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노벨상 수상자가 본 美경제 '경외감과 충격'

박병희 2024. 9. 1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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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부유층·빈곤층 공존하는 사회
기회 활용하지 못하면 철저히 배제

경외감과 충격.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이민자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공공국제재정대학원 명예교수는 미국 경제에서 느끼는 양면성을 이같이 표현한다. 그는 가난한 이민자임에도 프린스턴 대학이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장에서 엄청난 기회를 얻었고 자녀까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반면 미국은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없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지원하지 않는다.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사람을 철저히 배제하는 미국 사회를 보며 디턴 교수는 충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처럼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가혹한 정치가 미국 사회가 극심한 불평등에 시달리는 원인이라고 디턴 교수는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원제 Economics in America)’에서 지적한다.

디턴 교수는 지난 25년간 영국 왕립경제학회에 미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살펴보는 정기적인 글을 기고했다.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은 이 기고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 출간한 책이다.

디턴 교수는 소비, 빈곤, 복지에 대한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복지 측면에서 소득 재분배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이 책에서도 주로 불평등의 문제를 다룬다, 책에는 ‘이민 경제학자가 불평등의 땅을 탐험하다(An Immigrant Economist Explores the Land of Inequality)’라는 부제가 붙었다.

디턴 교수는 1983년 미국으로 이민했으며 미국 사회는 당시보다 지금이 더 어두워졌다고 지적한다. 실제 다양한 지표를 통해 미국 사회가 점점 더 불평등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디턴 교수는 저학력 미국인의 물질적 환경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4년제 대학 학위가 없는 남성의 실질임금 중간값은 1970년 이후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디턴 교수는 아내이자 동료인 앤 케이스 프린스턴대 교수와 공동 저술한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자살, 약물 과다복용,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인한 ‘절망사’가 늘고 있는데 4년제 대학 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절망사가 늘지 않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처럼 천문학적인 자산을 소유한 절대 부유층이 존재하는가 하면 수백만명이 인도나 에티오피아의 빈곤층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나쁜 환경에서 사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디턴 교수는 이런 불평등의 원인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인식의 문제를 지적한다. 많은 이들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난해진 원인은 그 자신에게 있으며 따라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미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스스로의 이유 때문에 다양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턴 교수는 미국에서는 기회 활용 그 자체의 불평등이 존재하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이들이 그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더라도 이들을 위한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는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가혹한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디턴 교수는 지적한다. 가혹한 정치는 디턴 교수가 좋은 경제학과 나쁜 경제학을 구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턴 교수는 뛰어난 경제학자라 할지라도 정치권에서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질을 보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밝힌다. 일례로 1999~2001년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를 언급한다. 디턴 교수는 서머스 전 재무장관에 대해 40년 이상 알고 지냈으며 지식의 양이나 창의성 면에서 그보다 뛰어난 경제학자는 없었다고 평한다. 하지만 재무장관 재임 때 많은 이들이 비판한 투기성 자금의 이동과 월가의 파생상품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으며 지금은 당시의 조치가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미국 부동산발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이었음이 확인됐다고 지적한다.

디턴 교수는 또 일반적인 경제 성장과 번영이 공유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1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1.8%씩 증가했고 실질 기준으로 지난 50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소득 분배의 중간층 실질 임금은 1970년 이후 정체돼 있으며 대학 학위가 없는 남성의 실질 임금 수준으로 오히려 50년 전보다 더 낮다.

이런 상황을 보완할 수 있는 최저임금 문제는 늘 논란의 대상이 된다. 디턴 교수는 이미 1980년대에 자신의 프린스턴대 동료인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가 최저임금의 적당한 인상은 일자리 상실과 연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며 현대 주류 경제학의 핵심 문제 중 하나는 인류 복지 연구라는 기반에서 떨어져 나간 점이라고 지적한다.

디턴 교수는 미국 경제가 철저하게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생각과도 다르다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는 사회 문제, 윤리,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디턴 교수는 케인스가 1931년 출간한 저서 ‘설득의 경제학’(Essays in Persuasion)에서 "인간의 정치적 문제는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정의 그리고 개인의 자유, 이 세 가지 요소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다"라고 말하기도 했음을 강조한다. 디턴 교수는 현대 경제학은 효율성에 치우친 나머지 자유와 정의의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주장한다.

디턴 교수는 책에서 빈곤, 은퇴, 최저 임금부터 자신이 받은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자신에게 벌어진 일과 주변 인물들과 연관 지어 재미있고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때로 굉장히 노골적이어서 흥미롭다. 일례로 그는 세계에서 논문 인용 빈도가 가장 높은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로버트 배로 교수의 정부 재정적자에 대한 견해는 비논리적이며 그가 하버드대 교수라는 사실은 1936년 이후 거시경제학이 퇴보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일갈한다.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 앵거스 디턴 지음 | 안현실ㆍ정성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336쪽 | 2만3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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