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타자기] 엔비디아 제국은 영원할 수 있을까
태초에 그것의 이름은 3D 가속기(가속 카드)였다. 처음 엔비디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시기였다. 스퀘어에닉스사(당시에는 합병 전이라 스퀘어)가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을 PC로 컨버전해 출시한 파이널 판타지 7이 3D 그래픽 성능을 요구한 이래로, PC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3D 가속기는 당연하게 필요한 부품이 됐다.
당대의 시장 지배자는 지금은 없어진 3DFX사에서 출시한 부두(Voodoo) 시리즈였다. 부두는 글라이드 모듈이라는 자신들만의 기술을 이용해 시장을 지배했다. 처음으로 용산 전자상가에 그래픽 카드를 사러 간 날, 용산의 대부분 상인은 "게임에는 부두죠"라는 말을 되풀이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선택은 리바(RIVA) TNT2 울트라였다. 이 리바 시리즈가 엔비디아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기왕 사는 거 가장 스펙이 높은 제품을 구입하고 싶었다. 리바 TNT2 울트라를 설치하고 처음 실행시켜 본 게임은 존 카멕의 ‘퀘이크3 : 아레나’였다.
당대에는 부두 이외에도 대안이 있긴 했다. 훗날 라데온 시리즈를 만든 ATI의 RAGE(나중에 AMD와 합병한다), 듀얼 모니터를 가장 훌륭하게 지원하던 매트록스의 G시리즈도 있었다. 잠시 뒤 엔비디아의 새로운 그래픽 카드 모델인 ‘지포스’가 등장하면서 시장 지배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엔비디아가 됐다. 그리고 그것의 이름은 3D 가속기도, 그래픽 카드도 아닌 GPU가 됐다. 이제는 GPU까지 넘어 AI 반도체라는 이름까지 가지게 됐다.
권순우, 이동수, 권세중, 유지원이 공저한 ‘AI 반도체 혁명’은 반도체의 역사로 책을 시작한다. 세계 최초라고 알려졌던 컴퓨터 에니악부터 시작해 진공관 시스템, 트랜지스터 등을 시간에 흐름에 맞춰 쭉 나열한다. 독자들은 이들이 안내한 흐름만 따라가도 반도체, 특히 GPU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반도체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CPU나 RAM에 관한 설명은 적은 편인데 이는 이 책의 사실상 주인공이 엔비디아기 때문이다.
GPU 시장의 지배자인 엔비디아는 챗 GPT 부류의 AI 모델 등장 이후 반도체 시장의 지배력을 날로 강화하고 있다.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90%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자체적인 기술 개발 속도 자체가 다른 회사보다 빠른 데다 쿠다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생태계까지 장악하고 있다. 애플이 자체 개발한 반도체 A·M 시리즈와 운영체제 IOS로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엔비디아도 GPU 자체뿐 아니라 GPU와 다른 부품들을 연결하는 기술, 소프트웨어까지 더해져 막강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저자도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현재 엔비디아 주도의 AI 반도체 시장, 특히 학습을 위한 고성능 AI 반도체는 적어도 당분간 누구도 따라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엔비디아 제국은 영원할 것인가. 책에는 두 가지 힌트가 있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저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전력 문제다. 엔비디아의 GPU는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전 세계 AI 데이터 센터들은 국가급 전력을 소비하는 전기 괴물이 될 것이다. 이는 발전의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IT 세계에서 영원한 제국은 없었다. 절대적인 CPU 제국 인텔은 현실에 안주하다가 AMD의 추격과 모바일 저 전력 AP의 등장으로 제국의 위상을 잃었다. 한때 악의 제국이라 불리던 마이크로소프트도 PC에서의 지배력은 그대로라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으로 본인들의 시장 자체가 작아져 버렸다. 엔비디아의 위상도 언젠가 다른 기술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 기술의 변화를 다각도로 즐기는 1인으로서 엔비디아의 발전과 더불어 그들의 몰락도 기대하고 있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왔으니까.
AI 반도체 혁명 | 권순우, 이동수, 권세중, 유지원 | 페이지2북스 | 390쪽 | 2만3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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