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접수 마친 고3 딸, 자꾸 안아달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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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기자]
▲ 2025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된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입학정보관에 수시 접수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9.9 |
ⓒ 연합뉴스 |
먼 일만 같았던 고3 수시 원서 접수일이 다가온 것이다. 난 '수시'와 '정시'를 구분 못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여느 고등 자녀 엄마들처럼 입시 정보에 해박한 엄마는 아니었다. "본인들 문제는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아이가 알아서 해야 할 일임을 강조했지만, 수시 원서 접수일이 다가오니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할까 봐 내심 두려웠다.
이미 자녀 입시를 치른 친구들의 조언을 들어도 썩 갈피가 잡히진 않았다. 내 친구의 아이들과 내 아이는 사는 곳도,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 학과도 달랐고, 심지어 특목고를 다녔던 엄친아들과 엄친딸의 입시 정보는 일반고를 다니는 내 아이와는 대학 입시를 대하는 방향 자체가 달랐다. 그러게 가까운 외고에 진학했다면 좋았으련만, 내 딸은 당당히 일반고에 가겠다더니, '성적 급강하'라는 풍랑을 맞아 나침반을 잃어버린 조타수처럼 고등학교 기간 내내 허우적대다 고3을 맞이하고 말았다.
게다가 올해 입시는 변수가 많다.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더니, 6월 모의고사는 역대급으로 어렵게 출제되어 영어 과목에서는 1등급이 겨우 1.47%에 머무르고 말았다. 국어나 수학도 난이도가 높아서 킬러 문항이 없는 시험의 유형이 도대체 어떤 건지 수험생들이 감을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7월 모의고사는 너무 쉽게 출제되어 6월 모고로 멘붕에 빠졌던 딸이 그나마 숨을 돌렸으니 7모(7월 모의고사)가 '수험생 좌절 방지용'이라는 말도 헛말은 아닌 듯하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허리케인급 입시 변수에 9월 모의고사엔 N수생이 역대급으로 몰렸다. 수능과 가장 근접한 유형의 시험이라는 9월 모고가 뚜껑을 열어 보니 어처구니 없이 쉬운 난이도였다.
매번 국어 시험으로 시험의 난이도를 체감하던 딸이 국어 시험을 다 보고 나서도 30분이 남았다니 말 다했다. 친구 K는 아들이 지난해 서울의 한 명문대에 진학했다가 더 상위급 대학을 목표로 반수를 택해 친구들 사이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 친구 아들이 9월 모의고사를 보고 나와서 엄마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가, "레전드급 바보 시험"이었다니, 시험의 난이도를 실감할 수 있겠다. 국어 화작(화법과 작문)은 1등급 컷이 98점이라 3점짜리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일 거라니, 도대체 수험생들에게 수능 시험을 어떻게 대비하라는 것인지...
나침반을 잃고 헤매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놓쳤던 것들을 챙기며 겨우겨우 3학년 생활을 붙들어 나가던 딸에게 올 한 해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을 것이다. 딸은 한 등급이라도 오르면 기쁨에 겨워 펑펑 울고 등급이 떨어지면 방에 틀어박혀 한동안 두문불출하곤 했다. 우리나라 모든 고3 자녀가 있는 가정의 모습이 이와 별반 달랐을까.
갈대 같은 아이의 마음, 5년은 더 늙은 것 같네
수시 원서 6장이 많은 줄 알았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부족했다. 특히 딸처럼 학종(학생부 종합 전형)이 유리한 아이에겐 수시 원서를 10장 쓰라고 해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 간의 수시 원서 접수 기간 동안 하루가 지나면 바뀌는 딸의 마음 때문에 5년은 더 늙은 것 같다.
"이게 끝이 아니야. 그러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라는 말로 달래 가며 마감 하루 전에 원서 6장 접수를 마쳤다.
막판에 딸이 학교 욕심을 내는 걸 보며 이런 마음이 좀 더 일찍 생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인간이란 언제나 닥쳐야 후회하는 어리석은 동물인걸. 결국 자신이 원하는 데로 결정했으니 결과가 어떻든 누굴 탓하진 못하겠지. 결국 중요한 건 선택한 자의 마음일 테니까.
딸은 수시 접수를 완료하고 난 뒤, 후련함과 불안 사이를 널뛰고 있다. 면접과 논술까지 남았으니 불안 쪽 지분이 더 클 게다. 수시로 단 것을 찾고 특별히 맛있는 것을 원한다. 정작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도 못하는 걸 보면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심리적 반응인 듯하다. 딸의 행위 중 심리적 불안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내게 와서 자주, "안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불안을 누그러뜨리려 엄마에게 자꾸 안아달라는 고3 딸. 이게 입시를 대면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일면이다.
학교 내신에 관계없이, 수능 점수와 상관없이, 우리나라 모든 고3 학생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이라는 감옥 속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무너진 자존감을 어떻게든 붙들고 떨어진 자신감을 꾸역꾸역 건져 올려 지금, 이 시간까지 살아낸 것이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 우리 아이들은 격려받아 마땅하다. 힘든 시간을 버티고 지금 가족 곁에서 온전히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고3 수험생들 모두 남은 기간 건강 유지하며 컨디션 잘 지켜내길 바란다. 힘들고 지칠 땐 가까운 이들에게 기대고 토로하며 스트레스 관리도 잘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무사히 안착하여 연말엔 가족과 함박웃음 짓길 마음 모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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