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성찰을 담은 애도 일기

양찬혁 2024. 9.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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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철학자 <아침의 피아노> 를 읽고

[양찬혁 기자]

최근 애도를 표할 일이 많았다. 내 주변에서 누군가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니다. 뉴스에 보도된 많은 사고를 보며 애도를 표했다. 그렇게 나의 애도는 닳아 갔고 점차 힘을 잃었다. 내 애도를 회복하고자 사전부터 뒤졌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으로는 부족했다. 아마 내가 표하고 싶은 애도에는 사전적 의미로 파악할 수 없는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찰나, 애도의 진정한 의미와 애도를 표하는 마음을 알려준 책이 있다. 그 책은 <아침의 피아노>였다.
▲ <아침의 피아노> 책표지 
ⓒ 양찬혁
<아침의 피아노>는 김진영 철학자가 2017년 암 선고를 받고 섬망이 오기 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썼던 일기를 엮어서 만든 책이다. 이 점에서 어떤 사람은 '병상 일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부제는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다.

그의 애도 일기는 사랑의 성찰을 담았다. 병상에 앉아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장면, 자신에게 건네는 짧은 독백 등에서 그가 남긴 사랑을 볼 수 있다. 김진영 철학자가 사랑을 표현한 건 이 책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롤랑바르트의 사랑학을 주제로 강의하며 오랜 시간 사랑을 성찰해 왔다. 그가 성찰한 사랑이 가득 담긴 <아침의 피아노>는 왜 '애도 일기'가 됐을까. 나는 그 이유를 사랑에서 찾았다.

애도哀悼가 아닌 애도愛悼

지금까지 내게 사랑의 본질은 감정의 영역에 국한되었던 건지 모른다. 내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온화함, 다정함, 부드러움 등의 조용한 감정들.... 그러나 사랑은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정신이 되어야 한다.(27쪽)

김진영 철학자는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치르게 되는 슬픔과 고통의 작업'이 애도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는 책에서 사랑에 대해 "나의 죽음이 누군가를 죽게 하고 누군가의 죽음이 나를 죽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연결하는 강한 힘이다. 또한 사랑은 감정의 영역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전한다. 이렇게 사랑이 더 깊어진다면, 앞으로 표하는 애도는 슬픔에 머무는 애도哀悼가 아닌 사랑에서 출발하는 애도愛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은 롤랑바르트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그의 저서 <애도 일기>에서 "그 어떤 담론도 사랑의 상실과 그 아픔을 대신하지 못한다"고 표현했다. 비록 사랑의 상실과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애도라면 상실과 아픔을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사랑

길 건너 고궁의 지붕들, 그 너머 숲들, 그 너머 하늘, 모두가 아름답다…나는 이제 그 세상과 삶의 본래적 축복을 안다. 그것들을 온몸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132쪽)

김진영 철학자의 사랑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병상에 앉아 작은 사건들을 기록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스쳐가는 모든 것에 사랑을 표현한다. 그의 이러한 사랑은 작가의 말에서도 느껴진다.

그는 이 책에 대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써진 사적인 글"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책의 자격이 없다며 "가장 사적인 기록을 공적인 매개물인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고 싶은 변명"이라고 덧붙인다. 그런데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이 책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282쪽)
돌아보면 사랑들이 지천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랑들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나의 어리석음이다.(224쪽)

김진영 철학자가 <아침의 피아노>에서 남긴 것은 무엇일까. 그는 애도가 사랑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를 통해 나에게 애도는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를 포함해 사랑이 기반이 되는 '정신적 작업'이 된 것이다. 이렇게 사랑을 기반으로 애도하는 태도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변화를 줄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의 피아노 소리마저 사랑으로 들을 수 있는 삶으로 말이다.

이쯤 되니 김진영 철학자가 <아침의 피아노>를 통해 나에게 알려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삶' 즉,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다. 책을 덮고 난 후 둘러보니 김진영 철학자의 말대로 사랑들이 지천이다. 이제부터라도 이 사랑들에 응답하며 살아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booknerd-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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