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어찌 하오리까… 재계에서도 뜨거운 감자

전성필 2024. 9. 1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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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 빼앗는 장년층"
세대 갈등 양상도 나타나

정부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만 64세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재계에서도 만 60세에 멈춰있는 정년을 높이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테이블에 정년 연장안을 올려놓기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간 기업이 있는가 하면, 실제로 정년을 소폭 올린 사례도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세대 갈등이 격화할 조짐도 감지된다. 기업 내 청년층이 이미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 장년층과 일을 더 오래 해야 한다는 데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가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업들의 정년 연장 논의에 불을 댕겼다.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59세에서 64세로 늘리고 저출산·고령화 시대 노동력 부족을 정년 연장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현재의 정년(60세)이 유지된 채로 연금개혁이 추진될 경우 60~64세 연령층은 소득 공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퇴직 시기를 늦춰 장년층이 적정한 소득을 유지하도록 돕는다면 소득 공백을 해소할 수 있다. 아예 국회에서는 정년 연장을 핵심으로 한 법률 개정안이 제출됐다.

일부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정년 연장안 검토에 들어갔다. 기아 노사는 지난 9일 임단협 제9차 본교섭에서 정년 연장을 위한 노사 협상안을 마련했다. 정부 정책이나 국회의 관련법 입법 추이, 사회적 인식 등을 고려해 회사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정년 연장 방안을 찾기로 했다. 기아 노사는 ‘정년 연장 TF’를 만들고 내년 상반기까지 정년 연장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미 정년 연장이 이뤄진 곳도 있다. 동국제강 노조는 지난 3월 정년을 기존 만 61세에서 62세로 높였다. 인구 고령화 등 사회구조 변화에 따라 정년연장 필요성에 노사가 공감하면서 이뤄진 결정이다. 동국제강은 2022년 정년을 61세로 늘린바 있다. 업계에서는 2년 만에 정년 연장을 추가로 단행한 터라 동국제강이 향후 추가적으로 정년퇴직 나이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진통도 만만치 않다. 노사 합의를 통해 퇴직 나이를 높일 수는 있지만 몇 세가 적절한지, 정년을 단계적으로 올릴지 한꺼번에 올릴지 등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 대신 선별적 재고용을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기간을 늘리는 간접 방안을 도입하자는 재계 일부의 주장도 있어 눈치를 보는 기업도 많다.

일부에서는 기업 내 세대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년 연장이 현실화할 경우 기업 내 연령 구조는 ‘역피라미드’ 형태가 될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인건비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인건비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청년 일자리를 현재의 장년층이 빼앗아 가는 모습이기 때문에 청년층의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펴낸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원 수가 10~999인 규모의 사업체에서 정년 연장 고령자가 1명 늘어나면 청년층(15~29세) 고용은 0.2명 감소한다. 반면 고령층(55~60세) 고용은 0.6명 증가한다. 한 30대 대기업 직원은 “일을 가장 많이 하고 효율성도 높은 청년층은 경기 불황을 이유로 고용을 줄이고, 장기근속으로 근로의욕이 떨어진 장년층만 회사에 남는 것은 여러모로 회사의 생산성 측면에서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장년층의 불만도 크다. 은퇴 시기를 고려해 노후를 준비하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세대 차이를 견뎌야 한다는 고충을 토로한다. 30년이 넘는 격차가 있는 ‘손자뻘 직원’들과 어우러져 일을 해야 하는 게 고역이라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세대 간 갈등 조정이 정년 연장 추진에 앞서 해결해야 할 필수 과제라고 지적한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년 연장은 청년 일자리와 얽혀있는 만큼 세대 간 갈등 요소로 작용하지 않기 위해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정년을 높이되 장년층의 임금을 일부 줄이는 조건 등을 넣는 등 기업 차원에서도 경제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유연한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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