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왕' 감형·무죄, 전세사기에 판 깔아준 법원
[김태근]
소위 '건축왕' 일당의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는 최소 665세대, 536억 원의 전세금 피해를 낳았습니다. 피해 사례와 금액은 계속 추가되고 있어, 실질적인 피해는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건축왕'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대폭 감형된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2022년 1월 이전 발생한 계약에 대해서는 전부 무죄를 선고했고, 공범으로 기소된 이들에게도 무더기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을 외면하며 무책임한 판결로 전세사기의 판을 깔아준 미추홀구 전세사기 2심, 김태근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인천지방법원 제1-2형사부 판사 정우영(재판장), 이수민, 이정민 2024.8.27. 선고 2024노693
미추홀구 전세사기, 최소 피해만 665세대·전세금 536억 원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은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불리었던 남아무개씨와 공인중개사 등 직원들에 의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다. 2700여 세대 피해임대주택의 실질적인 건축주이자 소유자였던 남씨는, 위 주택의 명의만 그 휘하 직원들의 명의로 소유권 등기를 해놓고, 그 직원들이 공인중개사 및 주택의 관리업체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위 주택의 세입자로 입주하기 위해서는 건축왕의 직원이었던 공인중개사의 중개가 필수적이었고, 그로 인해 건축왕은 본인이 소유하던 주택의 전세금에 대한 시세 조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인천지방검찰청은 이로 인한 전세사기 피해자들 중 2021년 3월을 사기의 개시 시점으로 판단하여, 2023년 6월 27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총 665세대, 전세금 536억 원(계속 추가 중)의 피해금액에 대해 남아무개씨 등을 사기 등 혐의로 기소를 하였다.
2심, 절반의 감형에 집행유예와 무죄까지
인천지방법원은 2024년 2월 7일 1차 기소된 남아무개씨의 피해자 191명, 전세금 148억 원에 대한 1차 사기 사건(2023고단1562 등 병합사건)에 대하여 1심 판결을 선고하면서 건축왕 남OO 씨에 대하여 징역 15년을 선고하였다.
주택임대차계약의 핵심적인 계약사항은, 주택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약정된 임대차 보증금이나 월세를 지급하면, 주택임대인은 해당 주택을 임차인에게 인도하여 임차인으로 하여금 임대차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임차목적물인 해당 주택에서 평온하게, 임대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법률적 분쟁을 걱정 없이 거주할 수 있게 해 주고, 그 임대차기간이 종료되었을 때 임차인으로부터 해당 주택을 반환받고 임차인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 데 있다. 이 사건 사기죄의 성립여부를 정함에 있어서는, 피고인들이 주택임대인으로서 피해자들인 주택임차인들과 이 사건 주택임대차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한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고 임차인들로 하여금 착오에 빠져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게 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① 공인중개사도 아닌 피고인 남○○가 공인중개사를 고용하여 급여와 보수를 지급하면서 자신의 사업목적에 가담하게 한 점, ② 무려 2708채의 소규모 주택을 지어 이를 다수의 임차인들에게 임대하는 사업을 함으로써 주택에 들어오는 임차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받아 이를 앞서 들어 온 임차인에게 반환해 주는 돌려막기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여 자금흐름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위험을 고스란히 임차인들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었던 점, ③ 그에 더하여 공인중개사들에게 월 200만 원 등의 대가를 지급하고, 그들의 명의로 위법한 범죄행위인 명의신탁을 하여, 등기부상 소유자인 그 명의수탁자를 진실한 임대인으로 오인한 피해자들로 하여금 진실한 임대인이 피고인 남OO임을 알지 못하게 숨긴 점, ④ 나아가 공인중개사인 나머지 피고인들로 하여금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하여 실질적으로 피고인 남OO 소유인 해당 주택을 임차인들에게 임대하게 하는 범죄수법을 사용한 점, ⑤ 2018년 1월 31일경 채권최고액을 120억 원으로 하여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동해이씨티국제복합관광도시개발(유) 사업 부지를 매수하는 등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점, ⑥ 피고인 남OO의 이와 같은 사업방식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내지 중개보조원인 나머지 피고인들이 임차인인 피해자들에게 남OO의 사업운영방식에 관련된 사실을 전혀 고지하지 않고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점, ⑦ 피해자들인 임차인들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거나 기존의 임대차계약을 연장한 후 1개월 또는 2, 3개월이 지나자마자 곧바로 해당 주택이 경매절차에 들어가는, 법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고, 임대차보증금의 전액 또는 다액의 일부금액을 반환받지 못하게 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에게 적극적으로나 소극적으로 기망하여 그들로부터 판시 임대차보증금을 편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사기범행을 저지른 점도 부인하고 있으나, 관련증거에 의해 피고인들이 함께 이 사건 각 사기범행 및 공인중개사법위반,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위반의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
※ 2심 판결 요지
[피해자 191명 중 180명(신규 77명, 증액 103명), 피해액 148억 중 68억만 인정]판결 내용1심2심판결 이유 요지
1. 공범 김OO 공인중개사 | 징역 4년 |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사기와 공인중개사법위반죄는 무죄 |
임대차 계약 체결에 관여한 바가 없다. |
2. 주범 남OO | 징역 15년, 추징금 115억 | 징역 7년, 2022년 1월 이전 사기와 공인중개사법위반죄는 무죄 |
1. 신규 임대차 교부받은 전세금 전부, 2. 증액 임대차는 증액된 보증금만 인정 |
3. 공범 전OO 재무업무 담당 | 징역 13년 | 무죄 | 임대차 계약 체결에 관여한 바가 없다. |
4. 공범 은OO 공인중개사 | 징역 6년 |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2022년 5월 이전 사기와 공인중개사법위반죄는 무죄 |
2022년 5월 27일경 이후부터 체결된 임대차계약에 관하여만 주범 남OO 등과 공모하여 사기범행을 저지른 점 인정 |
