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영양죽으로 할 수 있는 돌봄

이선주 2024. 9. 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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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홍반장들의 새로운 미션... 요양 노인들의 밥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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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기자]

우리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는 '홍반장위원회'가 있다. 이웃의 다양한 부탁을 들어주는 영화 속 주인공 '홍반장'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조합에서 일을 하다보면 사람의 힘이 많이 필요하다. 조합을 청소하는 일부터, 김장 담그기, 바자회 하기, 이웃집 청소하기, 병원 이동 도움주기. 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홍반장'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홍반장을 모아 하나의 그룹으로 조직하기 위해 '홍반장 위원회'를 만들게 됐다.

2200여 명의 조합원들 중에서 남의 일에 선뜻 나서주는 '홍반장'들을 한 둘 모으다 보니, 현재 40명 쯤 모아졌다. 홍반장은 온라인 단체방에 모여 있다가, 미션이 주어지면 그때 여력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조합의 궂은 일, 마을의 일을 함께 해준다.

홍반장이 단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 있고 시간이 되는 사람이 가능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부담이 없어 활동하기가 수월하다. 소수의 홍반장이 아니라 여러 명의 홍반장들이다.

홍반장이 해야 할 미션은 우리 부천의료협동조합의 다양한 부서가 요청한다. 사무국에서는 조합원 우편물 보내기, 물품 포장하기, 바자회 음식만들기를 요청하고 돌봄 부서에서는 어르신 병원 이동하기, 방역 청소 도움주기를 부탁한다. 각 부서별로 무언가 사업을 펼치다 부서의 구성원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할 때 홍반장에 미션 수행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번 미션은 재택의료센터 방문진료팀이 요청했다. 현재 120여 명의 요양 노인 집에 매월 방문하여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데, 그분들 중 의료적인 처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 고민이 많았다.

제대로된 영양을 섭취해야 하지만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일반식을 씹어 먹을 수 없고, 요양보호사가 3시간 돌봐주는 것 외에 누구도 돌봄을 제공해주지 않아 돌봄 공백이 길다.

재택의료센터 방문진료 의사가 처방한 건 '따뜻한 밥 한 끼'. 홍반장이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였다.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돌봄 부서가 모여 머리를 모았다. 식재료를 위한 예산이 필요하고, 음식을 조리하고 배달하는 인력이 두루 필요하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매주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할 때 마다 비정기적으로 나타나던 홍반장이 이제 정기성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 홍반장이 처음 하는 이 일이 서로가 지치지 않는 미션이면서도 의미 있는 시작을 열기 위해 실현 가능한 범위를 정했다.

주 1회 10명 분의 영양죽을 만들어서 매주 전달해 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식재료 예산은 조합의 사회공헌비로 마련하기로 했다.
▲ 영양돌봄 회의중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내 돌봄부서가 모여 영양돌봄 사업 기획중
ⓒ 이선주
홍반장위원회는 조리를 담당할 사람, 배달을 담당할 사람을 찾았다. 단백질이 풍부한 영양죽 레시피를 준비했다. 한 종류의 죽만 준다면 질릴 수 있으니 한 번에 두 종류의 죽을 일회분씩 나누어 총4 팩을 전달하기로 했다.
받으면 기분 좋을 수 있도록 보냉백에 가지런히 담기로 했다. 환경을 생각해서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 용기에 담아 보내주고 다시 회수하여 열탕 소독하여 다음에 다시 쓰기로 결정했다.
▲ 영양죽 조리 반장이 만든 영양죽
ⓒ 이선주
9월 12일 목요일. 이제 드디어 홍반장이 첫 영양죽을 만들고 배달을 하기로 한 날! 재택의료팀은 배달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미리 조사하여 전달해 주고, 조리팀은 식재료를 사다 정성껏 손질하여 죽을 만들었다.
조리팀을 맡은 서영희 조리 반장은 첫 메뉴로 닭죽과 소고기야채죽 레시피를 준비했고 다음 번에는 동치미국을 같이 드려보자고 제안했다. 배달팀을 맡은 이경식 배달반장은 죽이 잘 배달될 수 있도록 배달팀을 모아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각각 두 세 사람씩 나누었다.
▲ 조리반장 홍반장이 만든 영양죽 앞에서
ⓒ 이선주
홍반장의 영양돌봄은 주 1회 10명으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종결 지점은 정하지 않았다. 홍반장이 후원을 모금하고 조리 반장과 배달 반장이 있는 한 우리의 영양돌봄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모아져 서로돌봄의 공동체 역량이 높아지리라 기대해본다. 서로를 돌보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돈으로는 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고, 우리의 공동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대안적인 마을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 배달반장 영양죽을 배달하는 배달반장
ⓒ 이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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