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50여일 앞둔 김정은 '우라늄 도발'…"무기급 핵물질 생산 강화"

정영교 2024. 9. 1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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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3일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미국 대선을 50여일 앞두고 핵심 시설을 공개로 한·미를 겨냥한 위협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동시에 미 대선에 영향력 발휘를 노리면서 향후 미국과 협상을 재개하더라도 '핵은 테이블에 안 올린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핵보유국 인정 압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해 비약적인 성과를 낼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방문해 핵탄두와 핵물질 생산 실태를 보고받고 생산 확대를 위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한·미 정보자산이 해당 시설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인 김정은의 방문 일자나 위치, 명칭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북한 핵 개발 총책으로 알려진 홍승무 노동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김정은을 수행했다.

앞서 북한은 10년 미국 핵과학자 스그프리드 헤커 당시 스탠퍼드대학교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을 초청해 영변 핵단지 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했다.

그러나 핵심 장비인 원심분리기를 포함해 우라늄 농축시설 내부의 모습을 관영 매체를 통해 직접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례적인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 지도하며 핵탄 생산 및 현행 핵물질 생산 실태를 료해(점검)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전망계획에 대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라고 보도했다. 뉴스1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 대선으로 열린 틈새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김정은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공화·민주 양당이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가 빠졌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에 가로막혀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핵·미사일에 아무런 조처를 하지 못하는 바로 지금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미 하노이 핵 담판이 결렬된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우라늄 농축시설을 김정은이 직접 공개한 건 자신들이 핵보유국이란 점을 과시한 것"이라며 "향후 미국과의 담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실패로 끝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베트남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 당시 영변 핵단지 외에는 핵농축 시설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 시설이 "5곳"이라고 숫자까지 공개하며 협상을 결렬시켰다.


"핵물질 생산 토대 더 강화" 양적 승부수


김정은은 핵물질 생산현장을 돌아보면서 "정말 이곳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원심분리기 대수를 더 많이 늘이는 것과 함께 원심분리기의 개별 분리능을 더욱 높이며 이미 완성단계에 이른 새형의 원심분리기 도입 사업도 계획대로 내밀어 무기급 핵물질 생산토대를 더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 지도하며 핵탄 생산 및 현행 핵물질 생산 실태를 료해(점검)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전망계획에 대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라고 보도했다. 뉴스1

앞서 김정은은 정권수립기념일(9·9절) 76주년 기념일 연설에서 "공화국은 핵무기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여가고 있으며 핵 역량을 부단히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실체'를 공개하며 핵 능력을 과시한 셈이다.

또 김정은은 여러 차례 공개 발언을 통해 대남 사용 가능성을 열어 둔 전술핵무기의 생산을 재차 강조하면서 직접적인 대남 위험도 서슴지 않았다. 이날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전술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서 보다 높은 전망 목표를 내세우고 총력을 집중해 새로운 비약적 성과를 안아오라"고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물질 생산 확대를 강조하는 이면에는 핵무기 수 우위를 기반으로 하는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지적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실효적인 핵억제력을가질려면 적의 핵 일차타격에 살아남아 반격할 수 있는 2차 핵 타격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며 "북한도 이를 위해 핵무기를 100~200기 이상으로 늘려 핵의 생존성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권수립기념일(9월 9일) 76주년을 맞은 9일 ″금후 국가사업 방향과 관련한 중요 연설을 했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강력한 힘이 진정한 평화″라며 ″핵역량을 부단히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뉴스1

일반적인 핵무기의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핵 격납고의 방호력을 높이거나 미사일 방어체계를 갖추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를 갖추기 어려운 북한이 핵무기 보유량을 극단적으로 늘리는 뱡향으로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란 설명이다.


확장억제 강화에 맞불


또 김정은은 "최근에도 미제를 괴수로 하는 추종세력들이 공화국을 반대하여 감행하는 핵위협 책동들은 더욱 노골화되고 위험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며 "항구적으로 미국과 대응하고 견제해야 하는 우리 혁명의 특수성, 전망적인 위협들은 우리로 하여금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 공격능력을 끊임없이 계속 확대 강화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있는 한·미·일의 협력을 의식하면서 김정은의 핵무력 증강 방침은 자위권 차원의 정당한 조치라고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미국이 핵 기반의 군사 블록을 만들어 자신들을 압박한다는 김정은의 정세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북한이 책임있는 핵보유국이라고 강조하면서도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는 이중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도 한·미를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의 북한군 특수작전무력기지 지난 12일 평양 인근에서 진행된 신형 600㎜ 방사포차 성능 검증 시험 현지지도 소식도 함께 전했다.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무력훈련기지를 현지 시찰하고 전투원들의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김 총비서가 감시대에 올라 훈련강령에 따라 전투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대상물 정찰 및 습격 전투 훈련을 봤다"고 전했다. 뉴스1

한편 정부는 이날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며 '핵능력의 가속적 강화, 전술핵 무기용 핵물질 생산'을 언급한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읽은 정부 입장문을 통해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기 개발은 다수의 유엔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자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북한의 어떠한 핵 위협이나 도발도 굳건한 한미동맹의 일체형 확장억제 체제를 기반으로 한 우리 정부와 군의 압도적이고 강력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미 대선을 앞두고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핵실험 시기는 북한 지도부의 결심에 따라 달라질수 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예단하는 것은 제한된다"며 "미 대선 등 대내외 정세를 포함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의도 등을 면밀히 파악하는 중이며, 북한 전반 동향을 관찰하고 분석 중에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미 정보당국이 긴밀히 추적 중"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 미사일 개발은 우리나라(일본)와 국제사회 평화,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미국,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북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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