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나온 문제적 작가의 작품... 이게 '로맨스'인가
[최해린 기자]
▲ 영화 <우리가 끝이야> 스틸컷 |
ⓒ 소니픽처스 |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리가 끝이야>(원제 'It Ends With Us')가 13일 롯데시네마를 통해 국내 개봉했다. '감동적인 로맨스 영화'로 홍보되고 있는 본작은 작품 내·외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제기 받고 있는데, 관련 내용을 가볍게 알아보도록 하자.
전미를 휩쓴 문제적 작가
<우리가 끝이야>는 미국의 작가 콜린 후버(Colleen Hoover)의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후버의 책은 소셜 미디어 앱 '틱톡'의 사용자 중 책 리뷰를 주 콘텐츠로 삼는 '북톡(BookTok)' 소비자들에 의해 단기간에 유명해졌고, 미국의 어느 서점을 방문하더라도 보일 정도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후버의 작품은 내적으로는 '가정폭력 미화'에 대한 비판을, 외적으로는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받아 왔다.
본 영화의 원작이 되는 <우리가 끝이야>외에도 후버의 다양한 저작들은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데, 그 과정에서 정신병, 강간, 자살과 가정폭력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소재를 사려 깊게 차용했다면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후버의 집필 스타일에서 시작된다. 주로 여성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는 후버의 소설에는 자신이 당한 가정폭력이나 끔찍한 피해를 정당화하는 묘사가 자주 등장하곤 하는 것이다. 이는 폭력과 강간을 '칭송한다(glorify)'는 비판을 받아 왔다.
후버는 자신의 저작이 타인에 대한 폭력을 경고하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은 이러한 선언과 궤를 달리했다. 2022년, 한 X(구 트위터) 사용자는 자신이 후버의 아들(성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밝혔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는 중재를 위해 후버의 계정을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차단당했다고 전해졌다.
이후 후버가 발표한 성명에는 '해당 사건이 와전됐고, 후버 본인이 피해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들과 함께 웃고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 폭력 사건을 없었던 일 취급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작가 본인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쟁쟁한 상황에서, 블레이크 라이블리 주연의 <우리가 끝이야>는 제작과 개봉을 강행했다. 미국 개봉 직후 <데드풀과 울버린>을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영광도 누렸으나, 원작 소설과 작가에 대한 비판에 영화적 완성도까지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 역시 받게 됐다.
▲ 영화 <우리가 끝이야> 포스터 |
ⓒ 소니픽처스 |
본작은 이 긴 시간대에 걸친 이야기를 굉장히 단조로운 페이스로 전개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며칠~몇 달 사이에 달하는 간극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고 무작정 이어 붙여 덜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끝이야>가 한 편의 '영화'보다는 일종의 '장면 모음집'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개에 거듭 등장하는 회상 장면 역시 영화의 흐름을 끊는다. 영화는 라일의 가정폭력이 시작되는 계기를 제공하기 위해 릴리의 첫사랑 '아틀라스'를 등장시키는데, 영화의 중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하는 아틀라스를 소개하기 위해 영화의 초반부터 릴리와 아틀라스 사이의 연애담을 다룬 회상 장면을 집어넣어 영화의 편집을 더욱 난잡하게 만든다.
이러한 장치가 영화의 메시지를 더 강화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작중 릴리는 라일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은 후 그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거듭 사과하며 나아지겠다고 호소하는 라일을 쳐내는 장면은 쾌감을 자아낼 만하지만, 이 이별 장면 이전에 나왔던 라일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설명하는 장면은 의아함을 낳는다.
결국 수많은 회상 장면과 설명은 릴리의 서사를 보강하는 것이 아닌, 라일에게 서사를 부여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릴리의 첫사랑의 등장은 라일이 폭력을 행사하는 데 '이유가 있었다'고 항변하는 듯 보이며, 뜬금없는 유아기 트라우마 설명은 라일의 가정폭력을 일종의 '불쌍한 유년시절의 결과'처럼 보이게 만든다. 교제폭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주체적인 행동이며, 그 어떤 과거의 비극으로도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우리가 끝이야>는 원작 소설을 다듬고 각색했음에도 본래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며, 영화적인 완성도 자체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유명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앞으로도 콜린 후버의 책은 거듭 영화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베리티>(verity), 그리고 <너를 후회해>(regretting you)등의 작품이 사전 제작 단계에 있다.
'감동적인 로맨스'의 탈을 쓴 '교제폭력 미화물'이 탄생하는 퇴행을, 관객들은 얼마나 더 오래 목도해야 할까. <우리가 끝이야>는 그 자체로 로맨스 장르와 관련 마케팅의 한계를 드러내는 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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