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과 가상자산]②'승부사' 트럼프 촉 이번에도 맞을까
공화당, 7월 정책강령에 가상자산 내용 포함
민주당, 침묵 일관…구체적 공약 부재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각각 당선됐을 때 가상자산에 미치는 영향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입니다."
확실한 호재와 악재.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맞붙은 공화당 소속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소속 해리스 후보에 대해 국내 가상자산업계 전문가들이 내린 총평이다. 트럼프 후보는 '친(親)가상자산 대통령'을 자처하며 '지구의 가상자산 수도(the crypto capital of the planet)'를 만들겠다는 정책을 내건 후 구체적인 공약까지 발표했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던 해리스 후보는 노선 변화 기대감이 무색하게 추가 공약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샤이 트럼프(Shy Trump)'를 등에 업고 승리를 쟁취했던 트럼프 후보의 직감이 이번에도 통할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크립토 옹호론자들의 표심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양당간 판단이 엇갈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13일 아시아경제와 만난 가상자산 전문가 3인은 트럼프 후보의 가상자산 사랑에 대해 가상자산 시장과 산업 발전, 법 제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해리스 후보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과 비교해 가상자산 친화적 행보를 보일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후속 공약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나타냈다.
"트럼프 당선 시 美정부 인력 교체 전망…SEC 위원장 해임"
정석문 프레스토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당선 시) 가장 좋은 것은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대통령과 공화당이 승기를 잡으면 (미국) 행정부에서 인력 물갈이가 많이 될 것이란 점"이라며 "(이전 바이든 정부 때처럼) 소송을 일삼거나,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자르겠다' 등의 발언을 철회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의 경우 2016년 미 대선 때 샤이 트럼프의 표심을 끌어모으며 당시 강력한 경쟁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승리했다"며 "단순히 정치자원금 문제를 떠나 이번에도 가상자산을 옹호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중요하게 생각한 듯하다. 반대로 민주당에서는 이게 덜 중요하다고 본 듯한데 향후 트럼프의 판단이 들어맞을지는 지켜봐야 할듯하다"고 부연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인적 신념을 넘어 디지털자산에 관심이 많은 미국 젊은 층의 표심을 노리는 것 같다"며 "후원금 측면에서도 공화당 등에 들어오는 것을 신경 쓰는 것 같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공화당 자체가 (산업)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하고, 가상자산 역시 하나의 산업이기 때문에 고용효과 때문에라도 미국이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장경필 쟁글 리서치센터장도 "트럼프 후보는 SEC의 가상자산 규제와 초크포인트(Operation Choke Point·미국 정부가 은행 등 금융회사 검열을 통해 가상자산 산업을 억제하는 방식) 이슈를 모두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가상자산 사업자 측면에선 돈도 나오고 규제 불확실성도 해소돼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후보와 공화당에 대한 가상자산업계 기대감이 본격화된 때는 지난 7월이다. 공화당은 7월 정책강령(정강)을 발표하면서 가상자산 규제 완화와 지원, 자유로운 비트코인 채굴권·수탁권 보장 등의 구체적 내용을 담았다. 지난 5월부터 이어진 트럼프 후보 발언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일부 해소됐다.
트럼프의 광폭 행보는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로 이어졌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콘퍼런스 마지막 날 기조연설자로 나서 "'전략자산'으로서 가상자산을 비축, 보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법무부(DOJ)가 마약상, 불법 해킹단체 등 범죄조직에서 압수해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장기적으로 비축하겠다는 의미다. 전략자산은 미국 정부가 전쟁 등 비상시에 대비해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자산으로 석유·금·농산물 등 다양한 자산군·필수재로 이뤄져 있다.
정석문 센터장은 "트럼프 발언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아쉽다는 평도 있었지만 같은 당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이 그날 구체적인 법안을 발표했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본다"며 "루미스 의원은 향후 20년간 전략자산으로 비트코인을 보유한다는 내용의 '비트코인 액트(BITCOIN ACT)' 법안 내용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액트는 '국가 차원의 최적화된 투자를 통한 혁신, 기술 및 경쟁력 강화(Boosting Innovation, Technology, and Competitiveness through Optimized Investment Nationwide)'에서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약어이기도 하다. 법안의 핵심은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 법안(SBR) ▲체계화된 비트코인 ??매수 프로그램 ▲포괄적인 국가적 보관 정책 등을 마련하는 것이다.
장경필 센터장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이미 2~3년 전부터 기관투자자나 일부 정부기관으로부터 화폐 이상의 존재로 자리매김했지만, 대중들에게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되는 건 시간이 걸릴 거 같다"며 "만약 비트코인의 내러티브가 미국 정치계와 집권 정부 차원에서 시작된다면 대중에게 (가상자산을) 인식시키는 시간도 단축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리스, 추가 구체적 공약 없어 "기대감 과했다"
반대로 민주당 대선 후보인 해리스 후보의 경우 시장 의구심이 큰 상황이다. 당초 시장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 사임 후 민주당 대선 후보로 해리스 후보가 떠오르면서 당시 가상자산 정책 노선 변화가 클 것이란 기대감이 나왔다. 최근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해리스 후보에게 겐슬러 SEC 위원장을 해임하라는 정치후원자들의 노골적인 요구도 뒤따랐다. 하지만 현재는 해리스 대선 캠프 정책 선임 고문인 브라이언 넬슨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관련 질문에 "신흥 기술과 관련 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책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게 전부다. 후속 공약은 부재한 상태다. 해리스 후보 측이 가상자산업계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한다는 추측성 보도도 이어지고 있지만, 풍문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정석문 센터장은 "(현재 구체적으로 밝힌 게 없기 때문에) 초기에 사람들이 가졌던 기대감이 과도했던 게 아닌가 싶다"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민주당이 들어선다고 가정 시 해리스 후보는 바이든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했고,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 등 기존의 파워 네트워크가 유지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거 같다"고 짚었다.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은 지난해 7월 반(反)가상자산 법안인 '디지털 자산 자금세탁방지법(DAAMLA)' 발의를 주도한 인물이다. 이는 가상자산 지갑 업체와 채굴자를 포함한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업체를 금융기관으로 분류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워렌 상원의원은 가상자산에 대해 "세계가 직면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던 대표적인 비판론자다. 미국 가상자산 매체 언체인드크립토에 따르면, 지난 8월 해리스 후보는 2020년 워렌 상원의원 캠프 경제정책 부국장을 지낸 바라트 라마무르티 등 바이든 대통령의 전 보좌관 2명을 자문위원으로 임명해 "해리스가 가상자산 규제를 이어갈 것이라는 증거"라는 비판도 받았다.
홍성욱 연구원도 "(민주당 기조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힌트가 있는데, 현재 SEC가 규제를 강경하게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해리스가 대선 후보로 나왔는데, SEC가 계속 강경한 모습 보인다는 것은 해리스가 이를 용인하고 있다고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해리스 캠프에서 가상자산에 대해 언급을 꺼리는 점도 이런 판단의 근거로 꼽았다.
장경필 센터장은 "매크로 거시 관점에서 미국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인하 이슈가 호재로 풀이되는데, 트럼프 후보 당선 시 '호재+호재', 해리스 후보 당선 시 '호재+악재' 조합이 될 것"이라며 "어돕션(대중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채택·수용되는 상황) 관점에서도 트럼프가 됐을 때는 새로운 스타트업도 많이 나오고 긍정적일 것이나, 해리스 당선 시 부정적 영향이 있을 듯해 가격 상하방이 다 열릴 것 같다"고 전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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