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캉으로 밀고 감금, '교제 폭력' 남성의 충격적 실체

이진민 2024. 9. 1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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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악몽의 엑스>

[이진민 기자]

 <악몽의 엑스> 메인 포스터
ⓒ NETFLIX
단언컨대 여성에게 안전한 사랑은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도,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어도 사랑이 폭력으로 돌변할 때 여성들은 무방비해졌고 사회는 외면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피해자의 이름으로 맞섰다. 넷플릭스 <악몽의 엑스>는 교제 폭력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해부한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로 배신부터 폭력, 살인미수까지 여러 층위에서 교제 폭력을 분석한다.

사랑은 성역(聖域)을 쌓는다. 그래서 피해자는 고립되고, 가해자는 기세 당당하다. "친구들도 피했다. 왜 남자한테 맞으면서 만나냐고 할까 봐"라는 피해 여성의 말처럼 그들은 외부에 폭력 사실을 알리길 꺼렸고 만일 밝힌다 해도 흔한 사랑싸움으로 치부 당했다. 가해자는 다른 사람들과 피해자를 단절시켰고 폭력을 자행했다. 이젠사랑의 성역 넘어 폭력성을 직시할 시간이다.

"체포해도 풀려날 거잖아요" 피해자가 입을 닫은 이유
 <악몽의 엑스> 화면 갈무리
ⓒ NETFLIX
<악몽의 엑스>는 피해자, 경찰관, 검사 등 사건과 관련한 이들의 증언과 당시 상황을 재연 배우가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통해 구현했다. 적나라한 장면이나 노골적인 연출 없이 사건을 진술하기에 피해자는 힘든 시간을 견딘 여성이면서 주체적인 사람으로, 가해자는 악마가 아닌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묘사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 <악마와의 데이트>는 3명의 피해 여성이 발생한 교제 폭력 사건을 다룬다. 가해자 벤자민 포스터는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세 명의 여성과 교제하며 폭력을 저질렀고 교도소에서 수감된 전적까지 있었지만, 출소한 이후에도 범죄 행각을 반복했다. 어떻게 사회는 그의 폭력성을 발각하지 못한 걸까. 사실상 눈감아준 것에 가깝다.

첫 번째 피해 여성은 가해자를 신고하여 구치소로 보내고 만남에 마침표를 찍었음에도 출소 이후 스토킹에 시달렸다. 벤자민 포스터는 그의 집에 침입하여 폭력을 가했고, 몰래 도망친 그는 다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싸움을 여자가 먼저 시작했다"는 포스터의 말만 신뢰했고 폭력 전과가 있는 과거 기록을 열람하지 않았다. 결국 피해 여성은 피투성이가 된 채 유치장에서 18시간을 보냈다. 목숨 걸고 도망친 결과가 또 다른 2차 가해로 이어졌다.

두 번째 피해 여성은 자신의 집에서 포스터와 동거했다. 그러나 여러 번 폭행을 당했고, 경찰에 신고했다. 돌아온 건 접근 금지 명령서, 종이 한 장이었다. 경찰은 "집에서 짐을 가져갈 때 맞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달라"는 피해 여성의 말을 무시한 채 명령서만 문 앞에 두고 떠났다. 홀로 집으로 돌아가자, 포스터는 그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고 몇 주간 감금하며 폭력을 반복했다.
 벤자민 포스터는 도주하면서 데이트 앱을 이용해 다른 피해자를 물색했다
ⓒ NETFLIX
겨우 도망친 피해 여성은 경찰을 만났지만, 안전함을 느낄 수 없었다. "체포해도 어차피 풀려날 것"이라며 증언을 꺼렸고 다시 귀가했을 때 이미 안락한 집은 경찰과 기자들에게 파헤쳐 분해됐다. 그는 "포스터가 다른 여성을 해칠 줄 알았다"고 예견했고, 불행히도 적중했다.

마지막 피해 여성은 가볍게 교제하다가 벤자민의 전과 기록을 알게 되었고, 함께
일하던 곳에 그를 고발했다가 피해를 보았다. 사건 현장은 33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관에도 끔찍할 정도였다. 앞선 두 명의 여성은 해당 사건을 알고 "우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법제도가 피해를 주었다"고 단호히 증언했다. 라스베이거스 경찰국과 지방 검사는 제작진의 인터뷰를 거부했고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피해자는 자책하고, 사회는 외면하고
 <악몽의 엑스> 화면 갈무리
ⓒ NETFLIX
각기 다른 사건을 다룬 <악몽의 엑스>이지만, 그 안에서 공통된 내러티브는 있었다. 피해자가 발화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면 선명해진다. 그들은 스스로 자책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였다.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왜 이렇게 멍청했을까. 눈치를 챘어야 했다"고 자책하거나 자신의 삶에 통제권을 잃어버렸다는 감각에 두려워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진했다. 한 피해 여성은 "가해자와 함께했던 시간을 인생의 오점으로 생각하기 싫다. 하나의 학습 환경이라 생각하며 그를 극복하고 다신 그런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은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다른 여성은 사건에 연루된 형사들에게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건 그들이 가진 용기와 무관하게 사회를 신뢰할 수 없어서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몇몇은 "출소하고 또다시 만날까 봐 두렵다", "계속 불안함 속에 살아갔다", "경찰이 자신을 돕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해자를 구제하지 않고 가해자의 논리에 젖어든 경찰과 특종을 노리는 언론에 괴로웠다고 답한 이도 있었다.

<악몽의 엑스>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교제 폭력에 통각이 무디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살인과 살인미수를 포함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449명이었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19시간에 1명의
여성이 살해 피해를 당하는 셈이다. 언론의 보도 또한 마찬가지다. 헤드라인에 피해 여성과 그가 겪은 폭력 사실을 적극적으로 기재하거나 둘 사이를 '연인 관계'라고 정의하여 가해자에게 "연인인데 미안하지 않냐"고 질문한다.

2016년 개원한 20대 국회부터 현재 22대 국회까지 교제 폭력에 관하여 9건의 법률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들은 발의 이후 모두 소관위원회에서 제안 내용을 설명하는 데 그쳤고 본 회의에서 논의된 바 없다. 법안만 발의되었을 뿐, 실질적인 논의와 정책은 공백 상태다. 안전 만남도, 안전 이별도 불가능한 시대에 피해자의 악몽은 깨어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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