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대기업…삼성 20대 직원 ‘뚝’ [‘미룬이 사회’ 코리아]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연령대별 지연 현상은 산업 현장에 연쇄 부작용을 낳는다. 산업계에서는 ‘30대 미만’ 급감과 ‘40대 이상’ 증가로 ‘역피라미드’ 구조가 고착화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간판 기업조차도 ‘고령화 덫’을 피하지 못했다. 기업 인력 구조 고령화는 산업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학계 등 전문가들은 조직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될수록 혁신에 대한 저항이 심화하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 기업 상당수가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성장 전략을 전환하는 변곡점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간판 기업의 ‘고령화 쇼크’를 우려하는 시선이 확산하고 있다.
전체 기업으로 고령화 확산
국내 기업 대다수는 지체 사회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대학 진학률 상승, 취업 준비 기간 장기화로 회사에 20대 신입 직원은 갈수록 줄어든다. 반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50대 직원은 ‘버티기’에 나서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20대 지원율이 높은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청년에게 외면받는 중소기업은 40대 부장급이 막내인 경우가 허다하다. 산업계 전반적으로 고령화 현상이 심해지며 경제 활력이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순위 500대 기업 중 123개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23년 500대 기업에서 50세 이상 비중은 22%로, 20대 비중(21.6%)을 역전했다. 신입보다 고연차 직원 숫자가 더 많은 ‘역피라미드형’ 구조가 된 것이다.
조사 대상 기업에서 50세 이상 임직원은 지난 2021년 대비 지난해 9.7%(2만7424명) 증가한 반면, 30세 미만은 4.9%(1만5844명) 감소했다. 특히 20대 비중이 30~40%대로 큰 편이었던 업종에서 20대 직원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IT·전기전자 업종은 20대 비중이 2021년 34.2%에서 2023년 28.9%로 줄어든 반면, 50대 이상 비중은 16.6%에서 19.8%로 늘었다. 제약 업종은 20대가 41%에서 36.5%로 줄어든 대신 50대 이상은 4.9%에서 5.3%로 소폭 증가했다. 2차전지 업종도 20대가 40%에서 34.2%로 줄고 50대 이상이 6%에서 7%로 늘었다. 기존 50대 이상 비중이 20% 이상이었던 식음료, 조선, 건설, 운송, 금융 등 업종에서도 50대 이상 직원이 많아졌다.
고령화는 전체 기업으로 번지는 추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평균 연령은 2020년 42.9세, 2021년 43.4세, 2022년 43.8세, 2023년 43.8세로 매년 올라간다. 제조업 고령화는 더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 가운데 20대는 55만5000명으로 60세 이상 취업자(59만9000명)를 밑돌았다. 제조업에서 60세 이상 취업자가 20대 취업자보다 많아진 건 2014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이다.
개별 기업 중 한국 간판 기업 삼성전자도 고령화를 피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 연령을 20대, 30대, 40대 이상으로 분류한다. 이 회사 40대 이상 직원은 2021년 6만8288명, 2022년 7만5516명, 2023년 8만1461명으로 매년 6000~7000명가량 늘었다. 반면, 20대 직원은 2021년 8만9897명, 2022년 8만3155명, 지난해 7만2525명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이처럼 국내 기업이 역피라미드형 조직 구조가 된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자리한다.
첫째, 늦은 사회 진출 속도와 채용 규모 감소다. 사회 분위기상 70%가 넘는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진학 후에도 군대·아르바이트·인턴 등 사유로 졸업을 미루고 20대 중반 이후 구직 활동에 나선다. 고용 규모가 작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준비하다 보니, 취업 준비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문제는 스마트팩토리 확산과 IT 인프라 고도화, 경기 불황 등 복합 요인이 맞물려 대기업 채용 규모가 갈수록 감소한다는 데 있다. 리더스인덱스 조사 결과 국내 500대 기업의 2023년 신규 채용 인원은 16만5961명이다. 2022년(21만717명)보다 21.2% 줄었다. 2021년(18만7673명)보다도 11.6% 감소했다. 지난해 신규 채용을 줄인 곳은 조사 대상 기업의 63%인 81곳이다. 늘린 곳은 37%인 43곳에 그쳤다. 20대 채용 규모는 매년 감소세다. 국내 500대 기업의 20대 신규 채용 인원은 2021년 8만394명에서 2023년 7만2476명으로 7918명(9.8%) 감소했다.
둘째, 버티는 직원 증가와 경력 선호 현상이다. 본인이 가정을 늦게 이루거나,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늦는 등 생계유지를 이유로 퇴사하지 않고 버티는 직원이 적잖다. 이 탓에 기존 직원 퇴직률은 계속 하락하는 모양새다. 리더스인덱스 조사 기업 중 퇴직 인원을 공개한 88곳의 지난해 퇴직률은 6.3%였다. 2022년(7.8%)보다 1.5%포인트 낮아졌다. 2023년 퇴직 인원은 7만1530명으로 2022년(8만8423명)에 비해 19.1% 줄었다.
