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설명에 전율까지... 30년 우정이 만든 유튜브
지루한 귀성길을 달래줄 무언가 필요하신가요? 명절이지만 특별한 일정이 없으신가요? 모처럼 찾아온 연휴를 색다르게 해줄 유튜브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이정희 기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레 유튜브를 켜게 된다. 예전에 직장에 돌아온 사람들이 왜 손에서 TV 리모컨을 놓지 못하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 내가 딱 그 신세다. '정화의 시간' , 이게 내가 붙인 이 시간의 '합리화된 이름표'다.
바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마치 밖에서 입은 옷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듯이, 나의 정신도 밖에서 벌어졌던 온갖 일들을 정화시키는 통과의례가 필요한 것이다. 어디 명절이라고 다를까.
특히 올해 좀 이른 추석을 보내고 나면 난 이 유튜브를 통해 '정화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팟캐스트로 시작된 유튜브 <지윤&은환의 롱테이크>다.
▲ 유튜브 <지윤&은환의 롱테이크> 한 장면. |
ⓒ 유튜브 |
하지만 그렇다고 새삼스레 그녀의 유튜브 채널 <김지윤의 지식 play>에 들어가 그녀가 전하는 미 대선 향방에 대해 듣는 건 또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운영하는 또 다른 유튜브가 있었다. 바로 <지윤& 은환의 롱테이크>였다. 1년 전 팟캐스트로 시작해 얼마 전 구독자 5만 돌파했다고 기쁨의 라이브를 한 유튜브 채널이다.
그런데 김지윤 박사는 알겠는데, 전은환씨는 누구더라. 검색을 해보니 최연소 삼성전자 임원을 역임한 분이다. 뼈를 갈아 직장 생활을 했다고 김지윤 박사가 인정하는, 현재는 대학에서 국제 경영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였다. 흥미로운 건 김지윤과 전은환 두 사람은 사람이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미국 유학을 거쳐 30여 년 동안 우정을 나눈 사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과도 달랐다는데,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늘 서를 존중했다는, 그럼에도 결국은 '운명'이었다라는 두 사람의 우정이 흥미로웠다.
김지윤 박사 말로는 자기가 사람들 만나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걸 싫어하는데 전은환 교수를 만나서는 결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경영은 물론,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일본, 미국, 유럽으로 동분서주할 만큼 문화적 식견도 깊다는데, 거기에 두 사람은 50 줄의 나이에도 이 책이 좋으니 읽어보라 서로 권할 만큼의 지식을 공유하는 사이란다.
달변인 김지윤 박사와 나긋나긋 설득력이 넘치는 전은환 교수, 두 사람이 오손도손 나누는 대화는 수다와 지식의 경계를 오가며 귀를 열게 만든다. 거기에 최근 들어 공학박사 박지영씨까지 합세해 문-이과를 망라한 '지대넓깊'(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깊은 지식)의 세계를 펼쳐낸다.
▲ 유튜브 <지윤&은환의 롱테이크> 한 장면. |
ⓒ 유튜브 |
예를 들자면, 영국의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두 사람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에 대한 이야기나, 오나시스라는 한 남자를 둘러싸고 세기의 사랑을 한 마리아 칼라스와 재클린 케네디 이야기를 보자. 가십과 역사를 넘나들며 자신의 운명 앞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들은 가벼운 듯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의 갈래를 펼친다. 여성을 가사 노동으로 부터 자유롭게 만든 제 1의 공헌자 세탁기에 대한 영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공학 박사 박지영씨가 세탁기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시작하면, 전은환 교수가 세탁기 발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면 김지윤 박사는 세탁기의 대중화에 당시 참정권 운동을 비롯하여 여성들의 사회적 운동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건' 하나가 그저 물건이 아니라, 정치와 역사와 과학의 결정체라는 신박한 해석에 전율까지 느껴진다.
어디 이뿐이랴. <지윤&은환의 롱테이크>는 구겐하임을 비롯하여, 메트로 폴리탄, 뉴욕 휘트니 미술관, 영국 내셔널 갤러리 등 다양한 미술관과 미술품에 대한 지식의 보고다.
▲ 유튜브 <지윤&은환의 롱테이크>. |
ⓒ 유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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