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늙은’ 신입·40대 ‘늦깎이’ 육아 [‘미룬이 사회’ 코리아]
인구 구조·산업 구조 변화 등과 맞물려 우리 사회는 생애주기에 걸쳐 변곡점마다 지체 현상이 뚜렷하다.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 현상 가속화로 주요 기업에선 수시 채용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늦깎이 ‘30대 신입사원’은 일종의 ‘뉴노멀’이 됐다. 20대부터 경제활동 참가 시기가 늦춰지면서 결혼, 출산 등 세대별 사회 이벤트에도 연쇄 후폭풍이 이어진다. 늦춰진 결혼, 출산 등으로 40대 부장 등 관리자급 육아휴직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경제·사회 구조 변화 후폭풍의 맨 끝에 선 70대는 준비 안 된 연금 제도 등 복합 요인으로 ‘소득 크레바스’ 한가운데서 노인 빈곤으로 내몰린다.
‘취업 지체’ → ‘결혼·출산 지체’
한국 청년은 사회 진출 과정 곳곳에서 병목 현상에 노출된다.
우선 우리 사회는 대학 진학률이 유독 높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분석자료집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고등학생 상급학교 진학률은 72.8%에 달한다. 미국(62%), 독일(55%), 일본(58%)에 비해 눈에 띄게 높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 대학생 1인이 연간 부담하는 평균 등록금은 682만7300원이다. 즉, 한국 청년은 다른 국가 청년보다 평균적으로 4년 늦게, 약 2700만원이라는 비용을 안고 경제활동 출발선에 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청년 대다수는 20대 중반이 돼서야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뛰어든다. 취업은 또 다른 ‘허들’이다. 시간과 비용까지 들여 대학을 나온 인력은 임금, 복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중소·중견기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임금이 높고 복지 제도가 잘 갖춰진 대기업이나 금융권 등 취업을 원한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 중 대기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8월 발표한 ‘2022년 기준 중소기업 기본통계’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전체 노동자 중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이 81%에 달한다. 대기업 고용 비중은 19%에 그친다.
바늘구멍인 대기업 문턱을 넘기 위해 토익·자격증·인턴 등 ‘스펙 쌓기’에 시간을 투자한다. 여기에 더해 경기 불황 등으로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계속 줄이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출한 128개사를 분석한 결과, 주요 대기업에서 신규 채용 인원이 줄어드는 가운데 기존 직원 퇴직도 줄면서 인력 정체 현상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기업의 지난해 신규 채용 인원은 총 16만5961명이었다. 2022년 21만717명 보다 21.2% 줄고 2021년 18만7673명보다도 11.6% 감소했다. 지난해 신규 채용을 줄인 곳은 조사 대상 기업의 63%인 81개사였고 신규 채용을 늘린 곳은 37%인 43개사에 그쳤다. 특히 사회초년생인 20대 신규 채용은 2021년 8만394명에서 지난해 7만2476명으로 7918명(9.8%) 줄었다.
무엇보다 최근 수년간 산업 구조 변화로 신입사원 채용 때도 ‘경력’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조직 전반에 걸쳐 민첩성이 강조되자 업무 현장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경력 같은 신입’ 선호도가 여느 때보다 높다. 이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취업에 걸리는 기간은 늘어나고 신입사원 평균 연령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HR 업체 인크루트가 신입사원 평균 연령을 분석한 결과, 국내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1998년 25.1세에서 2020년 31세로 치솟았다. 과거만 해도 30세는 신입사원 선발의 ‘마지노선’으로 꼽혔다.
취업 지체가 심각해지면서 이제는 30세 신입사원이 ‘뉴노멀’이 됐다. 인크루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신입사원 나이 마지노선은 남성 33.5세, 여성 31.6세였다. 신입사원 나이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들은 경기 침체로 인한 채용 감소(34.7%)와 인턴, 아르바이트 등 경험과 경력 쌓는 기간 증가(21%)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HR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 경기 악화로 4년 전보다 채용 규모가 줄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4년 현재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더 올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30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사회초년생 생활을 시작하는 까닭에 결혼과 출산까지 연달아 늦춰진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가 34세, 여자가 31.5세로 1년 전보다 각각 0.3세, 0.2세 상승했다. 남녀의 평균 초혼 연령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10년 전에 비해선 남자는 1.8세, 여자는 1.9세 각각 상승했다.
결혼이 늦어지며, 자연스레 출산 시기가 밀린다. 아직까지 비혼 출산율이 낮은 한국은 결혼과 출산 간 관계가 밀접하다. 2023년 모의 평균 출산 연령은 33.6세로 전년 대비 0.1세 상승했다. 첫째아 출산 연령은 33세, 둘째아 34.4세, 셋째아 35.6세로 전년 대비 모두 상승했다.
