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밸런스게임

김유나 2024. 9. 1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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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것 중 '밸런스게임'이 있다.

선택하기 어려운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해 어떤 쪽을 택할지를 묻는 것이다.

장기화한 의료 공백 속에 환자가 불편을 겪는 상황을 두고 밸런스게임의 질문을 던진다면 '의료개혁을 위해 불편 감내하기'와 '의대 증원 백지화를 위해 불편 감내하기'가 아닐까 한다.

두 가지 선택지 모두 환자가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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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나 사회부 차장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것 중 ‘밸런스게임’이 있다. 선택하기 어려운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해 어떤 쪽을 택할지를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라면 ‘내가 활약하고 팀은 패배하는 것’과 ‘내가 부진하더라도 팀은 승리하는 것’ 같은 질문이다. 직장인에게는 ‘일을 잘하는데 성격이 나쁜 동료’와 ‘일은 못하는데 성격이 좋은 동료’ 등을 고르는 식이다. 재미로 하는 게임이지만 쉽게 고르기 어려운 선택지를 놓고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현실도 쉽게 고르기 어려운 선택지로 가득하다. 특히 의대 증원을 풀어가는 정부의 입장은 밸런스게임을 마주한 듯하다. 최근 국회는 의료계와 한 테이블에 앉는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하며 ‘의제나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2026년 정원 논의도 원점 재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대통령실과 정부는 기존 입장대로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국회는 “우선 만나자”고 강조한다. 의료계는 협의체 참여에 대한 의견 대신 “2025학년도 의대 정원부터 원점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밸런스게임에 적용해보면 ‘입시 혼란을 막기 위해 2025년도는 그대로 진행하고 2026년 의대 정원부터 논의하기’와 ‘의대 교육 현장 혼란을 막기 위해 2025년부터 재논의하기’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물론 두 가지 선택지는 대등하지 않다. ‘입시 혼란’은 내년도 입학 증원을 유예하면 반드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의대 교육 현장 혼란’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의대에 과감한 시설·설비 투자를 하고, 의대 교수 인력도 확대하기 때문에 증원분은 현장에서 교육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반대로 의료계는 갑자기 늘어난 학생에 더해 올해 동맹 휴학으로 학업을 포기한 이들까지 복귀할 경우 현장 혼란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쉽게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이다. 여기에 ‘환자’가 포함된 현 상황은 더욱 그러하다. 의사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은 현실이 됐다. 남은 의사들이 꾸역꾸역 버티고 있지만 현재 상황이 정상이라 할 수 없다. 환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끝을 내야 하는 문제다.

장기화한 의료 공백 속에 환자가 불편을 겪는 상황을 두고 밸런스게임의 질문을 던진다면 ‘의료개혁을 위해 불편 감내하기’와 ‘의대 증원 백지화를 위해 불편 감내하기’가 아닐까 한다. 두 가지 선택지 모두 환자가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은 같다. 이 문제는 단순히 원하는 곳에서 진료받지 못하는 불편을 넘어 생명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위험을 전제로 한다. 특히 의료계가 주장하는 ‘대통령 사과’나 ‘책임자 경질’ 같은 정치적인 요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이 상황을 기꺼이 감내할 국민은 없다.

의료 정책 결정에서 환자와 소비자는 소외돼 왔다. 전문적인 영역인 데다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라는 논리 때문이다. 물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논의 기구에서 환자와 소비자단체 몫이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첨예한 사안은 의·정 논의가 중심이다. 여·야·의·정 협의체에서도 의료계 참여만 요구하고 있다. 추석 연휴 응급실에는 내원 환자가 늘어나 혼란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내원 환자 대부분은 경증 환자일 가능성이 커 ‘응급실 마비’ 수준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추석에는 아프지 말자”라는 말이 명절 덕담이 아니라 당부가 돼 버렸다. 큰 혼란 없이 추석이 지나가고, 이후에는 의료계가 협상 테이블로 나와 대화에 임하기 바란다. 국민은 더 이상 생명을 조건으로 둔 밸런스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

김유나 사회부 차장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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