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번으로 갈 수 있는 MZ세대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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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누리 기자]
▲ 고향 향하는 추석 귀성객 추석 귀성객들이 13일 오전 서울역을 통해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 |
ⓒ 이정민 |
하지만 '한번쯤 돌아가고 싶은 곳'을 고향이라 한다면, 내게도 필시 고향은 있다. 단지 현실의 지역이 아닐 뿐. 내 학창 시절이 오롯이 녹아 있는 그곳. 명절이 되면 찾아가고 싶은 그곳은 바로 '온라인'에 있다.
그야말로 학교 하나를 졸업한 셈이다. 한글, 수학, 인성부터 상식까지 플래시 게임으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사이트였다. 월 11,000원으로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것도, 쓴 물건은 제자리에 갖다 놔야 한다는 것도, 모든 생명엔 끝이 있다는 것도 이곳에서 배웠다. 뚱뚱한 모니터 앞에 앉아 북극곰 형제가 빙하가 녹은 와중에 부모님을 찾는 에피소드를 봤을 땐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20년 후,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하듯 이 사이트를 검색해봤다. 한참 전에 서비스가 종료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하지만 웬걸! 아직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심지어 지금도 수많은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요즘 아이들은 온라인 교육이 익숙해 더 쉽게 접하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했던 '정리의 여왕 보리' 에피소드 게임이 그대로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흥미롭다. 어떤 것을 해도 무료하던 요즘, 이 작은 교육 플래시 게임이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옛 초등학교에서 그네를 타는 어른이 된 기분이다.
추석 당일 오후에 게임에 들어가면 반 친구들이 과반수 이상 접속해 있는 놀라운 현상도 벌어졌다. 남학생들은 단체로 PC방을 가기도 했다. 세배하고 받은 돈으로 캐시를 지르곤 했다. 내가 마비노기를 좋아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전투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형 MMORPG'라는 생소한 개념을 들고나온 마비노기는 사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낚시를 하거나, 광장에 모여 사람들과 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들 또래라 그랬는지 그때 친해진 사람들과는 고등학생 이후로도 인연이 되었다. 한 친구는 생일 때 택배로 우리집에 케이크를 보내주기도 했다. 다들 어른이 된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릴 적 놀던 동네에 방문하듯 로그인을 해본다. 당연히 유저들은 모두 오프라인 상태다. 펫도 소환해본다. '멍순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리트리버다. 1024살로 뜨는 나이가 무색하다. 당시 방학 때는 30일 넘게 해도 지치지 않던 게임이 이제는 30분만 해도 힘들다.
나는 친한 유저들의 농장에 들어가 방명록을 남기고 나온다. 작은 추석 인사다. 어릴 적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을 찾는 어른처럼.
작은 화면에서 일일이 미니룸을 꾸미는 형식은 너무나 번거롭다. 개성 있는 디자인은 점점 단순해졌다. 난 이 현상이 참으로 아쉬웠다. 그래서 싸이월드가 복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하지만 재운영은 그리 쉬운 과정은 아니었나 보다. 현재 싸이월드는 모바일도 PC도 닫힌 상태다. 그래도 웃고 있는 주황색 얼굴의 아이콘은 여전히 반갑다. 아래 써 있는 글귀도 우리의 시대를 담고 있다. <ㄷr시 만나서 반ㄱr워!>
이 글을 쓰다 문득 초등학교 졸업식 때 운동장에 묻었던 타임캡슐이 생각났다. 누군가 열어본 사람이 있을까? 검색해보니 실제로 몇몇 학교들이 20년 뒤 캡슐을 열어봤다. 결과가 재밌다. 다들 빗물이 새어 들어가 영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사진은 빛에 바랬고, 젖고 마르는 과정에서 애매한 냄새까지 난다. 역시 묻어 놓은 것을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온라인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어떤 곳은 지금까지도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고, 어떤 곳은 존재는 하지만 예전의 명성만 남아있기도 하고, 어떤 곳은 우리의 추억 속에 잠겨 있다. 온라인의 고향도 늙는다. 하지만 난 이 과정에서 되려 반가움을 느낀다. 온라인이 단순한 데이터 조각이 아님을, 추억과 시간을 먹고 자라는 유기체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연휴는 참 길다. 클릭 하나면 찾아갈 수 있는 온라인 고향. 그때의 우리가 궁금하다면 살짝 발을 내디뎌보자. 뜻밖의 옛 친구를 만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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