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아프리카 1000명에 식수 주고 떠났다"…늘어난 유산기부

문희철 2024. 9.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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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숙 씨의 기부 덕분에 만든 식수펌프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잠비아 탈라부쿠 마을 어린이. [사진 굿네이버스]

‘유강숙(63) 씨가 기부한 수동 물 펌프.’
아프리카 잠비아 루푼사 지역 탈라부쿠마을에서 있는 세움 간판에 영어로 쓰인 글귀다. 입간판 구석엔 태극기까지 있다. 서울서 1만2000㎞ 떨어진 시골 마을에 이런 세움 간판이 들어선 데는 사연이 있다.

여긴 식수·수도가 없었다. 깨끗한 물을 얻으려면 최소 2~5㎞는 걸어야 했다. 무장 갱단까지 도사리고 있어 물 구하러 갔다가 강도를 당할 때도 있었다. 위험하다고 정수하지 않은 물을 썼다간 질병에 걸릴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유강숙씨의 기부로 물 펌프를 설치할 수 있었다. 덕분에 루푼사 지역 2개 마을 1060여명은 삶의 질이 한결 나아졌다.

사회적 트렌드로 부상한 유산 기부

굿네이버스는 유산 기부를 약속하면 ‘더네이버스레거시(legacy·유산)클럽’에 등재한다. 사진은 더네이버스 레거시클럽 회원 예우 공간. [사진 굿네이버스]

유씨는 2001년 작고한 남편 조찬휘씨 유언에 따라 지난해 11월 펌프를 기부했다. 그의 유언은 ‘가난한 아이들을 돕고 살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평소 유언이 마음에 걸렸던 유씨는 “손자를 통해 글로벌 아동권리 보호 전문 비영리단체(NGO) 굿네이버스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손자는 6년 전부터 굿네이버스에 정기후원 중이다. 마침 굿네이버스가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식수 위생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1000만원을 전달했다.

유산 기부가 사회적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유산 기부는 사후에 남겨진 유산의 전부·일부를 공익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기부를 원하는 사람이 생전에 유산 기부를 약정하거나, 사후에 유가족이 고인의 뜻을 기려 기부를 결정한다.

유산 기부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추모기부·생전기부·약정기부 등이다. 추모기부는 고인 명의로 조의금·유산을 기부하는 행위다. 생전기부는 생전에 유산을 정리하면서 기부하는 것이며, 약정기부는 향후 사망하면 유산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는 형태다. 현금·부조금은 물론 주식이나 보험과 같은 금융상품, 부동산 등 다양한 형태로 기부할 수도 있다.

유산 기부자가 늘어나는 건 사회 구조적 변화와도 유관하다. 비혼(非婚)이 증가하고 1인 가구가 늘면서, 사망한 이후 재산을 물려줄 자녀가 없는 기부자도 있다.

임현빈 굿네이버스 특별후원팀장은 “과거엔 고액 자산가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형태로 기부했다면 요즘엔 유산 기부자가 다양해지고 있다”며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유산 기부에 대해 문의하는 40~50대 미혼 회원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기부 약속하면 법률·세무 컨설팅까지

아프리카 잠비아 나카펠라마을 주민들이 식수 펌프를 사용하기 위해 모였다. [사진 굿네이버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미국은 지난해 총 기부금(5571억6000만달러·747조3000억원)에서 유산 기부(426억8000만원·57조2000억원)가 차지하는 비중이 8% 수준이다. 영국도 1993년 9억파운드(1조5300억원)였던 유산 기부 규모가 30년 만에 40억파운드(6조8000억원)로 4배 이상 늘었다. 이에 비해 한국 유산 기부액(2163억원·2022년)은 전체 기부금의 1.4% 수준이다.

유산 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기부자에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굿네이버스는 유산 기부를 했거나, 기부하기로 약속한 회원들을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에 올려 예우한다. 클럽 회원은 법률·세무·신탁 등 전문가를 통해 기부자 별로 유산 기부 설계 서비스를 받는다. 지금까지 52명이 가입했다.

현대중 굿네이버스 대외협력실장은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은 유산을 기부 희망자 요구에 따라 맞춤형 컨설팅을 체계적으로 제공한다”며 “금융권·법무법인 등이 상속·증여와 연계해 기부 계획을 지원하는 상품을 출시하면서 유산 기부는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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