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 선생

김삼웅 2024. 9.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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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뒤의 시조는 이 글의 주인공 가람 이병기 선생의 작품에서 골랐다.

지금은 시와 소설에 비해 다소 뒷켠에 머무는 것 같지만 시조는 우리의 대표적인 문학장르에 속한다.

정갈한 우리말로 시조 수 백편을 지은 이는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196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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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 1] 머리말

[김삼웅 기자]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 (주)CPN문화재방송국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바람에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번쩍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오다.

앞의 시조는 조선초기 김종서(1383~1453)가 여진을 정벌하여 6진을 개척하고 두만강가에 석성을 쌓고 장대에 올라서서 기개를 뽑낸 시조이다. 뒤의 시조는 이 글의 주인공 가람 이병기 선생의 작품에서 골랐다.

지금은 시와 소설에 비해 다소 뒷켠에 머무는 것 같지만 시조는 우리의 대표적인 문학장르에 속한다. 국문학사에서 시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난초 (1)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 가고 서늘바람 일어 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난초 (2)

새로 난 난초 잎을 바람이 휘젖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 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 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듯 밀어 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정갈한 우리말로 시조 수 백편을 지은 이는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1968)다.

고려시대부터 민족문학의 한 장르로 발전해 온 시조는 계층을 가리지 않고 창작되고 애용되어 왔다. 예전에는 각종 모임에서 시조를 읊는 것이 예사였다. 그만큼 우수한 작품도 많이 생산되었다.

근대의 대표적인 시조작가는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 그리고 가람 이병기가 꼽힌다. 다소의 시차는 있으나 동시대로 묶일 수 있는 3인의 행적은 크게 달랐다. 앞의 두 사람이 일제와 독재의 품안으로 훼절한데 비해 가람은 청정고절을 지켰다.

시조는 조선인의 손으로 인류의 운율계에 제출된 일시형(一詩形)이다. 조선의 풍토와 조선인의 성정이 음조를 빌어 그 와동(渦動)의 일형상(一形相)을 구현한 것이다.

음파 위에 던진 조선아(朝鮮我)의 그림자이다. 어떻게 자기 그대로 가락 있는 말로 그려낼까 하여 조선인의 오랫 동안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서 이때까지 막다른 골이다. (주석 1)

육당 최남선은 근대에 시조를 크게 발전시키고 자신도 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러나 <독립선언서>를 쓰고, 수많은 빼어난 시조를 지은 그는 변절하여 일제에 부역함으로써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최남선의 뒤를 이은 작가가 노산 이은상이다. 그 역시 최남선과 마찬가지로 많은 작품을 쓰고 시조도 지었다. 시조집 <푸른 하늘의 뜻은>을 출간하였다.

시조는 의연히 건재했다. 죽지 않았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국민대중 속에 공명되고, 침투되고, 이해되고, 활용되기로 말하면, 신시라는 자유시보다는 시조의 편이 몇 십 배나 더 강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훨씬 더 오랜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주석 2)

이은상은 이승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 정권에 협력함으로써 시조 작가의 명성을 크게 실추시켰다.

주석
1> 최남선, <조선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 <조선문답> 4쪽, 1925.
2> 이은상, 시조집 <푸른 하늘의 뜻은> 2쪽, 금강출판사, 1970.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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