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 잠긴 고향, 또 잠기진 말았으면 합니다

박서진 2024. 9. 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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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수몰되고, 학교도 폐교되고... 이렇게 또 단양을 잃고 싶진 않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서진 기자]

지난 9월 11일, 단양시장 대목장날이다. 추석 직전이라 그런지 이른 아침부터 시장 주변이 떠들썩하다. 모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여기저기 활기차게 장사 준비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나는 귀신에라도 홀린 양, 출근길이지만 잠깐이라도 보고 가겠다는 생각에 얼른 주차를 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 ▲ 시장에 놓여있는 과일들(자료사진). 시장 대목장날인데 추석 직전이라 그런지 이른 아침부터 시장 주변이 떠들썩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 연합뉴스
단양 외곽에서 나오신 어르신들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상인들의 장사준비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르신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장사꾼이 많이 왔나! 어디보자~ 그래도 대목이라고, 평소보단 좀 온 거 같네."
"예전에 비하믄 이건 암것도 아니여, 옛날 (수몰 전) 구단양에 있을땐 장날이면 아주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지."
"맞어, 그땐 사람이 참 많았는데... 신단양 생기고 사람들이 많이 나갔어."
"이 이도 거 살다가 나왔잖아."

수몰로 인해 고향이 사라지신 분들의 대화로 들렸다. 그 때가 그리우신 모양이었다.

"우리가 살던 집에 우리 집까지 여섯 집이 세를 살았는데, 화장실은 달랑 한 개였어. 화장실 때문에 매일 난리였어, 지금 그렇게 화장실 한 개 있다고 하면 누가 살겠어, 그래도 그땐 웃을 일도 많고, 재미도 있고. 참 좋았는데."
"어쩌다 가물어서 물이 줄면 잠긴 집터가 보이잖어, 그래서 집 보러 가기도 했었고."
"그럼 뭐혀,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한 게, 잘 생각이 안나. 이러다 영영 기억 못하믄 어쩌나 무섭기도 하고... 큰 애 등에 업고 내 집 마당처럼 드나들던 그 시장도 참 그립고."
"그렇지! 덤도 많이 주고 말 잘하면 깎아주고, 장 파할 때 나가면 떨이로 정말 한보따리 사들고 왔는데..."

어르신 얘기를 듣다보니, 장마 때면 매번 물에 잠기곤 하던 어릴 적 우리 동네 모습, 지금은 자리를 옮긴 매포 전통 시장 풍경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엔 비가 오면 그저 신났었다. 종일 내리던 비가 저녁이 되면 무릎까지 차올라 친구들과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리고 한 손에는 우산을 쓰고 비 구경에 즐거웠던 기억이다.

비가 더 내리지 않아서 그 정도에서 끝나면, 마을에 큰 피해도 없이 우리들 나름의 물놀이가 되어 재미있었는데. 밤새 비가 그치지 않는 날이면 동네 어르신들은 대문을 왔다 갔다 하시며 날을 샜다. 우리 집보다 지대가 낮은 친구네 집은 곧잘 물에 잠기었다. 그렇게 잦은 홍수로 우리 동네는 윗동네로 이전하게 되었고,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그렇게 폐교가 되었다.

결국 물 때문에 어르신도, 나도 고향과 이별하게 된 셈이다.
▲ 침수위험지역 단양 달맞이길과 주차장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침수되는 곳.
ⓒ 박서진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생각하면, 어릴 적 엄마 손길이 기억이 난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어도, 벌떡 일어나게 하던 엄마 손. 깊은 밤이면 엄마의 거친 손이 쿨쿨 새근새근 잠든 내 얼굴에 몰래 찾아왔었다. 보이지 않는 깊은 밤이 되면 엄마는 어김없이 잠든 우리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셨다. 그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얼굴을 더 부벼대곤 했지만, 엄마는 뿌리치곤 했다.

"안 돼, 엄마 손이 거칠어서 네 볼 긁혀"라면서. 엄마는 곱고 어린 우리 피부가 거친 손길에 다칠까 엄마에게 다가가는 우리 손을 떼어내시곤 했다.

다시 눈 앞 풍경으로 돌아오니, 어르신도 나와 비슷하게 예전 생각에 젖어있다.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아들 셋을 낳아 옹기종기 키우던 이야기를 하시며 어르신은 내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지금은 깊은 물 속에서 헤매고 있을 그 추억을 어르신께 건져드리고 싶었다.

밤새 비가 그치지 않아 집이 물에 잠긴 친구는 다음날 물이 빠지면 흠뻑 젖은 앨범 속 사진을 꺼내 수건으로 톡톡 물기를 닦아내어 햇볕에 말리곤 했다. 손 쓸 수 없게 망가진 사진은 그대로 물속에 버려졌는데, 물결 위에 흔들리며 떠내려가던 사진이 나는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그 떠내려가던 사진들이 마치 어르신들의 희미해지는 기억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 그나저나 여기에 댐을 또 만든다던데?"
"그려, 저기 상선암 거기에다 만든다잖여. 나는 거기 반대한다고 사인했어."
"나 원 참! 두 번이나 생때 같은 우리 집터를 뺏으려고 드네. 아주 괘씸해."

충북 단양은 최근 또 한 번의 댐건설 발표로 인해 군민 대다수가 분개하고 있다. 일방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9월에도 강 위협하는 녹조 폭탄... 환경부가 지금 댐 짓자고 할 때인가 https://omn.kr/2a5tn )
▲ 현수막 물 든 단양거리 단양군민들은 댐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단양천 댐 결사반대' 현수막.
ⓒ 박서진
주민들은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함에, 현수막을 거리거리에 내걸었다. 가을이 오기도 전에 단양의 거리는 댐건설 반대 현수막으로 알록달록 물들었다.

"단양천댐 백지화! 단양천댐 결사반대!"
"단양댐 건설계획을 전면 취소하라!"

주민들의 외침이 하늘에 닿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꼭 소원을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어르신의 한 지붕 여섯 집이 밤새안녕이 돼 급하게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지금도 오손도손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국기 펄럭이던 내 어릴 적 초등학교가 폐교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매년 운동회가 열리고 있다면 어땠을까?
▲ 단양천댐 반대 현수막으로 물들다 단양군민 다수가 바라는 건 '단양천댐 백지화'다.
ⓒ 박서진
먼 훗날, 내가 엄마 나이가 되고, 아이가 내 나이가 되어서 삼대가 함께 추억할 수 있게끔 '나의 살던 고향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들이 자손대대 이어져 주렁주렁 이야기 풍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다시 댐이 들어서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나의 살던, 나의 사는 내 애정어린 고향 단양은 '댐 천지 산골'이 아니라, 지금처럼 단양 8경 일급 계곡수가 흐르는 '청정 산골'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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