출산 연령이 상승하면서 노산에 대비하는 인구도 덩달아 급증했다. 대표적인 예가 ‘난자 냉동’이다. 젊을 때 난자를 미리 얼려두는 것. 결혼을 늦게 하더라도 수월한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 증가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노산의 나이는 35세다. 노산 나이가 되면 임신 난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차병원그룹 산하 5개 난임센터에서 취합한 미혼 여성의 난자 동결보관 시술 건수는 누적 4563건에 달한다. 차병원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난자 동결보관 시술을 하는 의료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미혼 여성의 난자 동결보관 시술 건수는 2015년 72건에 불과했으나, 2021년 연간 1000건을 넘겼고 2022년 1004건을 기록하는 등 늘어나고 있다. 전체 시술 건수의 69.3%는 35세 이상이었다. 35~40세가 502건, 35세 미만은 308건, 40세를 넘긴 여성이 194건이었다.
부모 세대 70대는 노후 빈곤
경제활동이 본격화하는 연령대가 지연되고 결혼, 출산마저 덩달아 뒤로 밀리면서 30대 여성, 40대 남성 등 관리자급 직장인이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우는 일도 잦아졌다. 결혼, 출산 등이 지연되는 배경에는 경제 구조뿐 아니
라, 개인주의 심화 등 사회 변화 요인이 맞물려 있기는 하다. 조직 입장에서는 업무 효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인 3040세대를 중심으로 휴직 사례가 집중되면서 노동력 수요공급 ‘미스매치’ 심화에 따른 생산성 관리가 화두로 떠올랐다.
산업계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3040 직장인이 육아를 이유로 휴직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 통계청 육아휴직 통계에 따르면,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대상으로 2022년 기준 육아휴직을 시작한 사람은 남성의 경우, 30대 후반(39.7%)이 가장 많았고 40세 이상도 35.3%로 나타났다. 특히 40세 이상 남성 육아휴직은 4만858건으로 30세 미만(1만6740건)의 2.4배에 달했다.
육아휴직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10년에는 40대 육아휴직이 극히 드물었다. 경제활동 시기 지연과 개인주의 심화, 주택 가격 상승 등 복합 요인이 맞물려 20대 출산이 급감하면서 2019년 들어 40대 육아휴직 건수가 30세 미만을 처음 앞섰다. 여성의 경우 30대 초반(30~34세)이 40.8%, 30대 후반(35~39세)이 34.1%로, 30대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40세 이상(14.9%)이 30세 미만(10.3%)을 큰 격차로 앞질렀다.
조직 입장에서는 생산성 관리가 난제로 떠올랐다. 통상 40대 남성은 부장급으로 기업에서 관리자 직책인 경우가 많다. 경제활동 참여가 남성 대비 상대적으로 빠른 여성은 30대 후반부터 관리자급으로 자리 잡는다. 30대 미만 연령대에서 경제활동 진입이 급감해 ‘3040세대’가 조직 생산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점에 비춰, 최고경영진 입장에서는 업무 효율성 관리가 화두로 대두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은 “조직원이 연령대별로 고르게 구성돼야 활력 있고 전문성 갖춘 조직이 된다”며 “고령화는 기업 경영 효율을 높이는 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고 말했다.
출산·육아 기간이 3040세대로 지연되면서 70대는 ‘소득 크레바스 포비아’에 노출됐다. 법정 정년인 60세까지 실질적으로 자녀 ‘뒷바라지’를 마무리 짓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정년 이후 현금흐름이 급감하는 시기에도 비용 지출을 줄이기 힘들게 된 탓이다. 이 탓에 선진국 대비 연금 제도 완결성이 부족한 국내 사정에 비춰 적지 않은 70대가 노인 빈곤으로 내몰린다. 중위 소득(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간에 위치한 사람 소득) 50%에 미달하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을 뜻하는 노인 빈곤율은 한국이 2020년 기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다. 빈곤율이 OECD 평균(14.2%)의 2.8배에 달할 정도로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공적 연금만으로는 생활비 충당이 현실적으로 힘든 탓에 계속 근로를 원하는 고령층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 고령층(55~79세) 인구는 1548만1000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8만4000명 늘었다. 이들 고령층 가운데 지난 1년간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연금을 받은 사람 비율은 50.3%(778만3000명)로 겨우 절반을 넘겼다. 이마저도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75만원에 불과했다. 남자가 98만원, 여자가 50만원이었다. 연금 수령자의 45%는 25만~55만원 미만의 연금을 받았다. 연금 수령액이 50만~100만원 미만인 이들은 전체의 30%였으며 150만원 이상 비중은 12%에 그쳤다.
결국 대부분 고령층이 최소 월 노후 생활비(124만3000원·국민연금공단 3년 전 추산)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할 처지다. 이런 현실은 고령층을 근로 현장에 계속 묶어두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층 인구 10명 중 7명은 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성별로 보면 남자(77.3%)가 여자(60.3%)보다 높은 비율로 ‘계속 근로’를 원했다. 이들 가운데 ‘생활비가 필요해 일해야 한다’는 답변이 56%로 가장 많았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6호 (2024.09.11~2024.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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