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최고의 날, 누군가에겐 몹시도 가혹한 날

LCK 제공

나란히 최고의 기량을 뽐낸 두 선수였지만, 가혹하게도 한 명만 웃을 수 있었다.

14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2024 LoL 월드 챔피언십 한국 지역 대표 선발전 3라운드 경기(4시드 결정전)가 펼쳐졌다. T1이 KT 롤스터를 3대 2로 이기고 4시드 자격을 확보, 월즈에 합류했다.

이날 KT는 경기 내내 탑 주도권 때문에 고전했다. ’비디디’ 곽보성이 요네로 하드 캐리를 한 덕에 게임을 풀 세트까지 끌고 가는 데엔 성공했지만, T1이 5세트 1픽으로 요네를 뺏어가면서 가장 확실했던 승리 플랜도 잃고 말았다.

마지막 세트에서 KT가 ‘제우스’ 최우제를 막기 위해 꺼내 든 카드는 카밀과 세주아니였다. 두 챔피언의 근접 공격 연계를 통해서 최우제를 말리고자 했다. 실제로 게임 초반부터 2인, 3인 갱킹을 여러 번 시도해 그에게 데스를 안겼다.

하지만 최우제가 굴하지 않고서 버텨냈다. 데스를 당할지언정 한 명을 길동무로 데려가는 등 계속해서 자신과 팀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KT의 계획대로라면 이승민이 사이드에서 라인을 밀고, 푸시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 그런데 좀처럼 최우제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도리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결국 24분경 탑 지역 전투에서 사달이 났다. 최우제를 향해 궁극기 ‘마법공학 최후통첩’을 썼던 이승민이 T1 진형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머지 인원들도 퇴각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T1은 여세를 몰아 내셔 남작을 사냥했다. 사실상 양 팀의 운명을 가른 전투였다.

서로 보호구 없이 칼춤 추는 걸 가장 즐기는 탑라이너 상대로 칼 대 칼 매치업을 선택한 승부수, 결과적으로는 패착이 됐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데프트’ 김혁규는 “탑에서 딜러와 딜러가 마주하는 매치업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구도였다. 팀적인 숙련도에서 상대가 앞섰기에 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초반 스와프 때 우리가 탑에서 이득을 보게 해주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로 예상했다”면서 “우리가 안 해본 매치업이다 보니까 팀적으로 급해지고, 교전에서 기댓값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페이커’ 이상혁은 “요즘에는 한쪽 사이드에서 한 명이 (갱킹을) 받아야 하고, 다른 쪽에서는 (다른 한 명이) 성장하는 그림이 많이 나온다”며 “최우제가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갱킹을) 잘 받아줬다. 중간중간 운영에서 우리가 이득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최우제가 제 손으로 월즈행 티켓을 쟁취해낸 반면, 곽보성은 그에 못잖은 활약을 펼치고도 독일행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는 4세트에서 이니시에이팅, 딜러 암살, 어그로 핑퐁 등 요네로 해낼 수 있는 모든 걸 해냈다. 그러나 마지막 세트에서는 가장 잘 드는 칼을 자신보다 먼저 집은 최우제의 활약을 지켜만 봐야 했고, 결국 허탈한 심정으로 헤드셋을 벗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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