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가 고3 아들에게 미친 영향

박정은 2024. 9. 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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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수생 급증으로 수능 최저 포기하려는 아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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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기자]

 의과대학 정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지만, 2025학년도 의대 수시모집에는 지원자가 대거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진학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각 대학의 수시모집 경쟁률을 보면 11일 오전 9시(대학별 경쟁률 집계 시간 상이)까지 전국 37개 의대 수시에 1만9천324명이 지원했다. 이 수치는 모집인원 대비 7배 가까운 숫자로 수시 경쟁률을 비공개한 의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률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의학 계열 전문 학원의 모습. 2024.9.11
ⓒ 연합뉴스
고3인 큰아이의 2025년 수시 원서 6개의 등록을 마쳤다. 등록 기간 5일 중 3일 만에 등록을 마쳤는데, 그 3일의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아이가 가고 싶은 학교는 사실 하나였다. 아이는 그 학교의 심리학과를 가기 위해 2년 반 동안 열심히 생활기록부를 채웠다.

대한민국 고교생의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아이가 생기부를 챙기는 과정은 엄마인 내 눈에는 눈물겹기도 하고, 감동의 서사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 아이는 중학교 때까지 학교 공부 자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였다. 태권도를 좋아하고, 친구들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선생님들께 수업 태도가 좋다고 칭찬받으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지만, 정작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누군가 나서서 일을 진행할 때, 잘 도와주고 따라주는 유형의 아이였지, 스스로 중앙에 나서서 무언가를 이끌어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뺏기는 그런 성격이었다. 밖에서 밝게 웃음을 터뜨리지만, 집에 오면 뻗어버리는 아이였다. 바깥에 있는 시간만큼 집에서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그런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크나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엄마, 성격을 바꿔야겠어."

꿈을 위해 성격까지 바꾼 아이

MBTI 유형 중 극 I의 놀라운 결심이었다. 한 번도 나선 적 없던 학급 임원에 도전해보겠다더니 3년 내내 학급의 회장, 부회장을 역임하며 활발히 대의원회 활동을 했다. 오디션 같이 긴장된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는데, 상담심리 관련 동아리에 당당히 오디션을 봐서 들어갔다. 다수가 여학생인 무리 가운데에서 소수의 남학생으로서 궂은 일도 도맡아 하며 열심히 활동했다.

방학 때는 팀을 꾸려 사회단체를 방문하거나, 주요 공공기관을 견학하는 등 적극적인 면모를 보였고, 잘 따라오지 못하는 후배를 위해 친절히 안내하고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교장 선생님과 함께하는 풍물 공연에서 꽹과리를 맡아 멋지게 무대를 꾸미기도 했고, 학교 축제 때는 마음 맞는 친구와 듀엣을 준비해 코믹한 무대로 큰 웃음을 던져주기도 했다. 아이를 보면 너무 흐뭇하다는 선생님들의 칭찬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고교생활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했다. 저렇게 잘하는 아이였던가? 저렇게 밝은 아이였던가? 엄마 품 안이 아니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일 줄 알았는데, 아이는 엄마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해 가고 있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고, 이제 어디에 갖다 놔도 잘해 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런데 수시 원서를 등록하는 동안,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등급을 맞추기 위해 나름 학업에 열심히 임했지만, 산출된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면접에서 반등해 보리라는 기대를 붙들고 상향 지원을 했다.

차선책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의 거점국립대학으로 눈을 돌렸는데, 아이가 불안해했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면접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면접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드러내던 아이가, 학생부교과전형 지원에서는 자꾸만 머뭇거렸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수능 최저 점수를 맞출 자신이 없다는 거였다.
▲ 지방국립거점대학인 경북대학교의 입시 요강 중 교과나 학종의 등급에 맞춰 지원을 하려 해도, 수능최저학력 기준이 걱정돼 지원을 꺼리는 학생들이 있다. 의대 증원 정책에 따른 N수생의 몰림 현상 때문이며, 흔히들 이번 수능을 불수능이라고 부른다.
ⓒ 경북대학교 입시 요강 중 캡쳐본
수능 최저가 그렇게 부담스러운 점수는 아닌데, 평소 모의고사 볼 때처럼만 해도 거뜬히 받을 수 있는 점수 아닌가? 나는 의문이었다. 아이가 말했다.

"이번 수능 불수능이래. 의대 증원 때문에 N수생들이 몰리잖아. 모의고사 때 받았던 점수보다 훨씬 못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따라 전국의 상위권 성적의 재수생들이 이번 수능에 몰린다는 거다. 이미 명문대에 합격해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던 학생들마저 저버렸던 의사의 꿈을 다시 꾸고, 이번 수능 고사장으로 몰린다는 말이다.

의대 증원에 따른 갈등과 파급에 대한 기사를 어깨너머로 접할 때마다 정부의 얼렁뚱땅, 엉망진창 정책에 화가 나긴 했다. 의정 양측의 의견에는 진정 국민을 위한 마음은 엿볼 수 없었다. 말로는 국민을 외치지만, 그들이 해나가는 행보 어디에도 국민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장 이번 명절에 크게 아프면 안 되는데...' 정도의 걱정을 했다. 그런데 그 정책이 의료 공백뿐만 아니라, 수시 원서를 등록하려는 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줄이야.

시대의 아픔을 겪는 고3
 2025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된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입학정보관에 수시 접수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9.9
ⓒ 연합뉴스
불수능 소식을 이래저래 접한 아이는 아예 수능 최저를 포기한 상태였다. 학생부종합전형과 면접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리겠다고 결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결심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1 지망한 학교에 수능 최저 없이 합격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수능 준비를 하자는 부모의 말에 아이의 낯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본인도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필요한 책을 구매해 달라고 얘기한다. 성격을 바꾸면서까지 애를 쓴 아이가 마지막까지 고생하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비단 내 아이만의 고통일까. 다시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할 수 있다는 N수생들의 희망이 희망 고문으로 막을 내릴까 염려스럽다.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어 기쁨을 거머쥘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많은 학생이 희망 고문으로 인한 시간 낭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빠져나오기 힘든 N+a수생의 늪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에 따른 시간과 물질과 마음의 소비는 어떻게 보상받게 될 것인가? 그것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무심한 정부로 인한 시대의 아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엉망진창인 대한민국 교육계를 비롯한 여러 영역이 제자리를 찾게 되는 건 언제일까? 그러는 동안 제대로 되지 못한 국가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걸까? 어서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이의 입시도 무사히 마무리되었으면 겠고, 이 사회도 제대로 된 모습을 어서 갖춰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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