각의 설립 목표와 주제에 맞춰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죠. 그중에서도 특히 시민이 함께하는 평화‧민주‧인권을 실현하는 공간이라는 특징을 공유하는 곳이 있어요. 서울 시내에 있는 근현대사기념관, 김근태기념도서관, 문익환 통일의 집, 박종철센터, 식민지역사박물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이한열기념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평화·민주·인권을 바라는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태어난 박물관(기념관)입니다.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를 계승하기 위해 2016년 개관한 근현대사기념관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부터 1960년 4·19혁명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알리는 역사박물관으로 다양한 전시와 교육·문화·체험행사를 운영하죠.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도서관·기록관·박물관의 기능을 가진 복합문화공간 라키비움(larchiveum)입니다. 찾아오는 시민 누구나 도서·기록·전시·공연 및 체험·교육·문화프로그램을 통해 민주주의 삶을 토대로 한 평화·인권·경제·정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는 ‘통일의 집’이란 현판이 달린 작은 빨간 벽돌집이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와 가족이 1970년부터 살던 집으로, 1994년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부인 박용길이 통일을 위한 토론과 교육의 장이 되길 바라며 ‘통일의 집’ 현판을 붙이고 시민들에게 공개했죠.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뒤 2018년 6월 1일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후원으로 집을 복원하고 근현대사 자료 2만5000여 점을 보존해 박물관으로 재개관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박물관이자 평화와 통일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문화공간이에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 빛나는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록·전시하는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으로, 일제 잔재와 분단체제 극복, 동아시아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힘으로 건립됐죠. 과거청산과 평화·인권·역사정의 실현을 위해 전시·교육·대외교류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있는 용산에서 광화문으로 나와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은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기점을 마련한 전태일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서울시가 건립한 곳입니다.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노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배우는 문화의 전당이자 전태일의 꿈을 이루기 위한 사랑·연대의 정신으로 시민과 함께 행동하는 노동인권교육의 장이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꿨던 청년 박종철이 살았던 관악구에서 2023년 지역 주민들과 관악구청이 뜻을 모아 건립한 박종철센터는 역사와 문화가 만나고 기억과 실천이 만나는 공간, 서로의 마음을 잇는 민주주의 문화·교육공간입니다. 1987년 6·10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요. 박종철 열사의 뒤를 이은 스물두 살 이한열의 죽음은 전국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 불을 붙여 6월 항쟁과 6·29 선언을 이끌어냈죠. 이한열기념관은 열사의 어머니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과 시민 성금으로 2004년에 세워졌으며, 2014년 사립박물관으로 새롭게 개관했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유품을 비롯한 6월 항쟁의 기록을 보존·연구하며 매년 2번의 특별 전시를 통해 민주주의 역사를 알려주죠.
(재)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부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역사를 기억하고,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알리고 있어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뿐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연대하며 여성·인권·평화를 향한 현재의 활동을 기록, 전쟁과 여성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박물관입니다.
이 여덟 곳의 작은 박물관이 평화·민주·인권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고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널리 만나고자 처음으로 손을 잡고 협력에 나섰어요. 앞으로 역사·인권·민주·노동·평화·통일 등 각 박물관이 기획하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와 답사‧교육 프로그램을 공유해 시민들이 그 가치를 직접 체험하며 역사의식을 확장할 기회를 함께 마련하기로 한 거죠. 이러한 시도는 세계평화박물관네트워크(INMP·International Network of Museums for Peace) 사례처럼 박물관네트워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요.
그 첫걸음으로 ‘시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스탬프북을 내고 ‘작은 박물관 스탬프투어’를 시작했어요. 각 박물관에서 신청(온라인도 가능)해 받을 수 있는 스탬프북을 펼치면 게임을 시작하듯 안내서가 나오고, 이를 통해 어디에 가고 싶은지 골라 갈 수 있죠. 예를 들어 ‘장미가 핀 담벼락 옆으로 보이는 계단을 따라 들어가고 싶다’면 이한열기념관에 도착하는 식입니다. 8곳을 투어하며 스탬프를 다 모으면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에서 작은 선물도 받을 수 있죠. 기관별 스탬프에도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있는데요. 예를 들어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스탬프는 국내 1세대 그라피티 작가 레오다브의 작품을 기증받아 활용했죠. 스탬프투어를 담당하는 김종욱 재단법인 역사와 책임 사무국장은 “마포구에 있는 이한열기념관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강북구에 있는 통일의 집·근현대사기념관과 도봉구 김근태기념도서관, 이런 식으로 근처에 자리한 기관을 묶어 한나절 답사 코스로 진행해도 좋을 것”이라고 팁을 전했죠.
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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