5. 공범 김OO 중개팀 직원 | 징역 9년 |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2022년 5월 이전 사기와 공인중개사법위반죄는 무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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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범 주OO 공인중개사 | 징역 10년 | 징역 1년 2월, 집행유예 2년 2022년 5월 이전 사기와 공인중개사법위반죄는 무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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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범 박OO 공인중개사 | 징역 6년 | 무죄 | 5월 27일경 이전에는 임대차계약 체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지만 주범의 변제자력 등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5월 27일경 이후에는 임대차계약 체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
8. 공범 김OO 중개팀 직원 | 징역 13년 |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2022년 5월 이전 사기와 공인중개사법위반죄는 무죄 |
2022년 5월 27일경 이후부터 체결된 임대차계약에 관하여만 주범 등과 공모하여 사기범행을 저지른 점 인정 |
9. 공범 홍OO 공인중개사 | 징역 10년 |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2022년 5월 이전 사기와 공인중개사법위반죄는 무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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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공범 김OO 공인중개사 | 징역 10년 |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2022년 5월 이전 사기와 공인중개사법위반죄는 무죄 |
① 1심 판결 중 공소장 변경 절차 없이 '재물 사기' 중 일부를 '이익 사기'로 인정하고 재산상 이익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은 원심 판단은 위법하다는 부분에 대하여 |
특히 이 사건 판결 내용 중 '재물 사기'는 임대차 보증금을 직접 교부받은 것을 의미하고, '이익 사기'는 갱신을 통해 기존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재산상의 이익을 의미한다고 구분하고 있는 이상, 재물사기와 이익 사기를 구분하기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재판부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이익 사기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다.
② 남모씨의 변제 자력 인정 여부와 관련하여, 2022년 1월부터 변제 자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아, 2021년까지 체결된 계약에 대해서는 모두 사기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부분에 대하여 |
③ 중개의뢰인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거래 당사자 쌍방을 대리하는 행위(공인중개사법 제1항 제6호)에 대한 공인중개사법 위반죄 무죄를 선고한 부분에 대하여 |
▲ 미추홀구 전세사기 구조 2023년 1월 18일 자 <아시아경제> [전세사기 실태추적]⑨인천 미추홀구 ‘나홀로아파트’ 건축왕의 사기극 기사 재구성 |
ⓒ 참여연대 |
이에 따르면, 공인중개사가 직접 임대인이 된 경우에만 공인중개사법위반죄로 처벌할 수 있을 뿐,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과 같이 바지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공인중개사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바지임대인과 공인중개사들이 공모한 전세사기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물 속 아래로 끌어내리는 판결에 유감
2023년 전국적으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이에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를 비롯하여 수많은 시민사회에서 여러 노력과 헌신을 이어왔다.
미추홀구 전세사기에 대해 미추홀구 피해자들은 2022년 11월부터 스스로 대책위를 만들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피해구제 대책을 강구하였다. 2023년 2월 28일에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이후로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아래 '전세사기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일부 조력을 하긴 하였지만,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 과정에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다름 아닌 미추홀구의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였다.
그 후 2024년 8월 말 국회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까지 의결되어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한숨을 돌리고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 피해를 회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선고된 이번 항소심 판결은 물귀신처럼 다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물속 아래로 끌어 내리고 있다. 특히 ① 2021년까지 이루어진 전세계약에 대한 사기 무죄로 인해 고의로 인한 불법행위 채권이 성립하지 않을 경우에는 임대인의 개인회생이나 파산 등으로 통해 전세금 계약 채권이 면책될 수 있고, ② 관련 공인중개사들의 공인중개사법위반죄 전부 무죄로 인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공제증서를 근거로 한 공인중개사협회에 대한 피해구제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번 항소심 판결로 인해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충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법원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으며, 형식적인 불고불리의 원칙(不告不理의 原則)*에 충실하려 한 듯한 이번 판결이 앞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게 될까 매우 우려스럽다.
* 소송법상 '소추가 없으면 심판 없다'는 원칙으로 법원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여야만 심리를 개시할 수 있고(소송계속),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과 동일성을 가지는 사건만이 소송의 대상이 된다(심판범위의 한정)
비록 항소심 판결 중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일응 법률적 논쟁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 전세사기 판을 열어준 공인중개사법 위반죄 무죄 판단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반드시 파기환송 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이 글의 필자는 김태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세입자114 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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