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아닌 '선수'로 기억해 달라"...니퍼트의 진심, '두산맨'이라 행복했다 [잠실 인터뷰]
(엑스포츠뉴스 잠실, 김지수 기자)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그저 '두산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두산 베어스의 '레전드' 더스틴 니퍼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유니폼을 입고 '선수'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2만 3750명의 팬들 앞에서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입맞춤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두산은 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KT 위즈와의 팀 간 16차전에서 니퍼트의 은퇴식을 개최했다. 외국인 선수의 은퇴식이 KBO리그에서 진행된 건 지난 1998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니퍼트는 이날 플레이볼이 선언되기 전 마운드에 올랐다. 2018 시즌 KT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두산 구단의 초청으로 시구에 나섰던 적은 있었지만 은퇴식 기념 시구는 느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니퍼트는 경기 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전에 몇 차례 잠실에서 시구를 했을 때는 큰 감흥은 없었다. 오늘은 그때와 다르게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니퍼트는 두산에서 뛰던 시절 자신이 달았던 등번호 40번이 새겨진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포수 양의지를 향해 힘차게 공을 뿌렸다.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만원 관중들은 니퍼트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환호했다.
1981년생인 니퍼트는 2010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될 정도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다만 이해 겨울 텍사스가 연장 계약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FA(자유계약) 신분이 됐고 자신에게 러브콜을 보낸 두산의 제안을 받아들여 KBO리그행을 택했다.
니퍼트는 두산 유니폼을 입고 펄펄 날았다. 203cm의 높은 신장에서 내리 꽂는 150km 초중반대 강속구를 앞세워 2011 시즌 29경기 187이닝 15승 6패 평균자책점 2.55의 특급 성적을 찍었다. 이후 2012, 2013, 2014년까지 베어스의 에이스로 팀 마운드의 기둥 역할을 해냈다.
니퍼트는 2015 시즌 어깨 부상 여파로 20경기 90이닝 6승 5패 평균자책점 5.10으로 주춤했다. 대신 포스트시즌에서 부진을 만회하는 무시무시한 활약을 선보였다. 키움 히어로즈와 맞붙은 준플레이오프 1차전 7이닝 3피안타 2피홈런 3볼넷 6탈삼진 2실점, NC 다이노스와 격돌한 플레이오프 1차전 9이닝 3피안타 2볼넷 6탈삼진 무실점 완봉승, 플레이오프 4차전 7이닝 2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 승리투수 등 가을야구 무대를 지배했다.
니퍼트는 두산의 우승 '한'까지 풀어줬다.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은 2015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시리즈 전적 1패로 뒤진 2차전 선발투수로 출격, 7이닝 3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맛봤다.
니퍼트는 이후 두산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선 한국시리즈 5차전에 구원 등판, 2⅓이닝 4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또 한 번 삼성 타선을 봉쇄했다. 두산이 2001년 이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품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니퍼트는 2016 시즌 선수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보냈다. 28경기 167⅔이닝 22승 3패 평균자책점 2.95 142탈삼진의 호성적과 함께 다승, 평균자책점 타이틀은 물론 정규시즌 MVP,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석권했다. 두산은 니퍼트를 앞세워 1995년 이후 21년 만에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니퍼트는 2017 시즌 종료 후 두산과 재계약이 불발된 뒤 KT 위즈로 이적, 1년을 더 뛰고 유니폼을 벗었다. 2018 시즌 KBO리그 외국인 투수로는 처음으로 통산 100승 달성에 성공하는 업적까지 추가했다.
두산은 비록 베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니퍼트의 헌신을 잊지 않았다. 성대한 은퇴식을 준비해 니퍼트와 팬들이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니퍼트는 직접 영어로 낭독한 은퇴사에서 "은퇴는 기본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거나, 직장을 떠나는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야구는 직업인 동시에 언제나 제 삶의 일부일 것이다. 그래서 작별 인사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고 운을 뗐다.
또 "두산에서 첫 시즌을 보낸 뒤, 나는 앞으로 다른 팀에서 뛰고 싶지 않았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었다"며 "2011년 첫 시즌 후 1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두산 유니폼이 나의 마지막 유니폼이 될 것이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니퍼트는 자신이 두산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가 아닌 '선수' 그 자체로만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자신 역시 두산에서 인연을 맺었던 모든 이들이 국적을 생각하지 않고 소중하다고 밝혔다.
니퍼트는 "내가 KBO리그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은퇴식을 치른다는 건 몰랐다. 사실 나는 내가 (두산에서) 외국인이라고 구분지어서 생각하지 않았다. (함께 뛰었던 선수들도) 나를 좋은 팀 동료였다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8년 동안 좋은 시즌을 보내면서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외국인이 아니라 선수 자체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진=잠실, 고아라 기자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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