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2', 칭찬이 아깝지 않다
[원종빈 기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 챙길 시간도 없이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연쇄살인범으로 의심받는 범죄자, 일명 '해치'다. 서도철은 수사 끝에 해치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하는 일종의 자경단임을 파악한다. 때마침, 해치도 인터넷에 새 예고편을 공개한다. 서도철에게 한 번 체포됐었고, 임산부를 죽인 범죄자 '전석우'(정만식)를 다음 살해 대상으로 지목한 것.
▲ 영화 <베테랑 2> 스틸컷 |
ⓒ CJ ENM MOVIE |
2015년 여름,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연도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흥행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통쾌함'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재벌 악역 클리셰의 집합소인 '조태오'(유아인)를 비판하는 전개와 때리는 액션의 타격감은 OST만큼이나 경쾌하고 시원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선구자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은 물음표도 남겼다. 주인공 서도철의 행적을 곱씹을수록 그 물음표는 커진다. 그는 사람 패려고 경찰 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폭력적이다. 먼지를 묻힌 무기를 쥐어준 뒤 정당방위라며 범죄자를 때리는 장면은 코미디이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섬뜩하기도 하다. 단지 형사라는 이유로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암시처럼도 보이니까. 그 폭력이 과연 어느 선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9년 만에 돌아온 속편은 통쾌함에 가려진 이 딜레마를 고찰한다. <베테랑 2>는 사적제재라는 프레임 안에서 범죄자를 향한 폭력과 응징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 결과 오락성과 대중성은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도 확실하다. 전편에서 확립한 성공방정식을 답습하는 대신 도전을 선택한 덕분에 <베테랑 2>는 품격 있는 블록버스터로 거듭났고, 3편까지 기대케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서도철이라는 물음표
사실 <베테랑 2>의 소재는 신선하지 않다. 되려 늦었다. 자경단원의 사적제재를 묘사한 작품은 <열혈사제>, <빈센조>, <빅마우스> 등 차고 넘친다. 자경단원 경찰도 이미 <비질란테>에서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신입 형사 박선우가 사실 자경단원이고 악역이라는 사실은 스포일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만 봐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대신 <베테랑 2>는 관점을 달리하여 뒤늦은 도착, 식상함이라는 한계를 돌파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자경단원의 이야기와 사연에 집중하는 반면, <베테랑 2>는 자경단원을 관찰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서도철이 있다. 특히 서도철의 직위와 성향이 서로 어긋나는 모순이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서도철의 언행은 거칠다. 전편에서 체포한 전석우가 주취감경 판결을 받아 이르게 출소하자 그런 범죄자는 때려죽여도 시원찮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해치를 쫓으면서도 내심 그가 왜 더 악독한 범죄자를 죽이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그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준다. 마치 자경단이 공권력을 대신하더라도 무방하다는 듯이. 이처럼 경찰답지 않은 언행은 박선우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기제처럼 느껴진다.
▲ 영화 <베테랑 2> 스틸컷 |
ⓒ CJ ENM MOVIE |
하지만 <베테랑 2>는 서도철의 모순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차분히 뒤쫓는다. 서도철은 경찰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먼저 변한다. 학교폭력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자신이 무시한 '애들 싸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사소해 보이는 애들 싸움이 도를 넘어서면 어떻게 되는지 비로소 그 결과를 실감한다. 정당방위라는 명분만 있으면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던 그가 마침내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눈을 뜬다.
