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 수법' 안 통한다…음주사고 뒤 '술타기' 딱 걸린 이유

석경민 2024. 9. 14. 0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6월 50대 남성 운전자 A씨가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혀가 꼬이고 균형감을 잃는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83%으로 추정됐다. 핸들을 잡으면 안 되는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결국 A씨의 차량은 사람과 충돌하고서야 멈췄다.

사고를 낸 A씨가 곧바로 향한 곳은 경찰서나 병원도 아닌 편의점이었다. 그는 소주를 구입해 그 자리에서 들이켰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측정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면허취소 수치를 훌쩍 넘은 0.277%. 수사기관은 편의점 앞에 놓인 소주 2병을 보고, 이를 감안해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했다. 위드마크 공식은 운전자의 음주량·체중·성별 등을 토대로 음주 정도를 역추산하는 기법이다. 검찰은 추가 음주 전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0.083%로 추정하고 기소했다.

하지만 1심에선 “위드마크 공식을 운전자에게 가장 유리하게 계산해야 한다”며 “소주 2병을 마셨다고 가정하면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처벌 기준인 0.03 미만”이라고 판단해 무죄를 내렸다. 항소한 공판 검사는 사건을 보완 수사했다. 관건은 A씨의 추가 음주량을 입증하는 거였다.

편의점 CCTV를 다시 살피고 편의점 업주 진술과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증인신문을 통해 검거 당시 소주병과 종이컵에 반병 가량의 소주가 남아있다는 걸 확인했다. 검찰은 "A씨의 음주량은 1병 반으로 범행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이라며 공소장을 변경했다. 결국 A씨는 지난 7월 10일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실제 음주측정 혹은 음주 교통사고 현장에선 A씨처럼 음주운전 처벌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횡행한다. 요즘 음주운전 운전자들은 잠적 대신 추가 음주를 하는 이른바 ‘술타기’ 방식으로 수사에 혼선을 준다. 지청장 출신 한 검사는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자리를 피한 후 추가 음주를 하는 ‘꼼수’가 정말 많다. 당장 눈앞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보다 빈번하다”고 했다.

하지만 ‘술타기’가 모든 음주운전 사고의 파훼법이 되지는 않는다. 수사기관은 면밀한 수사로 범행의 흔적을 쫓아 끝내 음주운전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기기도 한다. 사고 직후 음주 측정을 하지 못했어도 주변인 진술이나 CCTV 장면 등으로 ‘음주 후 술타기’ 또한 충분히 적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주지청 형사2부(부장 류주태)는 지난 7월 상습 음주운전자의 4년 전 추가 음주운전을 밝혀내 구속기소했다. 지난 5월 음주운전으로 송치된 40대 화물운전자 B씨는 2020년에도 음주운전 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B씨가 사고를 낸 직후 차량에서 추가 음주를 하여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 산정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는 2020년 사건 기록에 첨부된 수십 개의 CCTV를 분석해 B씨가 경찰서에서 귀가 조치 후에 음주 상태로 본인의 화물차를 다시 운전해 추가로 141km를 주행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기존 송치 사건에 4년 전 음주 사건을 병합해 7월 12일 B씨를 구속기소했다.

원주지청 형사2부는 지난 7월 상습 음주운전자 B씨의 4년 전 추가 음주운전을 밝혀내 구속 기소했다. B씨가 경찰서 귀가 조치 후 음주 상태에서 차량을 운행한 모습이 찍힌 CCTV. 사진 대검찰청

적극적인 수사와 동시에 의도적 사법 방해에 대한 처벌 법안을 마련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검찰 관계자는 “검경의 적극적 수사로 ‘술타기’를 잡아내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입증은 어렵다”며 “의도적 사법방해에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입법 미비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유명 트로트 가수 김호중씨는 잠적과 추가음주, 운전자 바꿔치기 등 조직적으로 범죄를 은폐했다. 수사기관은 ‘위드마크’와 음주대사체 측정 그리고 CCTV 확보 등 음주 입증에 총력을 다했지만, 끝끝내 음주운전 혐의를 의율하지 못했다.

이에 대검은 지난 5월 법무부에 음주 교통사고 후 의도적 추가 음주 행위 시 음주 측정 거부죄와 동일하게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입법요청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경찰청과 여당 의원과 해당 법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고, 현재 행정안전위원회에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들이 계류 중이다”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