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 韓-中 반도체 격차 벌려줘… 韓, 생산 맡는 이점 강조해야”

나경연 2024. 9. 1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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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초대석] ‘HBM의 아버지’ 김정호 교수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인력 양성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웅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은 반도체 기업의 명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HBM에 대한 기술력을 갖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56년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은 인텔이 대표적이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난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HBM에 관한 관심이 앞으로 최소 30년은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면서도 엔비디아가 기술 상품화 과정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맞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는 “메모리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자만하지 말고 진취적으로 앞을 내다봐야 한다”면서 “한국을 중심으로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반도체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BM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HBM을 20년 이상 꾸준히 연구했다. SK하이닉스의 초기 HBM 설계의 틀을 잡아줬다. 무엇보다도 HBM의 가치를 미리 알아봤다. 1994년에 삼성전자에서 D램 설계를 맡았다. 당시 반도체를 패키징할 때 생기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패키징 과정에서 열을 어떻게 방출할 것인지, 노이즈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신호를 막힘 없이 계속 전달할 방법은 무엇인지 등이 주된 연구 주제였다. 1996년에 카이스트에 오면서 이런 주제를 평생 연구했고 연구 결과물은 HBM의 핵심 기술이 됐다.”

-HBM에 관한 관심은 언제까지 지속할까.

“앞으로 최소 30년은 뜨거울 분야다. 아직 기술이 진보할 부분이 많다. AI는 거대언어모델(LLM) 등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많다. 그런데 HBM의 처리 속도가 정보의 양을 따라가지 못한다. 성능이 뛰어난 거대한 계산기 한 개가 아니라 작은 계산기 수십개가 동시에 작동하는 원리다. 그래서 챗GPT를 써보면 요청에 대한 결과물이 문단으로 한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씩 천천히 도출된다. 미래에는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는 3차원 적층형 구조의 HBM이 완성될 것이다. 바로 차세대 HBM이다. 지금은 HBM이 그래픽처리장치(GPU) 옆에 쌓여 있는 구조지만 나중에는 GPU 위에 쌓여 HBM과 GPU가 한몸이 될 것이다. 그러면 AI의 계산 처리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메모리는 과한 연산으로 뜨거워지면 작동을 멈추고, 열을 받은 HBM이 휘어지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HBM이나 GPU 안으로 물을 흐르게 해 열을 식히는 기술이 나올 것이고, 절연·누수까지 고려한 더욱 복잡한 설계가 나올 것이다.”

-엔비디아 독주는 계속될까.

“2~3년간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이후에는 기술 상품화 과정에 실패해 기업이 도산에 이르는 데스밸리가 올 수도 있다. 엔비디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픈AI, 메타, 구글, 테슬라 같은 글로벌 빅테크가 수백조원씩 AI 관련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이 돈을 자본시장에서 공급해야 한다. 기술이 상품화돼 매출이나 수익과 연결돼야 하는데 이 순환이 잘 안 되고 있다. 조만간 수익이 급락하고 주가가 내려가면서 죽음의 계곡을 넘는 한두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는 곳이 엔비디아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반도체 패키징 분야가 뜨고 있는데.

“한국은 1996년부터 패키징을 해오고 있다. 흔히 ‘후공정’이라고 말하는데 단어 자체에서 기술의 후순위에 두고 있는 느낌이 있다. 기업에서도 패키징 업무를 맡은 실무자들은 승진이 잘 되지 않고, D램 쪽에서 승진자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패키징도 반도체 전체 공정 중 하나의 단계다. 패키징 기술이 잘 받쳐주지 않으면 수율이 나오지 않는다. 대만이 패키징 기술에서 굉장히 앞서 있다. 우리는 패키징을 하나의 하청업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을 바꿔야 패키징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가 한국에 도움이 될까.

“반도체 시장은 계주와 비슷하다. 1600m를 뛴다고 했을 때 한번 등수가 정해지면 순위를 뒤집기 어렵다. 미국이 중국을 제재해주면 한국은 계주 경쟁 상대가 하나 사라진다. 동시에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준 셈이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AI가 모든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쟁력을 부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AI 반도체 기술력을 저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제재에 따른 역효과는 없나.

“미국과 연결된 한국의 고리가 약해질 수 있다. 미국은 이전에는 본토 기업이 설계 중심 업무를 맡고 생산은 아시아 지역에 맡겼다. 그런데 최근에는 전략적 지역 분할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의 공장까지 모두 미국에 짓고 싶어한다. 공장이 모두 미국으로 넘어가면 한국의 기술적 안보뿐 아니라 국방 안보까지 불안해진다. 그래서 한국에 생산 공장을 두는 것에 대한 이점을 계속 강조해야 한다.”

-국내 반도체 인력은 충분한가.

“한참 모자란다. 필요한 인력의 10분의 1밖에 없다. 전국 국립대에 반도체학과를 만들고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줘야 한다.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인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인력을 배출할 교수 임용도 중요하다. 일반 대학은 논문 위주로 교수를 채용하지만 HBM 같은 기술 분야는 논문을 쓰기 어렵다. 기업에 있는 우수한 박사들은 논문을 쓸 시간이 없다. 논문이 많이 나오는 분야와 산업체에서 필요한 분야는 다르다. 논문만 쓰던 교수가 학교에 오면 학교 수업과 기업 실무 간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학교와 실무 현장을 아우르는 정부 정책이 시급하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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