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축복이다"…美 참전용사 감동시킨, 삐뚤빼뚤 편지 정체
“안녕하세요, 저는 안산초등학교 4학년 공은찬이에요. 6.25전쟁 때 우리를 위해 싸워 주셔서 저희가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13일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에 따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폴 커닝햄(94) 전 미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장(KWVA)은 최근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그의 자택으로부터 약 1만㎞, 태평양 건너 서울의 한 어린이로부터 정성 어린 감사 편지를 받은 것이다.
커닝햄 전 회장은 스무 살이던 1950년 9월 공군 소속으로 난생 처음 보는 한국이란 나라에 도착, 52년 2월까지 복무하며 미 공군의 레이더 감시·정비 임무를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그와 전우가 피로 싸워 지킨 땅에서 태어난 어린이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은 것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의 자택에서 유튜브로 ‘영상 답장’을 올렸다.
“은찬과 안산초 모든 친구들아, 멋진 편지 잘 받았고 정말 고맙구나. 74년의 세월을 넘어 이런 인사 편지를 받아 너무나 기쁘구나. 한국의 자유를 지키려 우리가 했던 헌신을 은찬과 같은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알리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같이 갑시다(Gatchi Gapshida,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구호)!”
그를 비롯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쓴 감사 편지 수십 통을 미 참전용사들이 받으면서 세대 차이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은 교감을 이룬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 어린이들의 편지 실물이 이처럼 현지에 대규모로 전달된 건 처음이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초 재학생 약 200명은 지난 6월 25일 한 한국 전쟁 74주년 행사를 계기로 한·미 참전용사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1~3학년은 그림이나 한글을 통해, 4~6학년은 주로 영어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할아버지 군인께 (Dear. soldier grandfather)” “감사합니다(thank you for your service)” “건강하고 행복하세요(Always be healthy and happy)” 등 서툴지만 정성을 담아 꼭꼭 눌러 쓴 손 편지들이었다.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자칫 잊힐 뻔한 아이들의 편지는 이날 기념 행사에 참석한 어른들이 합심하며 멀리 미국의 참전용사들에게도 닿을 수 있었다. 편지 쓰기를 기획한 안산초 학부모회와 행사에 참석했던 한·미 향군 관계자가 편지 97장을 추려 현지로 보낸 것이다.
이어 미국 내에서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 온 재미 작가가 미네소타·애리조나·앨라배마·메릴랜드·펜실베이니아 등의 참전 용사들에게 편지를 일일이 전달했다. 참전용사들의 소감과 반응은 e메일이나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통해 다시 한국으로 전달됐다.
향군에 따르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거주하던 참전용사 멜빈 베넨(96)은 지난 7월 세상을 뜨기 직전 한국 어린이의 메시지를 받고 크게 기뻐했다. 미 육군 제3공병전투대대 소속으로 1951~52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강원도 ‘철의 삼각지대’에서 지뢰를 탐지하고 도로를 개척하는 등의 임무를 맡았다. 그의 가족은 “그가 눈을 감기 전 그에게 한국 어린이의 감사 편지를 읽어 드렸고, 이는 엄청난 축복이 됐다”는 소감을 전해왔다.
론 트웬티 메릴랜드주 헤이거스타운 KWVA 지부장은 “아이들의 편지를 받고 아내와 너무나 기뻤다"면서 "(헤이거스타운의)포트리치의 역사 박물관 내 한국전 전시회에 아이들의 편지도 전시하기로 했다”고 전해왔다. 편지를 받은 이들 가운데는 1950년 12월 북한에서 전사, 여전히 실종 상태로 남아 있는 한 참전용사의 가족도 있었다고 한다.
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참전용사 패트 핀·짐 스태포드 옹도 “젊은 학생들의 감사 인사에 우리는 매우 행복했다”면서 “201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에 의해 파괴됐던 그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한국과 그 국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해왔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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