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목숨 지켜야 하는 로또 당첨자, 감독이 의도한 결말
[최해린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와 <부탁 하나만 들어줘> 등으로 이름을 알린 폴 페이그 감독의 신작 영화 <잭팟!>이 공개됐다.
떠오르는 아시아계 배우 아콰피나와 레슬러 출신의 배우 존 시나를 주연으로 내세운 <잭팟!>은 '로또 당첨자를 24시간 안에 죽이면 당첨금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소재를 절묘하게 풀어낸 웰메이드 액션 코미디이다. 하지만 본작에는 단순한 추격전을 넘어선 사회비판적 요소가 담겨 있는데, 이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 영화 <잭팟!> 스틸컷 |
ⓒ 아마존프라임비디오 |
이러한 <잭팟!>의 배경은 설정상 근미래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현재의 미국 사회를 풍자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쟁과 기후위기, 그리고 파시즘의 재(再) 대두로 서구권 제1세계 청년들마저 희망을 잃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설정인 셈이다. 계급 상승과 독립, 가정 구성을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다가올 종말(doom)을 기다리기만 하는 세대를 '두머 세대(doomer generation)'이라고 지칭한다.
이러한 두머 세대의 기반에는 타인에 대한 깊은 불신, 그리고 강력한 운을 동반한 '한방'이 아니면 '인생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있다. 이러한 확신은 암호화폐(코인)를 이용한 투기로 나타나기도 하며, 인터넷만을 가지고 집안에 칩거하는 등의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잭팟!>의 시민들은 로또 당첨자가 나타나면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무작정 당첨자를 쫓아간다. 이러한 설정은 코미디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씁쓸한 일면을 담은 것 같기도 하다. 각자도생하도록 방임하는 사회에서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면 살인이라는 도덕적 선도 넘어버릴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고, <잭팟!>은 이를 절묘하게 잡아냈다.
▲ 영화 <잭팟!> 스틸컷 |
ⓒ 아마존프라임비디오 |
그런 케이티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프리랜서 경호업자 '노엘(존 시나 분)'이다. 둘은 처음에는 계약으로 맺어진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에 머물지만, 추격자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케이티는 살 수만 있다면 로또 당첨금 따위는 다 나눠줄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고, 노엘은 오래전 용병 생활을 할 때 동료들을 저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작품의 후반부에 당첨금을 노리는 '루이스(시무 리우 분)'가 노엘을 납치해 케이티를 은둔 장소에서 끌어내려고 하자, 노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케이티는 '4시간 전에 만난 친구'를 구하러 간다. 루이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지만, 케이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자기 자신에게 무기를 겨눈다. 타인이 자신을 죽이기 전에 먼저 죽어 버리면 로또 당첨금은 없는 셈이 되어 버리기 때문. 루이스는 당일 만난 사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케이티를 구슬리려고 들지만, 그는 결국 케이티의 협박을 이기지 못한다.
풀려난 노엘과 케이티는 서로를 지키며 24시간의 끝까지 살아남고, 받은 당첨금으로는 주변 시민들을 돕는 재단을 설립하고, 노엘의 오랜 꿈이던 피자 가게도 설립한다. 케이티와 노엘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신뢰는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를 치는, 믿음이 부재한 배경 속에서 다다른 결말이기에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 영화 <잭팟!> 스틸컷 |
ⓒ 아마존프라임비디오 |
주인공이 당첨금을 포기하는 엔딩은 실질적인 변화는 이루지 못한 채 '선한 마음'에만 호소하는 영화가 되어 버리고, 주인공이 당첨금을 이용해 세상을 바꾸는 엔딩을 내더라도 결국 '선한 마음을 가진 데다가 부와 권력까지 지닌 강력한 개인이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선천적 한계에도 <잭팟!>은 과하지 않게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폴 페이그 감독은 항상 코미디 이면에 숨은 사회적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멜리사 맥카시 주연의 <스파이>에서는 비만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다루었고,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는 노인 복지의 맹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전작들에 비해 <잭팟!>은 '희망을 잃은 사회'라는 주제를 표면적으로 다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무기력해진 개인에게 다시 타인을 믿어 보라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연대에서 힘을 얻어 보자고 주장한다. 장르적 한계 안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을 만한 즐거운 영화가 한 편 더 탄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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