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장례식 절차로 고통받는 자살 유가족 “이렇게 안아주세요”

김아영 2024. 9. 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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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구원은 행위 아닌 믿음으로 이뤄져, 그럼에도 성경은 자살 묵인하지 않아”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자살자가 확실히 정죄 받는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이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이유는 자살자들은 자살을 원해서가 아니라 악마의 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자들은 숲속에서 강도를 만난 살해당한 사람과도 같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1532년 4월 루터의 어록을 모아 놓은 책 ‘탁상담화’에서 밝힌 내용이다. 루터나 윌리엄 퍼킨스 등의 종교개혁자들은 ‘자살이 성령훼방죄’라는 중세의 견해에 대해 성경적 근거가 없다며 자살을 비윤리적 행위로 비판했고 자살과 구원 문제를 연결하지 않았다.

한국이 20년 가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오명을 갖는 가운데 한국교회는 자살한 성도의 유가족 돌봄 사역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자살의 유혹에 직면한 사람들에 대한 돌봄은 전조 증상을 민감하게 감지해 위험 요인들을 해결하도록 돕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족 구성을 가진 기독교인 유가족을 어떻게 돌봐야 할까.

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 홍순철)는 14일 자살 유가족 돌봄 사역을 주제로 ‘성산 9월 콜로키움’을 개최했다고 15일 밝혔다. 강사로 나선 이상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는 “기독교인 유가족에게 가장 힘든 문제는 자살한 가족의 사후 운명 곧 구원 문제를 어떻게 이해시키는지에 대한 내용과 장례식 방식에 관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성경, 자살자에 대한 구원 배제 언급 안 해

이 상임대표는 “구원은 값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통해 결정되는 것일 뿐 인간의 행위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자살한 성도의 경우라 할지라도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기독교인을 위한 장례 절차처럼 같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제공

이 상임대표에 따르면 신앙을 고백한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자살을 범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견해는 성경에 근거한 게 아닌 신플라톤주의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자살을 다루는 성경 본문은 자살에 대해 직접적·명시적·윤리적 판단을 하지 않았으며 자살자를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고 판단하거나 구원으로부터 배제된다고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살로 생을 마친 성경 인물들

그러면서 삼손이 자기 죽음을 알면서도 다곤 신당을 무너뜨린 사건(삿 16:33, 28~30)을 들었다. 이 상임대표는 “개혁주의 전통 주석들은 삼손의 자살이 비상한 전쟁 상황에서 민족을 구하기 위한 장렬한 전사로서 정당한 행위를 했다고 평가한다”며 “히브리서는 신앙의 조상을 소개할 때 아무런 논평 없이 삼손을 목록에 포함한다. 삼손의 죽음이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는 성경 기록을 고려할 때 윤리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고 했다.

성경은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죽음은 하나님께 범죄한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고 해석한다.(삼상 31:3~4)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의 자살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 상임대표는 설명했다.

자살,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 어김

그럼에도 성경이 자살을 묵인한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하나님의 뜻과 규범에 반하는 심각한 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상임대표는 “자살자는 행위를 결행하는 순간 회개할 수 있다.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총과 긍휼의 무한한 깊이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자살은 제6계명(살인하지 말라)을 어기는 행위다. 성경은 자살이든 타살이든 모두 하나님의 형상에 중대한 손상을 가하면 안 된다는 행위로 간주한다”며 “또 자살은 하나님만이 행사하셔야 할 인간의 ‘생명 종결권’을 자의적으로 탈취하는 행동이기에 정당화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놓는 세계관적 이유 가운데 무신론적·유물적인 세계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상임대표는 “자살자들 가운데 내세는 존재하지 않으며 현세의 삶이 끝나면 인간의 영혼은 소멸해 없어진다는 세계관이 있다”며 “기독교 세계관은 내세에 들어가기 전 인간의 영혼은 현세 안에서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자살은 당연히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대상이 된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고통 속에서 주의 뜻 구해야

자살은 대부분 삶 속에 찾아온 여러 가지 형태의 고통을 제거할 수 없을 때 죽음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 상임대표는 성경 인물 욥을 언급하면서 “삶 속에 제거되지 않는 고통이 있을 때 죽음에 의지하는 것보다 고통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두신 뜻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 뜻을 찾아야 한다”고 권면했다. 또 “자살에의 충동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가족들이 유념하고 자살 충동이 일어날 때 결연한 의지로 극복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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