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랩소디]① 제기동이 다시 뜨다…중심에 ○○○○ 있다

강병철 2024. 9.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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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1926~2008) 작가는 대하소설 『토지』를 썼다. 그는 ‘땅’을 한국인 삶의 터전으로 봤다. 생의 원천, 즉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의미를 불어 넣었다. 땅은 한국인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근대화에 이어 현대화가 이뤄졌어도 관심이 여전한 까닭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이란 곳이 어떤 역사성과 함의를 갖고 세월을 겪었는지, 랩소디(서사시)를 읊어보는 이유다. 어제와 오늘의 땅을 살펴보며 그곳의 미래를 내다본다. 첫 회로 다시 뜨고 있는 ‘제기동’을 찾아가 봤다.

제기동에 자리한 서울 약령시(藥令市)는 현재 전국 한약재 거래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최대의 한약 유통 중심지다. 강병철 기자


살고싶은 우리동네

지난달 29일 국내 최대 규모의 약령시장으로 유명한 곳. 바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경동시장 앞. 수증기를 머금은 바람과 함께 제기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고산자로에선 ‘동북선 도시철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비슷한 시간 지하로 지하철 1호선이 다니고 있는 왕산로의 지상에도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경동시장에는 물건을 사기 위해 비닐 봉투를 든 남녀노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약재를 실은 차량이 약령중앙로를 달리며 가로수 잎새를 흔들었다.

제기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통계청의 빅데이터 AI인 통계지리정보서비스 ‘살고싶은 우리동네’ 덕분이다. 통계청은 올 초 해당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자연, 안전, 교육, 생활 편의, 교통, 복지, 문화 등 7개 분야의 51개 세부 지표로 구성했다. 개인별 주거지 선호도와 가중치에 따라 관심 지표를 설정할 수 있다.

통계청의 빅데이터 AI인 통계지리정보서비스 ‘살고싶은 우리동네’에서 제기동은 서울에서 은퇴세대가 살기 좋은 곳으로 올 상반기 내내 상위권에 오르내렸다. [살고싶은 우리동네 사이트 캡처]


특정 지역을 선택하면 주변에 이사하기 적합한 10곳을 추천해 준다. 제기동은 은퇴세대가 살기 좋은 곳으로 올 상반기 내내 상위권에 오르내렸다. “왜 제기동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탐방을 시작했다.

(※한정희 통계청 공간정보서비스과 사무관은 “살고싶은 우리동네는 주간 단위로 새로운 데이터가 입력될 때마다 순위가 변동한다”고 설명했다. AI는 제기동이 안전 관련 지표의 점수가 높고, 의약 관련 시설이 주변 동네보다 월등하게 많다고 분석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설렁탕의 유래는 이랬다

제기동의 현재를 살펴보기에 앞서 과거를 들여다보자. 제기동은 ‘제(祭)를 지내는 터(基)’라는 데서 이름이 나왔다. 바로 그 제사 터가 선농단(先農壇). 조선은 개국하면서 농본 정책을 폈다. 그래서 한양으로 천도한 뒤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준 ‘농사의 신’ 제신농씨(帝神農氏)와 ’오곡의 신‘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려 선농단이란 제단을 만들었다.

여기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경칩(3월 5일)이 지난 뒤 길한 날을 정해 왕이 직접 선농단에서 제사를 올렸다.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지냈다.

제기동은 ‘제(祭)를 지내는 터(基)’라는 데서 이름이 나왔다. 바로 그 제사터가 선농단(先農壇)이다. 강병철 기자


선농단이란 단어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이 얘기를 들으면 바로 무릎을 칠 수 있다. 조선의 왕들은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조정 중신과 농민들과 함께 밭을 갈았다. 이후 고생한 농민들을 대접하기 위해 소를 잡았다. 소를 끓인 국에 밥을 말아줬다.

이 국밥은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해서 ‘선농탕’이라 불렀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이 쉬운 ‘설롱탕’ →‘설렁탕’으로 변한 것. 바로 한국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설렁탕의 유래다.

선농단이 있는 제기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난 건 영조(재위 1724~76년) 때다. 도성 수비를 위해 1751년 간행된『도성삼군문분계총록(都城三軍門分界總錄)』에서다. 여기에 한성부 동부 인창방 ‘제기리계(里界)’라고 표기됐다. 이후 행정개편에 따라 리(里)→정(町)을 거쳐 제기동(洞)이란 지역 명이 확정됐다.


대구에만 약령시가 있는 게 아니다

제기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명칭이 바로 약령시(藥令市)다. 효종(재위 1649∼59년) 시절 관의 명령에 따라 전국 곳곳에 약재료를 유통하는 상설 시장이 열렸다. 관이 주도적으로 약령시를 만든 이유는 각 산지에서 나오는 약재들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삼을 구하려면 금산에 가야 했고, 덩이줄기를 필요하면 제주도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을 처방하지 못해 응급 환자가 목숨을 잃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상설 시장을 연 것이다. 가장 유명한 곳이 제기동의 약령시와 대구 중구 남성로의 약령시다.

