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 '파묘'는 계속된다!
Y2K 트렌드의 인기가 도무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금, 잊고 지냈던 ‘그 시절’ 아이템들이 끊임없이 소환 중이다. 패션·뷰티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마케팅, 브랜딩, 디자인, 개그 소재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스며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잊힌 잠뱅이, 티피코시, 미치코런던과 같은 추억 속 브랜드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놓기도 하고, Y2K 무드를 지향하는 브랜디 멜빌과 같은 브랜드를 해외에서 들여오기도 한다. 방향 전환이 급진적인 젠지의 유행 골짜기에서 Y2K 열풍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직진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답 역시 젠지의 성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천편일률적인 것에 질색한다. 누군가 유행시킨 트렌드를 발 빠르게 좇을지언정 각자의 개성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 가방에 주렁주렁 키 링을 다는 ‘백꾸’, 인스타그램 스토리 게시물을 스티커로 꾸미는 ‘스꾸’, 운동화 끈을 리폼하거나 크록스 신발을 나만의 스타일로 꾸미는 ‘신꾸’, 스탠리 텀블러에 아이템을 장착해 꾸미는 ‘텀꾸’ 등의 현상이 유행하는 이유기도 하다. 젠지는 계속해서 남들과는 다른, 신선한 것을 갈망하지만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유행을 차용하는 게 쉽고 빠른 데다 신선하기까지 한, 일종의 가성비 좋은 트렌드 화수분인 것. 이젠 ‘누가 누가 더 빨리 과거의 전유물 중 가장 보기 좋은 것을 찾아내는가’가 쟁점이 된 듯하다. 마치 종묘의 옷 무덤에서 그럴싸한 것을 발굴하는 행위처럼. 그렇게 발굴된 트렌드는 소비 시장 전체를 견인한다. 지금 가장 핫한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인 오픈 Yy의 효자 상품은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로고플레이인 ‘I♥NY’에서 NY를 브랜드명인 Yy로 바꾼 ‘I LOVE Yy’ 프린팅 티셔츠다. 지금은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아이러브’만 쳐도 수백 개의 ‘I♥NY’ 모티브 티셔츠들이 검색된다. 눈두덩엔 푸른 기가 도는 메탈릭 섀도를 바르고, 립은 누디한 글로스로 연출하는 일명 ’10 Minutes 시절 효리 언니 메이크업’ 챌린지와 더불어 에스파가 ‘쇠 맛’ 열풍을 터뜨리며 메탈릭한 섀도와 하이라이터 제품군이 인기를 끌기도.이렇듯 Y2K 열풍에 가세한 스타들은 많지만 역시 시작점엔 ‘디토 감성’을 쏘아 올린 뉴진스가 있다. 특히 ‘Ditto’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빈티지 캠코더와 디지털카메라는 젠지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힙한 가젯이 됐다. 뭉개지는 화질과 빛바랜 듯한 톤마저 감성이 된 것. 세운상가에서 오랫동안 빈티지 카메라를 취급해온 상인의 말에 따르면 5년 전만 해도 빈티지 카메라는 한 대에 약 4만~5만원을 웃도는 가격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평균 2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으며, 그마저도 구하기가 힘들다. 최근 빈티지 디카를 구매한 20대 프리랜서 E는 같은 시공간에서 촬영했더라도 최신형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은 잘 찾아보지 않는 반면, 디카나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자주 찾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촬영한 결과물이 손에 들어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진 한 장 한 장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빈티지에서 영감을 받은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상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최근 애플은 ‘타이니팟’이라 불리는 애플워치 전용 액세서리를 출시했는데, 스트랩을 분리한 워치를 타이니팟에 끼우면 아이팟 클래식의 미니 버전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이팟의 상징과도 같은 스크롤 휠로 워치를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 ‘디토’ 그 자체. 레전드 폴더폰으로 불리는 ‘레이저’를 만든 기업, 모토로라는 약 18년 만에 그 명맥을 잇는 후속작인 ‘모토로라 레이저 40’을 한국 시장에 내놓았고, 케이스티파이는 모토로라 폴더폰과 블랙베리를 닮은 폰케이스 등으로 구성된 Y2K 컬렉션을 만들었다. 제니, 켄달 제너, 헤일리 비버 그리고 수많은 유튜버의 SNS에 따르면 빈티지 캠코더로 찍은 브이로그 역시 유행하는 현상 중 하나다. 이들 영상은 화면 질감이 고르지 않고, 화질도 살짝 깨지는 데다 뿌옇고 희미한 톤을 가졌지만, 20년 전쯤 저장해둔 청춘의 기록을 보는 것 같은 낭만이 있다. 현대적인 일상을 레트로한 기기에 담는다는 행위는 젠지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코닥은 발 빠르게 레트로 감성으로 찍을 수 있는 최신형 필름 카메라 ‘슈퍼 8’을 출시했는데 빈티지 필름을 장착하면 막 찍어도 감성적인 영상미를 담을 수 있어 전 세계 비디오그래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중. 미국 젠지들의 사랑을 받는 사브리나 카펜터의 뮤직비디오 ‘Espresso’는 흑백과 컬러를 넘나드는 연출이 특징인데, 컬러 영상에서도 빈티지 캠코더로 촬영한 듯 빛바랜 듯한 색감으로 Y2K 무드를 가득 담았다. ‘핀업 걸’이 떠오르는 스타일링도 한몫한다. Y2K가 조금은 지겹게 느껴지는 이들을 위한 변주도 있다. 라이즈의 ‘Impossible’ 뮤직비디오에서 볼 수 있는 미학 요소인 ‘젠엑스 소프트 클럽(Gen X Soft Club)’(이하 ‘GXSC’)을 눈여겨보자. Y2K와 함께 유행한 디자인 양식으로 좀 더 미니멀하고 사이버틱한 영상미가 특징이다. 영화 〈타락천사〉의 톤앤매너가 GXSC의 대표적인 레퍼런스로 언급된다. 에스파 ‘Supernova’의 뮤직비디오에서 차용한 디자인 양식인 ‘프루티거 에어로’ 역시 Y2K 트렌드의 궤적에서 신선함을 찾을 수 있는 돌파구다. Y2K는 이렇게 ‘기출 변형’의 형태로 끝없이 ‘착즙’이 되다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까? 그러다 2024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될 때쯤 다시 한번 유행이 될지도 모른다. 한 시대를 휩쓸고 지나가 우리에게는 촌스럽게 느껴지는 트렌드도 어떤 세대에겐 겪어보지 못한 신선한 ‘힙’ 그 자체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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