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나의 한국은 왜 겨울에만 머물러 있었을까?

빈장원 2024. 9. 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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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기행4] 영화 <한국이 싫어서>

[빈장원 기자]

십 년 전이었던 것 같다. 동창들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학창 시절 가장 성적이 좋았던 친구가 자신은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자식들이 3~4살 되었던 때였는데 기회가 되면 이곳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가장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자식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친구의 아이들은 아직 정규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였으며 과연 외국에 나가서 아이들이 교육을 받았을 때 행복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교육 때문이라는 건 핑계고 본인이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십 년이 지나서 그 친구는 과연 한국을 떠났을까? 친구는 자신의 말대로 지금은 한국에 있지 않다. 물론 주재원 생활이라서 시간의 한계가 있지만 아이들은 미국 부촌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났던 친구가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만 지금 난 궁금해졌다. 친구는 한국을 떠난 그곳에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계나의 한국
 한국이 시린 계나(고아성)
ⓒ 엔케이 컨텐츠
계나(고아성)의 한국은 왜 겨울에만 머물러 있었을까? 계나의 한국은 사계절 중 겨울로 대표된다. 그녀는 인천에서 서울 강남까지 왕복 3~4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허비한다. 시간에 쫓기고 쫓기다 보면 부모님과 여동생과 함께 사는 인천의 재개발 예정인 아파트에 도달한다. 이제 이주를 얼마 남지 않은 곳이기에 수리를 하면 돈이 드니까 부모님은 난방을 고치지 않는다. 곧 이사 갈 집의 대출의 일부분까지 부담해야 하는 계나의 겨울은 그래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추운 계절이다.

계나는 그 겨울이 죽고 싶을 만큼 싫다. 하지만 자신이 시린 피부로 체감하는 겨울은 사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비춘다. 원하지 않는 일들에 비위 맞추어 가며 지내야 하는 직장 생활과, 잘 지내는 남자친구 지명(김우겸)과는 사실 집안 환경 차이로 종종 관계가 어긋난다. 남들이 보면 계나가 보는 세상이 삐뚤어 보일 수 있다. 직장에서는 남들처럼 어느 정도 비위 맞추고 상황에 적응하며 지내면 되는 것이고, 지명과의 관계도 좋게 보면 적당히 시댁에 도움받으며 살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20대의 한국에서 사는 계나는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서 차근차근 계획해서 뉴질랜드로 떠난다. 부모님에게 도움도 주지 않고 반대로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도 않고 떠난 뉴질랜드에서 계나는 한국에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뉴질랜드에서 과연 그 소원을 풀었을까?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계나의 다음 페이지도 함께 그린다. 그리고 따뜻할만한 줄 알았던 미지의 나라, 뉴질랜드에도 차가운 겨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꿈을 키우는 재인(주종혁)과 계나
ⓒ 엔케이 컨텐츠
영화는 유독 한국의 겨울 장면을 보여 준다. 이것은 비단 계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많은 20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할 이야기다. 그리고 조금 넓혀 한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중국, 대만, 심지어 계나가 떠난 뉴질랜드의 젊은이들도 고국을 탈출해서 외국에서 직장을 얻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물 안에서만 지내는 것이 한심한 것을 일찍 깨달은 20대들이 선택한 자유의 나라에서 그들은 좋게 말해 꿈을 넓혀가고, 나쁘게 말하면 고국보다 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영화는 계나를 통해서 그 양면성을 보여준다.

뉴질랜드에서 곧 시민권을 획득할 줄 알았던 계나는 뜻밖의 사건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노력이 무너졌을 때 느끼는 허무함 역시 영화는 계나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유독 한국을 겨울의 모습에 집착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청춘들
ⓒ 엔케이 컨텐츠
나 역시 30대의 절반을 중국에서 지냈었고, 20대부터 배낭여행도 많이 했기 때문에 해외에 가고 싶어하는 청춘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하지만 도피의 목적인 해외로 갈망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처럼 살고 싶은 나라도 없다. 정치, 경제의 고통에서 벗어나면 살아가기 편리한 나라이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을 생략하고 겨울만 그린 <한국이 싫어서>가 아쉬운 면이 있다. 계나에게 나머지 3계절이 있고 한국의 가족, 친구들을 떠올려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다음에 한국을 떠나도 늦지 않을 거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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