서울 제기동 약령시(藥令市) 중앙에 자리한 서울한방진흥센터·한의약박물관. 강병철 기자


서울한방진흥센터 관계자는 “서울의 약령시는 조선시대 여행자에게 무료 숙박을 제공하고, 의지할 곳 없는 병자를 치료하던 기관인 보제원(普濟院)이 있던 곳에 자리 잡았다”며 “현재도 전국 한약재 거래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최대의 한약 유통 중심지”라고 설명했다.


성동역을 아시나요?

이런 인프라가 갖춰진 상황에서 제기동에 날개를 달아준 건 일본강점기 말인 1939년 세워진 성동역(城東驛)이다. 성곽의 동쪽 지역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성동역은 서울과 춘천을 잇는 경춘선의 출발역이었다. 이후 강원도를 오가는 서울 동북권의 주요 물류 요충지로 떠올랐다.

성동역(城東驛)은 서울과 춘천을 잇는 경춘선의 출발역으로 서울 동북권의 주요 물류 요충지였다. 1970년대 초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뒤 문을 닫았고, 터에 미도파 청량리점이 문을 열었다. 현재는 한솔동의보감 빌딩으로 바뀌었다. 강병철 기자


(※1970년대 초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뒤 지상의 성동역은 문을 닫고 지하역사인 제기역이 생겼다. 이후 경춘선 출발역의 기능은 중앙선의 출발역인 청량리역과 합쳐졌다. 그리고 성동역 터에 미도파 청량리점이 문을 열었다. 현재는 한솔동의보감 빌딩으로 바뀌었다.)

특히 한국전쟁(6·25) 이후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안정을 찾아갔다. 약재뿐만 아니라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일대의 농민들이 생산한 일반 농산물이 이 지역에 몰려들었다. 바로 ‘경동시장’이 생긴 계기다. 처음에 비어 있는 공간에서 상인들이 좌판을 깔고 장사를 벌였다. 4층짜리 건물(현재 본관)은 1960년 처음 세워졌다. 이후 신관과 별관 건물도 들어섰다.

1990년대 상공에서 촬영된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 전경. 몰려드는 차량으로 활기찬 모습이다. 김춘식 기자


문정원 경동시장 상인회 매니저는 “도·소매 동시에 이뤄지는 서울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경동시장에 부는 MZ 바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은 낙후해졌다. 여전히 저렴한 물가를 자랑했지만, 사람들은 대형 마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은퇴세대 말고 MZ세대로 통칭하는 젊은 신규 고객 유입이 절실해졌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상생’과 ‘동반성장’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대기업이 전통시장과 협업해 ‘신규 고객유입→고용창출→매출증대→투자→환경개선’으로 이어지는 모델을 추진했다.

스타벅스가 첫 물길을 텄다. 2022년 경동시장 본관에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 들어선 것. 오랜 기간 쓸모없던 옛 경동극장 자리가 리모델링돼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기존 극장 공간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해 멋도 살려냈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은 오랜기간 쓸모 없던 옛 경동극장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기존 극장 공간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해 멋도 살려냈다. 강병철 기자


LG전자도 스타벅스 옆에 이색체험공간인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열었다. 1958년 금성사 설립 이후 처음 선보인 흑백 TV, 냉장고, 세탁기 등을 전시했다. 방 탈출 카페도 운영 중이다. 금성전파사는 스타벅스와 함께 쌍끌이로 경동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젊은 세대의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됐다. ‘인스타 성지’로 떠오른 것이다.

정치권 주요 인사들도 상생의 주요 공간이라며 지난 4월 총선(22대) 기간 내내 경동시장을 찾았다.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비대위원장 시절 스타벅스 관련 발언, 생닭 흔들기 논란을 일으켰던 곳이 경동시장이다.)

30대 직장인 이지현씨는 “경동시장이란 오래된 공간이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곳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았다”며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 거 같다”고 말했다.


청량리역의 상전벽해



제기동과 경동시장의 활력 회복과 함께 눈여겨볼 곳도 있다. 바로 동남편 배후지역이라 할 수 있는 청량리역의 상전벽해(桑田碧海). 사창가와 노후 청과물 시장이 자리하던 청량리역 일대가 재개발을 통해 초고층 주거공간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현장을 탐방한 날에도 재개발 지역과 제기동을 잇는 왕산로 대각선 건널목은 일본 도쿄의 시부야 스크램블을 연상시킬 만큼 분주했다. 제기동의 변화가 현재 진행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제기동과 경동시장의 동남편 배후지라 할 수 있는 청량리역 방향의 상전벽해(桑田碧海)한 모습. 왕산로 대각선 횡단보도는 일본 도쿄의 시부야 스크램블을 연상시킬 만큼 분주했다. 강병철 기자


김지은 경동시장 서포터즈 ‘꼬집스’ 단장은 “새로워진 제기동과 경동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시장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는데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어머니들의 유입이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다음 회는 대한민국 최고의 핫플로 부상한 ‘성수동’을 다룹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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