경력 선호 현상도 고연차 직원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500대 기업의 50세 이상 채용 인원은 2021년 6114명에서 2023년 9457명으로 3343명(54.7%) 증가했다.
인력 구조 고령화는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임금 상승 부담이 증가하고, 노동생산성은 하락하는 탓이다. 인건비 부담으로 신규 채용 여력은 감소하고 역량 있는 전문 인력을 충원하는 데도 한계가 따른다.
가장 큰 문제는 생산성 저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인력 고령화가 기업 생산성과 인건비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인력 구조 고령화는 기업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고령화 비율이 1단위 더 높은 기업의 경우 생산성이 3.725만큼 낮아졌다. 논문은 ‘고령화 비율이 높을수록 생산성이 하락하는 폭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인건비 부담도 만만찮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올해 실시한 ‘저출생·고령화에 대한 기업인식조사’에서 기업 다수는 고령 인력 고용의 애로사항으로 높은 인건비 부담(35.8%)을 가장 많이 꼽았다. 국내 기업 다수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호봉급 체계를 따르고 있어서다. 국내 100인 이상 사업장 중 호봉급 도입 비중은 54%에 달한다.
70대도 “일하고 싶다”
50대 중심 인력 구조 고령화와는 별개로 퇴직 이후 시니어 계층을 재고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생애주기별 지체 현상 여파로 60대 이후 현금흐름 확보를 위해 계속 고용을 원하는 고령층이 늘고 있어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년 이후 고용 형태를 다양화해 비용 부담을 줄이는 한편, 이들이 가진 지적 자산과 노하우를 축적·전수함으로써 생산성 둔화를 완충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사회보장 책무 강화를 위해 시니어 재고용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법정 정년 이후에도 고용을 이어가거나 일자리를 찾는 60대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60대 후반(만 65~69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5.5%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인구 대비 ‘취업자+실업자’ 비율로, 직장 생활을 하거나 직장을 구하려 노력하는 사람 비율을 뜻한다. 즉, 60대 후반 전체 인구 가운데 일을 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전체 절반이 넘는단 뜻이다.
고령자 고용 확대는 시니어 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사회보장 성격도 짙다. 근로소득을 기반으로 시니어층이 세금과 연금을 지속적으로 납부할 수 있어 국가 재정 기여도도 높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기업 가운데 시니어를 재고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체 36만3817곳 가운데 시니어를 재고용한 기업은 13만981곳(36%)에 달했다. 이는 1년 전(10만8038개)보다 2만곳 넘게 늘어났다.
대전 대표 빵집 성심당, KT, 크라운제과, 현대엘리베이터 등이 시니어 직원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튀김 소보로’ 빵으로 잘 알려진 ‘로쏘㈜성심당’은 2020년 정부 고령자친화기업으로 선정됐다. 고령자친화기업은 직원 다수가 만 60세 이상으로 구성된 기업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총 400개 고령자친화기업을 지정했다. 성심당은 제과·제빵 생산, 포장 등 직무에 정규직 고령자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전통 과자류 제조 분야에도 경력직 고령 근로자를 채용한다.
KT는 2018년 시니어 컨설턴트 제도를 도입해 정년퇴직자 재고용에 나섰다. 오랫동안 일한 직원들이 정년에 가까워지면서 매년 1000여명이 퇴직한다. 50대 이상 직원 비중이 높은 KT 특성상 장기간 역량을 쌓은 직원이 정년에 맞춰 한꺼번에 이탈하는 현상은 조직 차원에서도 부담이다. KT가 시니어 컨설턴트 제도를 도입한 이유다. KT는 시니어 컨설턴트로 재고용하는 비율을 첫해 10%에서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정년퇴직자 약 600명을 그룹사 안전보조원으로 채용했다.
크라운제과는 2016년 회사 정년을 62세로 늘렸다. 정년 이후 원하는 사람에 한해 6개월 단위로 재고용하는 촉탁 제도를 도입했다. 지방 공장을 중심으로 인력난이 심해진 탓이다. 2교대 근무 등으로 지역 공장 생산직 선호도가 떨어져 신규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었던 데다 정년퇴직자가 늘어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렸다. 크라운제과에서는 정년퇴직자 절반 정도가 재고용을 선택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60세 정년퇴직 이후 촉탁 계약으로 최대 3년간 더 일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한다. 시니어 근로자는 근무 연속성을 높일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선 축적된 노하우를 활용해 생산성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앞으로는 6070세대 재고용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통계청이 55~79세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계속 근로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2012년 59%에서 2023년 68%로 11년 동안 약 9%포인트 늘었다. ‘언제까지 일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평균 71.7세에서 73세로 1.3세 늘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노동시장연구팀장은 “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대비하려면 노동 시장 구조 개혁을 미뤄선 안 된다”며 “시니어 직원 고용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6호 (2024.09.11~2024.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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