그제야 서도철은 박선우에게서 위화감을 느끼고, 그를 의심한다. 이는 영화가 박선우의 정체를 굳이 숨기지 않는 이유다. 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수도 있었고, 그의 정체를 미스터리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 2>는 박선우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그와 서도철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다. 비슷한 결을 지닌 듯 보이던 그들이 대립하게 되는 계기가 등장할 때까지의 긴장감을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몇몇 카메라 구도나 연출은 유달리 눈에 띈다. 일례로 박선우의 옆얼굴과 서도철의 정면 얼굴, 혹은 그 반대를 동시에 한 화면에 잡으면서 그들의 관계성을 부각한다. 직선으로 자르지 않은 화면 분할도 독특하다. 서도철은 검은 마스크를 쓴 박선우의 얼굴 앞에 작게 위치한다. 마치 그가 박선우의 계략에 집어삼켜지는 듯하게. 그 덕분에 차도철이 형사이자 아버지로서 고통받는 이야기는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그 결과 <베테랑 2>는 마치 류승완표 <다크나이트> 같기도 하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너와 나는 같다"라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법을 가볍게 어긴다는 점에서 그들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는 것. 배트맨 역시 조커를 거울삼아 자기 정체성에 관해 고민한 끝에 '다크나이트'가 된다. 이러한 둘의 관계성은 서도철과 박선우의 관계와 유사하다. 서도철 또한 박선우를 거울삼을 때 성숙한 '베테랑' 형사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액션이라는 느낌표
이 지점에서 <베테랑 2>는 액션을 스토리텔링의 도구로써 영리하게 활용한다. 액션은 리트머스 종이 같다. 더 잔혹해진 연출로써 차도철과 관객을 동시에 시험에 빠트린다. 액션의 중심에 박선우를 위치시켜 정의 실현과 사적제재의 선을 넘나드는 불편함을 유발하고, 경찰이라기에는 과한 그의 대응을 어디까지 용인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바로 이 순간 관객과 서도철의 시선은 일치를 이룬다.
액션 시퀀스의 배치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액션만 따라가도 서도철과 박선우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도박장을 습격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전편처럼 경쾌하다. 반면에 자극적으로 연출된 남산과 약쟁이 골목 시퀀스는 질문을 던진다. 박선우의 범죄자 제압 방식을 보다 보면 그가 자기 과라고 확신한 서도철의 판단이 과연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클라이맥스에서는 서도철과 박선우를 가르는 경계선을 보여준다. 뻔할지도 모르지만, 그 선은 살인이다. 다만 살인이라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한 서도철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자칫 식상할 뻔한 대답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박선우를 제압하는 액션보다 그를 살리려는 액션이 눈에 띄기에 더 독특한 시퀀스라고 할 수 있다.
▲ 영화 <베테랑 2> 스틸컷 |
ⓒ CJ ENM MOVIE |
다만 <베테랑 2>의 만듦새는 아쉽게도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일단 여러 층위의 플롯을 쌓아가는 전개가 매끄럽지 않다. <베테랑 2>는 서도철의 가족사나 해치와의 추격전 등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한 데 모여서 터지는 구조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로의 전환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다 보니 전편에서 비해 폭발력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원인은 악역의 존재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가 서도철의 서사에 집중하다 보니 박선우의 서사는 빈약하다. 개인적인 동기도 제대로 못 보여주니 매력은 부족하고, 그저 서도철을 각성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결국 선한 마스크와 대비되는 광기 어린 눈빛을 보여준 정해인의 연기와는 별개로, 박선우는 조태오만큼 부각되지 못한다. 자연히 <베테랑 2>는 구심점 하나를 잃은 듯 보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는 인터넷 개인 방송을 활용하는 방식도 문제다. 물론 개인 방송을 등장시킨 이유는 납득할 수 있다. 이는 사적제재가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폭력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다. 근래에 밀양 성폭행 사건이 재조명되고 새로운 논란을 일으켰듯이, 사적제재가 유발할 수 있는 폐해를 경고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다만 지금의 방식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개인 방송의 일부를 스크린에 직접 띄워서 보여주데, 그럴 때마다 분위기가 끊기고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톤과 매너가 근본적으로 다른 영화와 인터넷 방송이라는 매체 간의 괴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베테랑 2>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영화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보이기 때문.
시리즈라서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베테랑 2>는 여전히 칭찬이 아깝지 않다. 시리즈인데도 1편의 성공 공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전편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전편이 남긴 의문점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다른 맛과 재미를 갖춘 속편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그 결단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는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범죄도시>가 2편부터 4편까지 관성에 의존한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기에 관객의 반응도 어떤 작품보다 궁금하다. <베테랑 2>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 환경은 이미 만들어졌다. 추석 연휴 동안 경쟁작이 없고, <파묘>와 <범죄도시 4> 이후로 마땅한 작품이 없었으니 관객이 몰릴 여건은 충분하다. 다만 작품성과 메시지를 챙기기 위해 대중성과 상업성을 다소 내려놓았으니, 과연 이 선택이 흥행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미지수일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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