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 류승완 감독 "빌런 초반 공개, 모험이었다"
[이선필 기자]
9년 전 1340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에게도 분명 특별하게 남아 있었다. 재벌가의 범죄를 일망타진하는 통쾌함과 명대사, 액션 등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터였다. 진작 속편이 나올 법했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강산이 한번 바뀔 만한 때에 등장한 2편은 1편과 주요 등장인물이 같으면서도 소재나 주제 면에선 훨씬 복잡해지고, 깊어졌다.
사건의 진실을 가려버리는 사이버 렉카의 난립, 여기에 사적 정의구현을 외치는 사이코패스 해치의 폭주가 2편을 관통하는 주요 사건이다. 아군과 적군이 분명했던 1편과 달리 2편에선 서도철 형사(황정민)의 베테랑 팀이 대중의 뭇매를 맞는다. 누가 정의인지 누가 악인지 판단을 보류한 채 영화는 경찰 조직 안으로 스며든 해치와 서도철 형사를 끝까지 대치시킨다.
▲ 영화 <베테랑2>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
ⓒ CJ ENM |
"1편 촬영 때부터 속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고 갔다. 무언의 약속처럼 서도철의 후속 이야기를 하기로 했지. 마치 <비버리힐스 캅> 속 에디 머피의 야구 점퍼처럼, 서도철의 외투를 보관하기로 했다. 아시다시피 <베테랑>은 당시 투자배급사의 중심 타선은 아니었다. 개봉도 좀 밀렸고, 400만 관객만 넘어도 감사한 작품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얻었잖나. 숨 고르기가 필요했다.
시간이 좀 흐르며 제 안에서 변화가 생겼다. 솔직히 1편은 내 영화로 사적 복수를 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근데 너무 큰 사랑을 받고, 뉴스에도 우리 영화가 소환되고 하니까 단순히 통쾌함만 주자고 속편을 하는 게 맞나 싶더라. 어떤 사건에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걸 보며 분노했다가 미지근해지는 내 자신이 좀 추잡해 보이기도 했다. 이미 영웅 서사는 다른 동료들이 잘하고 있고, <베테랑>은 한번 성공 했으니 다른 길을 보여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었다.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관객들 응원받는 게 더 중요하다. 이만큼 다른 걸 해보려 애썼구나, 정성이 갸륵하다는 평이 나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조금 더 깊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알려진 대로 <베테랑> 1편은 일명 한 재벌가의 '맷값 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속편에선 일명 '정의 부장'이라는 전직 기자 출신 사이버 렉카가 등장하고, 마약 밀거래나 휴대폰 복제와 해킹 등으로 베테랑 형사팀들이 곤욕을 겪는다. SNS 플랫폼 이용자들의 폐해를 대형 상업영화에서는 처음 다룬 것 같다는 말에 류승완 감독은 "특정 사건은 표면적인 것일 뿐 크게 중요치 않았다. 오히려 본질이 중요했다"며 답을 이었다.
"사실 현실 세계와 온라인상 정보의 혼돈 양상은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오래전부터 다루긴 했다. <소셜포비아> <잉투기> 그리고 작은 상업영화지만 최근 <댓글부대>도 있었고. 사이버렉카를 전면에 드러내려고 했다기보다는 미디어 환경 변화로 대중들이 정보를 접하고 소비하는 환경이 그렇게 흘러갔기에 택했다고 보시면 된다. 종이 신문 시절에도 가짜뉴스나 황색 언론이 있었고, 1990년에서 2000년대 초반까진 증권가 찌라시의 폐해가 심각했잖나.
▲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관객들 응원받는 게 더 중요하다. 이만큼 다른 걸 해보려 애썼구나, 정성이 갸륵하다는 평이 나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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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렉카는 일종의 변죽 정도일 뿐, 이 영화의 핵심은 해치라고 할 수 있다. 공권력이 처단 못하는 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해치의 행동에 대중은 열광한다. 아무도 해치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와중에 영화 중반 해치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중의 관심을 즐기고, 서도철 형사 및 동료들이 겪는 무력감에서 쾌감을 얻는 존재다. 이는 서도철 형사가 박선우라는 신참을 대하는 감정과도 연동된다. 자신과 비슷한 부류로 알고 그를 베테랑 팀으로 당겨오지만, 곧 그것이 악수가 되면서 서도철의 마음은 복잡해지고 만다.
"제가 어렵게 생각한 부분이다. 장르 영화 규칙으로 보면 해치의 정체를 일찌감치 공개하는 건 위험한 선택이다. 원랜 해치를 반전 요소로 사용하는 시나리오가 있었고, 해치가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추적하는 버전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근데 그러면 서도철의 인간성이 드러나지 않더라. 해치가 빌런이냐 아니냐로 무게가 쏠리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빌런의 정체보다 서도철의 선택, 그가 느끼는 딜레마가 중요했다. 아마도 서도철은 처음에 해치를 보고 MBTI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서도철 또한 어떤 선택을 했다면 해치처럼 됐을 수도 있다.
그 미세한 간격이 시간이 흐르며 크게 벌어진 거라 생각했다. 순간순간의 선택과 주변 인물들이 지금의 서도철을 만든 것이고, 동료의 소중함이나 정의를 몰랐던 박선우는 해치가 된 것이지. 제가 공포를 느꼈던 게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이었다. 최근 시청역 차량 사고도 그렇고, 싱크홀에 갑자기 사람이 잘못되기도 한다. 이건 내 잘못으로 인한 게 아니잖나. 천벌을 받는 건가 생각할 수도 없고. 해치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그런 존재이길 바랐다."
▲ "문제는 이런 무분별한 폭로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모욕감을 감당 못 해서 목숨을 던진다.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그러면서까지 이익을 취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 이 영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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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러 감독들이 OTT 플랫폼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와중에도 류승완 감독은 극장용 영화를 만들아왔다. 고집이면 고집, 뚝심이라면 뚝심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류 감독은 반드시 특정 플랫폼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제가 지금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좋다. 불이 꺼지고, 본 영화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낯선 사람들과 같은 영화에서 반응하는 순간이 좋다. 티켓을 끊고 극장을 찾아가 영화를 본다는 것은 대상에 품격을 부여하면서, 스스로도 품위를 얻는 일 같다. 이를테면 저도 종종 놓친 영화를 집에서 TV로 보는데 아무리 집중해도 끊어 보게 되고, 휴대폰을 보게 되더라. 나도 모르게 소파에 누워서 보기도 하고.
사실 OTT용으로 만든다면 휴대폰으로 보는 것까지 감안하는 거잖나. 아직은 제 영화를 휴대폰에서 보는 게 상상이 안된다. 근데 애플TV에 <더 콜>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큰 모니터로, 아이패드로, 휴대폰으로도 봤는데 가장 몰입도가 좋은 게 이어폰 끼고 휴대폰으로 볼 때더라. 이 작품처럼 매체 환경에 맞는 이야기나 소재를 찾는다면 저도 도전해보겠는데 2시간 이내에 끝나는 영화라면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 서두와 말미, 류 감독은 최근 개봉한 독립영화 <장손>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영화가 매우 좋다고 들었는데 보고 싶다"며 그는 "다양한 영화들이 나와야 극장도 활력이 생긴다. 의도치 않게 (대형 대중영화 중에선) 홀로 추석에 개봉하는데 이런 경우도 처음이다. 극장 영화의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 찾아보시면 영화들이 아예 없진 않으니 꼭 오셨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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