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 류승완 “감독, 예술가 심장·장사꾼 머리 가져야”

임세정 2024. 9. 15.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편 큰 성공에 속편 고민 오히려 깊어져”
“‘재탕’은 관객을 배신하는 일이라 생각”
류승완 감독. CJ ENM 제공

“영화 만드는 사람은 예술가의 심장과 장사꾼의 머리, 그리고 노동자의 손발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영화를 만드는 태도다.”

영화 ‘베테랑2’를 만든 류승완 감독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자본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목표가 흔히 ‘흥행 스코어’라고 말하는 최종 관객 수는 아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건 중요한 일이고, 관객이 지불하는 영화 관람권 가격에 무게감을 느껴야 한다는 의미다.

2015년 1340여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의 속편이 지난 13일 개봉했다. 9년의 시간이 흘렀고, 영화 시장은 팬데믹 이후 맥을 못추고 있다. 사랑받은 영화의 속편이라고 전편과 같은 흥행을 장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류 감독은 “영화 만들어 개봉할 때마다 긴장되고 불안하다. 20년 넘게 이 일을 반복해서 하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적응이 안 될까, 편하지가 않을까 싶다”며 “전편이 워낙 사랑 받아서 ‘오랜만에 돌아오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까’ 하는 긴장감도 있다”고 털어놨다.

‘베테랑’의 팬들은 속편을 꽤 오래 기다렸다. 왜 9년이나 걸렸을까. 류 감독은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류 감독은 “1편을 제작할 땐 주목받는 영화도, 제작 규모가 큰 영화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알뜰살뜰하게 만들었다. 개봉 일정도 다른 영화에 계속 밀리다가 계획보다 1년 가까이 늦어져 여러모로 불안한 출발이었다”며 “기대 이상으로 흥행하니 좋으면서도 겁이 났다. 멤버들의 호흡도 좋아서 배우와 스태프들 사이에 속편을 만들거라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지만 너무 큰 성공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오히려 쉽게 시작을 못 하겠더라”고 돌이켰다.

잇달아 비슷한 작품을 속편으로 내놓고 싶지는 않았다. ‘베테랑2’의 시나리오를 고민하다가 다른 영화를 만드는 사이 일명 ‘사이다 장르’의 통쾌한 액션 영화들이 많이 등장했다. 법망을 피해 간 악당들을 응징하는 소재의 드라마들이 나와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베테랑’이 한 역할은 이미 다른 영화나 드라마가 잘 해주고 있으니 우린 좀 다른 걸 시도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중을 분노케 하는 사건들은 계속 발생했고 마음 속으로 가해자를 비난했다. 그런데 시간히 흘러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경우를 목도했고, 순간 스스로가 섬찟했다.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내 분노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내가 정의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정의’면 어떡하나, 자신의 방식대로 정의를 구현하는 일은 옳은가 하는 식으로 답이 없는 실체를 추적하며 파고들다 보니 ‘모가디슈’와 ‘밀수’ 작업이 먼저 끝났고 9년이 흘렀다”고 말했다.

그의 고민이 반영된 ‘베테랑2’는 그래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1편이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구도였다면 2편은 선과 악을 명확히 가르기보다 어떤 것을 좇아야 하는가, 정의는 무엇이고 신념은 무엇인가 곱씹게 한다.

류 감독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작은 부분이 보이면 거기에 집중해서 분노를 쏟아내고 다른 이슈로 넘어가버리는 일이 사회적으로 많았다. 이 영화에서 빌런이 누구인지보다 그가 야기하는 현상과 여파가 중요한 건 그런 맥락”이라며 “이런 톤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명확하지 않아 ‘위험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여야 관객들도 ‘제작진이 고민을 많이 했구나’ 생각하겠다 싶었다”고 소신있게 말했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 있는지 묻자 류 감독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전편에서 관객들이 좋아한 부분이 뭔지 알지만 ‘재탕’하기는 싫었다. 그건 관객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했다”며 “주인공이 그간 응원받은 만큼의 성장을 이룬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고, 액션이라는 장르가 가진 박력은 있어야겠지만 단순히 통쾌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었으면 했다”고 밝혔다.

영화 '베테랑2' 스틸사진. CJ ENM 제공

류 감독이 ‘베테랑2’에서 안전한 길보다 모험을 선택한 것은 신뢰하는 배우와 캐릭터 덕분이기도 하다. 이번 편에 새로 투입된 배우 정해인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제3자에게서 계속해서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인물인 박선우를 훌륭히 연기해냈다.

류 감독은 “서스펜스를 유지하기 위해 정해인에게도 이 인물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배우 스스로도 모순을 느끼며 연기하길 바랐고, 일관성을 지키려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며 “관객이 어떤 부분에선 박선우의 선량한 느낌, 어떤 부분에선 섬뜩함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지점을 배우가 연기한다기보다 박선우의 무표정한 얼굴은 유지된 채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감정이 달라졌으면 했다. 배우가에겐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에 저항하는 형사 서도철은 ‘베테랑’ 시리즈의 근간이다. 그는 “누군가 여행을 떠나려 할 때 믿을 만한 가이드가 있다면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가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대중이 사랑하는 서도철이란 주인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믿을만한 캐릭터가 아니라면 관객들도 딜레마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