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엘리엇 ISDS 판정 취소소송’ 英법원 각하에 항소
한국 정부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1300억원 넘는 돈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소송을 영국 법원이 각하한 데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
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89억원(약 1억782만 달러)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정에 대해 한국 정부가 낸 취소소송을 각하한 영국 1심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법원에 12일(현지시간)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13일 밝혔다.
정부는 “관계부처, 정부대리 로펌, 외부 전문가들과 영국 1심 법원의 각하 판결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를 진행했다”며 “해당 판결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해석 등에 관한 중대한 오류가 있기에 항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미 FTA 규정을 근거로 PCA의 판정에 ‘관할 위반’이 있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애초에 재판할 권한이 없는 사건을 판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8월 1일 영국 법원은 정부가 근거로 든 한미 FTA 제11장의 조항(11.1조)이 영국 중재법상 재판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며 각하했다.
영국 중재법상 취소 소송은 ‘실체적 관할’에 관한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정부가 근거로 든 조항은 당사국의 ‘실체적 의무’라는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영국 법원의 논리다.
영국 법원은 실체적 관할과 관련된 규정은 한미 FTA 11장 내의 다른 부분에 명시돼 있다고 봤다.
PCA에 재판권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취소소송을 냈는데, 이를 맡은 영국 법원은 자신들에게 이 소송에 대한 재판권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해당 조항이 11장 전체에 적용되는 ‘관문 조항’이라는 점에서 영국 법원의 해석에 오류가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이러한 해석이 한미 FTA와 유사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을 다룬 다른 ISDS 판정례들과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항소심에서 승소할 경우 사건은 1심 법원으로 환송돼 정부가 주장한 중재판정 취소 사유에 대한 본안 판단이 이뤄지게 된다.
정부는 “영국 법원의 각하 판결에 항소해 바로잡지 않을 경우, 향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언을 가진 투자 협정의 해석 및 적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부당한 ISDS 제기가 늘어날 가능성도 항소 제기 결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에서 1심 각하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건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엘리엇은 정부의 항소 결정과 관련해 입장문을 내고 “항소를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며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중재 판정에 불복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나, 잘못된 행보이며, 특히 대한민국이 이미 취소 소송에서 패소한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행보는 공정하고 투명하며 신뢰할 수 있는 자본 시장을 구축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공단에 찬성 투표 압력을 행사해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ISDS를 제기했다.
PCA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6월 20일 한국 정부에 5358만6931달러(판정 당시 환율 1288원 기준 약 690억원)와 지연 이자·법률 비용 등을 포함해 총 130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법무부는 중재지인 영국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영국 상사법원은 지난달 초 약 1년 만에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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