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버린 난민… 날아가 버린 인권
복지 사각 놓인 불법체류자
아이는 7살 이전까지 ‘유령의 삶’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메리(가명·42)씨는 2015년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서였다. 메리씨는 현재까지 10년 가까이 한국에 발이 묶여 있다. 짐바브웨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한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온 남편 때문이었다. 메리씨는 짐바브웨로 돌아갈 경우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메리씨 부부는 결국 고향을 포기하고 한국 정착을 택했다. 그 첫걸음은 난민 지위 획득이었다. 이들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9년간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법무부는 1차로 난민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짐바브웨 내에서 부부에 대한 박해의 위험성이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메리씨 부부의 난민 인정 여부는 법원으로 넘어갔다. 법원은 영국 내무부 보고서를 근거로 짐바브웨에선 야당 지지자가 정부에 반하는 시위를 하면 심각한 해악과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했다. 법원은 메리씨 부부의 난민 여부를 다시 심사하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다만 법무부는 재검토 절차를 거쳐 난민 불인정을 최종 결정했다.
법무부는 난민 인정 절차에 있어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13일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1994~2022년 누적 기준 난민지위 신청은 8만4922건에 달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1331명(1.6%)에 그쳤다.
그 사이 메리씨와 남편 사이에선 네 살과 일곱 살짜리 두 딸이 태어났다. 지난 10일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 만난 두 딸의 피부는 검은색이었다. 눈에 띄는 모습이었지만 또래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한국어를 썼다. 메리씨는 “두 딸은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다. 이들의 고향은 사실상 한국”이라며 “딸들은 영어보다 한국말이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에서 일하며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 왔다. 한국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보장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5년 한국에 들어온 글로리(가명·35)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태생인 그는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비자를 갱신하지 못해 불법체류자가 됐다. 글로리씨가 한국에서 남편과 낳은 아이들은 올해 각각 세 살과 일곱 살이 됐다. 글로리씨는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없는 게 제일 힘들었다. 건강보험이 되지 않아 예방접종을 하거나 진료를 받으려면 수십만원이 있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글로리씨가 일을 나갈 땐 아이를 친구에게 맡겨야 하는데, 사실상 방치 상태였다고 한다. 등록되지 않는 이주아동을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 맡기는 게 불가능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글로리씨의 자녀 같은 미등록 아동 규모는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정부는 출생신고 없이 임시 신생아 번호만 부여받은 아동 수를 토대로 미등록 외국인 아동 수를 추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임시 신생아 번호로만 존재하는 아동(0~7세) 6179명 중 보호자가 외국인인 아동은 4025명에 달했다. 미등록 외국인이 병원 밖에서 낳은 아이들까지 따지면 그 수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국 내 삶을 인정받지 못한 외국인 부모들이 낳은 아동들은 출생등록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속인주의’를 따르는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이는 출생신고 의무가 없고,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본국 대사관에는 출생등록을 할 수 있지만 메리씨 사례처럼 체류 지위가 불안한 미등록 외국인인 경우엔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에선 이민 2세대가 뿌리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사실상 막혀 있는 셈이다.
법무부는 2022년 2월부터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유아기에 한국으로 온 이주아동의 체류기간이 7년 넘을 경우 정식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3월 법무부 장관에게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강제 퇴거를 중단하고 이들이 체류 자격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한 지 2년여 만에 나온 대책이었다.
그러나 이주아동이 만 7년 이전에는 여전히 미등록 상태에 남아 있어야 하는 한계가 있다. 만 7세 이전까지 이주아동은 서류상 ‘유령’인 셈이다. 체류 기준을 만족하더라도 부모가 불법체류자라면 벌금부터 먼저 내야 한다. 또 무사히 등록을 마친 아동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안에 대학을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지 못하면 한국에서 강제 추방된다.
인권위는 지난해 시민단체 모니터링을 통해 이런 실태를 파악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법무부가 미등록 이주아동 임시등록 제도를 만들 당시 임시로 국내 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는 이주아동 3000명 정도가 혜택을 볼 것이라고 봤지만 실질적으로 이 제도를 통해 등록한 아동은 1000여명에 그쳤다.
인권위는 같은 형제자매인데도 일률적으로 만 7년 이상의 체류 자격을 기준으로 등록을 결정한다는 점, 불법체류자 부모의 이주아동에 대해선 부모가 범칙금을 내야만 등록하게 한다는 점, 출입국 공무원의 절차 안내 시스템이 부족해 접근성이 낮다는 점 등을 문제로 보고 있다. 인권위는 내년 3월 만료되는 이 제도를 연장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법무부와 협의할 예정이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임시등록 제도가 정착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인권위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인권 사각지대를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불법을 합법화하는 데 국민적 반감이 크고, 외국인 불법체류자나 난민과 관련한 반대 민원이 많다는 점도 알고 있다”면서도 “아이들은 죄가 없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한국에 와서 살기를 선택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게 되고 모국어가 한국어라면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게 오히려 부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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