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이 뉴진스 안무를 표절했다고?” 저작권 없는 안무, 가치는 어디로? [댄서의 권리, 안무 저작권①]
안무저작권 인식 미비→법적으로 시비 가리기 어려워
"우리 안무가들이 매우 화가 나 있다. 허락 없이 안무를 사용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
"응? 실화? 광고 안무까지? 그동안 참았는데 우연이라기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래, 비슷할 순 있다. 그런데 보통 참고를 하면서도 예의상 변형이라도 하는데 이건 뭐 죄다 ‘복붙’이야" (김은주 뉴진스 퍼포먼스 디렉터)
"설마 했던 생각들로 그동안 잘 참아왔는데 광고 안무까지 갈 줄이야. 누군가의 고생이 이렇게 나타나기엔 지나쳐 온 과정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블랙큐 뉴진스 퍼포먼스 디렉터)
지난 5월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 민희진 전 대표의 갈등이 발발한 가운데 민 전 대표가 아일릿(ILLIT)이 뉴진스(NewJeans)를 모방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한 문제를 제기하니 하이브가 자신을 해임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뉴진스의 안무가 포함됐다.
이후 민 전 대표를 비롯해 뉴진스의 '어텐션'(Attention), '하입보이'(Hype boy)등의 퍼포먼스를 담당한 김은주 디렉터와 '쿠키'(Cookie), , '디토'(Ditto), '슈퍼샤이'(Super shy) 등에 참여한 블랙큐 디렉터가 아일릿의 ‘럭키걸신드롬’이 뉴진스의 광고 안무를 그대로 따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일릿이 뉴진스 안무를 따라 했다고 현재는 판단할 수 없다. 아일릿 퍼포먼스 디렉터는 뉴진스 측 주장에 “포인트 안무도 아닌 2초도 안 되는 동작이 표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아이즈원, 여자친구, 선미 등도 사용한 손동작이라고 덧붙였다. 설사 민 전 대표나 김은주, 블랙큐 디렉터가 안무 표절 의혹을 법정까지 끌고 간다고 해도 처벌은 쉽지 않다. 안무 저작권에 대한 기준과 법이 모호해 재판부가 재량껏 판단해야 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케이팝(K-POP) 안무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 안무계는 케이팝의 세계적인 인기,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트', '스트릿 맨 파이트'의 연이은 흥행, 유튜브, 틱톡 등의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댄서들의 활약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 가수들이 곡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포인트 안무를 강조한 챌린지가 SNS에서 강력한 홍보 도구가 됐다.
케이팝 안무는 보통 기획사에서 여러 안무가에게 안무 시안을 의뢰해 이뤄지는데, 노래에 어울리는 한 안무가의 작품을 채택하거나, 여러 안무가의 동작을 분절시켜 조합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보통 안무비는 5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다. 하지만 안무 작품에 대한 비용은 이게 끝이다. 작곡가, 작사가와 달리 안무의 권리는 기획사에 귀속돼 안무가는 저작권이 없다. 기획사에서 안무가들과 계약을 체결할 시 2차 창작으로 인한 안무 권리를 양도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안무가들은 용역, 혹은 창작에 대한 대가만 받는다.
저작권이 불분명한 상태다 보니 안무가들은 창작의 권리는 물론 경제적 이득, 표절 의혹을 뒷받침할 법적 효력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물론 법의 판결은 받은 적이 있다. 2011년 당시 걸그룹 시크릿의 안무가가 자신이 창작한 안무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댄스 교습학원 가맹업체와 가맹점주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금지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법원은 "안무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1년 판결로 인해 안무도 저작권 보호가 가능하다는 점은 확인됐으나, 모든 안무가 자동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 보호를 받으려면 개별 안무의 독창성을 증명하고, 저작권 등록을 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등록 시도가 미미하다. 앞서 언급했듯 안무가 창작물로서 보호받기 위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뉴진스와 아일릿 안무 표절 갈등에서 보듯이 2024년인 지금도 안무가의 안무 저작권의 법적 보호는 애매한 위치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안무가들이 의기투합한 한국안무저작권협회가 올해 4월 설립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아래 출범한 한국안무저작권협회는 안무가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협회가 출범하기는 했지만 이제 시작 단계라 갈 길은 멀다. 현행 저작권법으로는 안무저작물은 연극저작물의 하위 개념으로 인정될 뿐 별도로 분류되지 않는다. 2023년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에 5년간 안무 관련 등록 저작물은 191건밖에 되지 않는다.
내부의 인식 개선도 절실하다. 한국안무저작권협회가 국내 안무가 92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내부 조사 결과 안무 저작권 보호 현황과 관련, 최근 3년간 안무 창작 참여 시 주로 체결한 계약 유형에 대해 응답자의 약 40%가 ‘구두 계약’(26.1%) 또는 ‘아무 계약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13%)고 응답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유로는 ‘계약서 작성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관행상 요청하지 못했다’(47.8%)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계약 시 계약 조건에 대한 협의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주로 원청 업체의 의사가 반영된다’(55.4%), ‘계약 조건을 일방적으로 통보받는다’(23.9%)고 답변해 응답자의 약 80%가 원청 업체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불리한 조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무저작물 성과에 따른 추가 보상 경험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5.9%가 ‘추가 보상 경험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안무가들의 안무저작권 등록 및 성명 표시 경험도 저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저작권위원회에 안무저작물을 등록한 경험이 있는 안무가는 전체의 2.2%에 불과했으며, 안무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은 주된 이유로 ‘안무저작물에 대한 낮은 인지도’(72.2%)와 ‘등록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 및 어려움’(72.2%)을 꼽았다. 안무저작물의 성명표시 경험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약 11%만이 ‘성명표시를 항상 한다’고 답했다.
국내 최대 규모 댄스 레이블 원밀리언 윤여욱 공동대표는 "한국 안무계의 저작권 문제는 단순히 개별 안무가의 권리 침해를 넘어, 한국 문화산업 전체에 걸쳐 중요한 이슈다. 안무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 인식이 개선되고, 법적·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케이팝 댄스의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다. 이는 안무가들의 권리와 함께 대중이 케이팝 향유하는데 실직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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