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건희 3000억 기부 놀랍다"…韓 모인 희귀질환 전문가들, 뭔일

남수현 2024. 9.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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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제13회 국제 미진단 질환 네트워크(UDNI) 컨퍼런스에 참석한 희귀질환 관련 세계 각국의 의사·연구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우리 지역의 희귀질환 연구자들에게는 후원을 통해 이런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되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됩니다.”(살만 키르마니·파키스탄 아가 칸 대학병원 교수)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어린이병원에 세계 각국의 희귀질환 연구자·전문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날부터 사흘간 개최된 제13회 ‘국제 미진단 질환 네트워크(Undiagnosed Diseases Network International, UDNI)’ 컨퍼런스에 희귀질환 분야 세계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UDNI는 희귀질환 전문가들의 연구 교류를 위해 2014년 창립된 국제 협력 네트워크다. 매년 여러 도시를 돌며 컨퍼런스를 개최하는데 한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컨퍼런스에는 30개국에서 총 282명이 참석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향후 더 긴밀한 협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13회 '국제 미진단 질환 네트워크(UDNI)' 컨퍼런스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채종희 서울대병원 교수, William A. Gahl 박사, Helene Cederroth 빌헬름재단 창립자,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최은화 서울대병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장. 사진 서울대병원


정확한 질환명 조차 없는 '미진단 희귀질환'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UDNI 컨퍼런스와 같은 국제 협력의 장은 더없이 귀중하다. 질환의 진단법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환자 사례를 모으는 게 중요한데, 말 그대로 ‘희귀한’ 이들 질환 특성상 한 국가 내에서만 사례를 찾아서는 연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날 만난 해외 연구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같은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파키스탄 출신 살만 키르마니 교수(아가 칸 대학병원)는 “나는 2년 전 UDNI 컨퍼런스에 처음 참석했는데, 그때 알게 된 해외 동료 덕분에 임상실험 샘플을 그의 나라로 보내고 분석할 수 있게 됐다”며 “UDNI가 아니었다면 파키스탄의 환자들은 값비싼 유전자 검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제13회 '국제 미진단 질환 네트워크(UDNI)' 컨퍼런스에서 만난 살만 키르마니(Salman Kirmani) 아가 칸 대학병원 교수. 남수현 기자


연구에 필요한 자금 확보가 어려운 점 역시 희귀질환 전문가들이 겪는 공통된 난관이다. 미국 예일대 몬콜 렉 교수는 “암이나 심장병처럼 흔한 질환에 비해 희귀질환은 백만명 중 한 명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기에 자금을 달라고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미국 역시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세운 재단 등이 희귀질환 연구를 후원하지만, 여전히 정부 지원을 받기는 까다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희귀질환 전문가들은 그런 의미에서 2021년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소아암·희귀질환 연구에 써달라며 기부한 3000억원은 한국 희귀질환 연구를 발전시키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몬콜 렉 교수는 “이 분야에 있어서 놀라운 수준의 기부금”이라며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와 돌연변이를 찾는 희귀질환 연구는 지루해보이지만 중요한 일이다. 이런 일에 정부는 투자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이건희 기부금 같은) 민간 기부금이 굉장한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제13회 '국제 미진단 질환 네트워크(UDNI)' 컨퍼런스에 참석한 몬콜 렉(Monkol Lek) 예일대 교수. 남수현 기자


매년 컨퍼런스를 후원하는 스웨덴 빌헬름 재단과 함께 이번 행사를 지원한 서울대병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 역시 이 전 회장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조직이다. 사업단은 기부금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희귀질환 연구의 후발주자인 아시아 국가 인사들까지 두루 후원·초청할 수 있었다.

아직 정부 지원이 크게 부족한 이들 국가 학자에게도 연구 재원 마련은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베트남 국립아동병원에서 임상 유전학 부서를 이끌고 있는 껀 티 빅 응옥 박사는 “베트남에는 심장병과 암을 위한 재단은 있지만, 미진단 희귀 질환을 위한 재단은 아직 없다”며 “진단부터 치료까지 어려움이 많지만, 해외 기업 등에서 기부금을 찾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지난 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제13회 '국제 미진단 질환 네트워크(UDNI)’ 컨퍼런스에서 만난 베트남 국립아동병원의 껀 티 빅 응옥(Can Thi Bich Ngoc) 박사. 남수현 기자
지난 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제13회 '국제 미진단 질환 네트워크(UDNI)' 컨퍼런스에서 채종희 서울대병원 교수가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컨퍼런스 주최에 앞장선 채종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희귀질환사업부장)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구 협력이 “한국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후발 주자 국가들과의 연구 협력은 아직 진단되지 못한 질환 연구에 도움이 된다”며 “희귀질환 환자들의 진단율을 높이고, 새로운 치료제 발굴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이번 UDNI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미주 등 전세계 전문가들이 모여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한국의 희귀질환 연구 역량이 국제적 수준이며, 앞으로 국제 리더로 더욱 발돋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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