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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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영 기자]
연휴가 시작되었다. 공식적인 추석은 17일인 화요일이지만 금요일부터 귀성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가족도 추석을 맞아 부모님 댁에 갈 채비를 한다. 평소보다 차량이 많은 명절에는 목적지까지 6~7시간가량 걸린다.
남편과 교대로 운전하고, 몇 분마다 이어지는 아이들의 "얼마나 남았어?", "다 와 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운 나쁘게 정체 구간이라도 맞닥뜨리는 날엔 녹초가 된 상태로 부모님 댁 문턱을 넘는다.
황금 같은 연휴에 좁은 자동차 안에서 버티며 도로에 쏟아붓는 시간이 아깝고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내 집보다 편한 곳은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복잡한 귀성길 행렬에 동참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더 이상 고향을 찾을 일이 없다는 지인들의 말을 들으며 부모님 댁을 찾는 이 연례행사를 치를 날도 오래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변화는 명절 문화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구시대적인 차례 문화의 불합리함에 대해 말하라면 밤을 새우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망과 분노를 품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도 잘 알고 있다.
마음을 고쳐먹고 명절을 핑계로 그리운 부모, 형제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본다고 생각하며 평온을 찾는다. 딱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대단한 여가를 즐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처음 몇 해는 명절 근무 때문에, 그 뒤엔 아이가 어려 시어머님을 많이 도와드리지 못했다. 전에는 어머님께서 재료를 준비하고 전까지 부치면, 내가 설거지하거나 중간중간 쟁반을 치우고 떨어진 재료를 갖다주는 허드렛일을 맡았다.
해가 갈수록 연세가 드시고 허리가 좋지 않은 어머님을 대신해 몇 년 전부터는 내가 도맡아 전을 부친다. 다행인 것은 전의 가짓수가 매년 줄어들고 있고, 작은 어머님 두 분이 나물과 생선을 각각 나누어 만들어 오신다는 점이다.
친정에서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왔다. 올해부터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절대 고집을 꺾지 않을 것 같았던 보수적인 아버지의 결단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엄마는 식구들 먹을 나물과 몇 가지 명절 음식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엄마가 명절마다 훈장처럼 달고 있던 입술 물집을 올 추석엔 제발 보지 않기를. 절대 찾아올 것 같지 않던 변화가 우리집에서도 일고 있다.
부모님을 위한
양가 부모님들께 드릴 영양제와 화장품, 용돈 봉투를 두둑이(라고 쓰고 얇디얇은 이라 읽는다) 준비했다. 부모님들은 치열하게 먹고 사는 것에 매진한 세대라 스스로에게 돈 쓰는 것을 여전히 아까워 하신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이제는 좀 편히 쓰고 사셨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내 맘 같지 않다. 마음을 비우고 갈 때마다 부족하지 않도록 챙기는 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 안에 손 볼 것이 있으면 만능 수리공처럼 스스로 잘 해결하던 당신들이었다. 그러나 어제 다르고, 오늘이 다른 그들은 실수가 늘고 우리의 손이 필요한 날들이 많아졌다.
뭐든 뚝딱뚝딱 잘 고치고 손재주가 좋은 남편은 때마다 부모님의 가려운 곳을 곧잘 긁어드린다. 이번엔 아버님 방에 있는 오래된 수납장의 경첩을 교체하기로 했다. '삐그덕, 끼익' 귀신이라도 나올 법한 소리가 오싹했는데 이제 그 소리와도 안녕이다.
고마운 사람을 위한
가족에게 줄 선물을 구입하며 고마운 몇몇 분께 드릴 작은 선물도 함께 준비했다. 먼저 우리 집에 늘 들르는 택배 기사님이다. 상자며 포장 용품들을 생각하면 되도록 택배와 주문을 자제해야지 하지만, 다양한 매장과 제품의 접근성이 부족한 시골에서 택배는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수단이다.
부피가 큰 식재료와 무거운 고양이 모래 등을 내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기사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바쁠 때 한 봉씩 챙겨 먹으면 좋겠다 싶어 작은 봉지에 소분된 견과류를 준비했다.
▲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도 알아야 한다. 기사님 고맙습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
ⓒ 원미영 |
내가 사는 곳은 주택단지라 관리업체 없이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마을회를 운영하며 공동의 일을 맡아 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우리 부부에게도 주어진 임무가 만만찮다. 그런 노고를 알아서일까, 몇몇 이웃들이 고마운 마음을 전해왔다. 품었던 불평과 나쁜 생각들이 슬그머니 숨어든다.
통장 잔고 바닥나는 소리, 그럼에도...
빠듯한 형편으로 장거리 주유비에 부모님과 조카들의 용돈, 선물 구입비까지 통장잔고 바닥나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돈 벌어 뭐하냐, 이럴 때 쓰라고 버는 게 돈이라고 남편과 쿨내 진동하는 멘트를 주고받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맛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사랑하는 마음, 그리운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명절을 보내는 이들, 오랜만의 연휴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보내는 한가위가 보름달처럼 여유롭고 풍성하기를.
▲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모두의 평온을 빈다 |
ⓒ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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